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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전두환, 학살 은폐 위한 3S 정책…‘민중 결집’ 부메랑으로

등록 2021-11-25 17:25수정 2021-11-27 02:30

국민 눈·귀 가리려 3S 정책 펼쳐
프로야구 출범, 에로영화 양산 등

반면 민중문학·영화·마당극도 봇물
80년대 민주화 운동 견인차 구실
1981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풍81’. 연합뉴스
1981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풍81’. 연합뉴스

전두환에게 5월의 학살은 반드시 지워야 할 기억이었다. 허문도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국풍 81’을 광주민주화운동 1주기 추모 분위기가 이는 5월에 개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풍 81’은 가요제, 연극제, 학술제와 농악, 탈춤, 국궁 등 전통문화와 각국의 먹을거리 등의 행사를 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신중현과 뮤직 파워, 송창식, 김창완 등 최고의 뮤지션을 불렀고, 대학생이 참가한 가요제에서는 서울대 밴드에 대상을 주었다. 전국 197개 대학 250개 동아리에서 6000여명의 대학생이 참가했다는 기록도 있다. 대중의 관심을 정치에서 돌리고, 건국 이래 최고의 축제를 열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관제 행사였다.

정권의 정당성은커녕 학살로 시작한 전두환은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에서 다양한 변화를 가지고 왔다. 프로스포츠의 시작, 정치를 제외한 분야의 검열 완화, 야간 통행금지 해제 등 소위 3에스(S·Sex, Screen, Sports) 정책을 통해 대중을 미혹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결과는 다소 틀어졌다. 완화된 억압은 대중을 우민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자유 의식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박정희가 금지곡으로 만든 ‘아침이슬’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곡이 된 때는 1980년대다. 1970년대 ‘흔들리지 않게’ 등 몇 개 안되던 운동가요은 80년대 폭발적으로 양산되면서 민주화 운동에 견인차 노릇을 했다. 대중은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무조건 흘러갈 만큼 멍청하지 않고, 그렇다고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는 현명한 집단도 아니다. 우왕좌왕하지만 때로 중요한 선택을 하며 역사를 만들어간다. 한때 후퇴하고, 스스로 멸망하기도 하지만.

1981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풍81’. 연합뉴스
1981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풍81’. 연합뉴스

전두환의 완화된 문화정책이 가시화된 것은 1982년 1월의 야간 통행금지 해제였다. 통금 해제는 심야라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심야극장과 심야다방, 거리의 포장마차, 심야 관광 등이 생겼다. 12월11일에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이후 프로축구 슈퍼리그, 농구대잔치, 민속씨름 등이 이어졌다. 초대 체육부 장관으로 노태우가 임명되었고,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한 준비가 집요하게 진행되었다. 히틀러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여 가식적인 국민 통합과 독재 체제의 교활한 선전을 시도한 것처럼, 프로스포츠 활성화를 통해 프로야구와 농구 등은 순식간에 국민 모두의 오락으로 자리 잡았다. 축구광이라는 전두환의 기호가 스포츠 활성화로 이어졌다고도 한다.

영화계에도 어느 정도 자유가 주어졌다. 소규모 극장의 개관이 가능해졌고, 검열이 비교적 완화됐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영화사가 허가제였다. 유신헌법이 나온 후 1973년 개정된 영화법을 통해 영화사 설립에 보증금이 필요해졌다. 기존의 허가를 무시하고, 등록을 다시 한 12개의 영화사만을 허가했다. 영화를 3편 만들면 1편의 외화를 수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당시의 영화법은 영화의 진흥을 위한 법이 아니라 영화사를 철저하게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검열도 극심하여 정치적인 소재는 물론 사회적인 문제점이나 현실을 보여주는 모든 것이 금지되었다.

1982년 3월27일 프로야구 개막전. <한겨레> 자료 사진
1982년 3월27일 프로야구 개막전. <한겨레> 자료 사진

전두환이 1984년 ‘영화예술의 육성’을 지시하면서, 1985년에 영화법이 개정된다. 영화사의 허가제가 등록제로 바뀌고, 소규모 프로덕션 설립도 가능해졌다. <한겨레> 1989년 9월23일치 기사에 따르면 1988년까지 69개, 1989년에 18개 프로덕션이 만들어졌다. 여전히 검열 문제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합법적인 수단이 생긴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독립영화 단체와 작품들이 서서히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두환 시대의 1980년대 한국영화를 말하면 ‘에로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전두환의 3에스 정책에 따라서 에로영화가 양산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검열이 심해지면 메이저 문화에서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좁아진다. 사회적인 비판이나 고발은 되도록 은유에 돌리고, 사적인 은밀함에 집중하는 흐름이 생긴다. 1982년 <애마부인>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기 이전 1970년대에도 <별들의 고향>(1974), <영자의 전성시대>(1975), <겨울여자>(1977) 등 속칭 호스티스 영화는 인기였다. 본질적으로 박정희의 유신 시대는 모든 것을 폭압적으로 찍어누르는 암흑기였다.

노래가 조금만 우울하거나 슬퍼도 퇴폐적이며 사회 기강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를 걸어 금지곡을 만들었고, 성과 폭력을 강하게 묘사하는 모든 것을 금지했다. 박정희를 비롯한 지배층은 요정에서 비윤리적인 향락을 즐기고, 중앙정보부에서 무고한 사람에게 온갖 폭력을 휘둘러도 국민은 도덕적으로 검약하게 살아야 한다고 위선을 떨었다.

시구하는 전두환. 대통령기록관 누리집 갈무리
시구하는 전두환. 대통령기록관 누리집 갈무리

그런 점에서 전두환은 노골적이며 유치했다. 스포츠와 유흥을 허락하면서도 정치권력에 위협이 되면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다. 세계적으로 1980년대의 경박하고 번들거리는 시대정신에 부합한 정책이 3에스이기도 하다. 유신 체제에 비하면 전두환은 스포츠와 오락을 다소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성인영화는 <애마부인> 이후 한국영화계를 뒤흔들었다. 1982년 한국영화 56편 중 35편, 1985년 제작된 한국영화 80편 중에서 60편 이상이 성인영화였다. 하지만 <무릎과 무릎 사이>(1984), <뽕>(1985), <어우동>(1985), <땡볕>(1985) 등을 생각해 보면 성인영화에서도 수작은 등장했다. 검열이 완화되면 그만큼 상상력과 사고의 폭이 넓어지기 마련이다. 당시 성인영화가 늘어나게 된 것에는 비디오 시장의 확대에도 연관이 있다. <산딸기>, <빨간 앵두>, <야시장> 등의 성인 시리즈가 비디오 시장을 휩쓸었다.

영화 &lt;어우동&gt; 포스터.
영화 <어우동> 포스터.

전두환 정권은 스포츠와 대중문화에 조금 숨통을 트여주고, 관제 민족문화를 주입하는 정책을 시도했다. 모든 것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유를 주면서도 일정한 선을 넘어서지 못하게 했고, 민족문화를 주장하면서도 대학과 재야의 ‘민족문화’는 탄압했다. <애마부인>의 제목에서 말 마(馬)를 쓰지 못하게 해서 삼 마(麻)를 쓴 것은 유명한 코미디다. 말 대신 대마를 사랑한 여인이 더 위험한 것 아닐까?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권에서도 민족문학, 민족영화, 마당극 등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민족 정서를 강조하는 문화를 지향했다. 자유나 민족이나 같은 말을 쓰면서도 서로 지향과 영역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문화정책은 기본적으로 우민화를 목적으로 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한 목적이 여실히 내비치기 때문이다. 유신에 대한 대중의 분노 때문에 동일한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쿠데타와 학살로 세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식이건 동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3에스 정책을 유지했다 해도, 대중이 반드시 그들의 목적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마침내 1987년의 6월 항쟁이 있었고, 다시 10년을 지나 정권의 교체가 있었고, 제도적 민주주의도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대중의 의식 변화와 요구에 따라 정책도, 세계도 변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한국문화가 세계를 뒤흔드는 이유도 역시 민주주의의 성취에 근원이 있을 것이고.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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