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추억이 된 줄 알았던 끔찍한 기억이 부지불식간에 되살아났다. ‘88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강화된 군 경계 태세 때문에, 선임병들보다 더 ‘빡빡하게’ 병역의무를 수행하고 병장 만기 전역한 지 30년도 더 지났는데, 군부대 내의 가혹행위가 여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설마? 드라마니까 그런 거겠지?’ 2014년 건군 66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이 언급한, “전우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권이 보장되는 병영”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랬다. 병역법 3조에 따라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대한민국 남성에게 군대는 “남들 다 가는 군대, 뭐가 힘드냐?”라는 말로 퉁 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군대를 다녀와야 어른 된다”라는 관습적 표현은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하는 군 복무규정이 체제 순응형 인간을 길러내는 기제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선임병이 야비하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가혹행위를 저질러도 후임병은 관등성명을 목청껏 외쳐야만 한다. 계급을 기반으로 가혹행위가 대물림되면서 “나라 지키려고 군대 온” 청년들은 폭력을 내면화하면서 2차 사회화 과정을 겪는다.
탈영병 잡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디피>(D.P.)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2014년 군부대 내의 가혹행위가 30여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무 여건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군대는 군대일 뿐이었다. 군무 이탈 담당관에게 차출된 안준호(정해인) 이병은 선임병들의 가혹행위가 낯설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성장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폭력이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탈영병들을 잡으러 다니면서 피해자의 끔찍한 고통을 인지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어도 자신만은 후임병에게 가혹행위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렇다. 그때나 지금이나 안준호처럼 생각하는 사병은 분명히 있었다. 다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어서 문제였을 뿐이다. 병역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조석봉(조현철) 일병 같은 사병이 있지만, 계급이 만들어준 위계질서는 견고했다. 내무반에서 선임병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호구’ 잡히면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할 뿐이다. 소년체전에 출전할 정도로 유도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사람 때리기 싫어 그만둘 만큼 심성이 착한 조석봉이 그랬다. 조석봉은 모멸스럽게 인권을 유린당하다가 결국 평정심을 잃고 탈영한다. 광기 어린 복수심으로 자신을 괴롭히다 전역한 황장수(신승호)를 찾아가는 그의 모습은 섬뜩하고, 파국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는 안준호의 모습은 처연하다.
파국의 원인 제공자인 황장수라고 별로 다르지는 않다. 후임병에게 이유 없이 가혹행위를 저지르다 전역한 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도중 점장에게 타박을 받을 정도로 사회의 쓴맛을 보고 있는, 또 다른 청년이다. 황장수는 군 복무 시절 자신이 저질렀던 가혹행위가 전역과 함께 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유 없이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조석봉에게는 현재진행형의 폭력이다. 진심으로 궁금했던 조석봉이 묻는다. “저한테 왜 그러셨습니까?” 돌아온 대답은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군부대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의 실상을 모른다면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황장수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기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가혹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다. 군부대 가혹행위의 실상이 그랬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지 몰라 덧붙인다. 30여년 전, 강원도 홍천에서 내무반 생활을 같이했던 전우는 전역 후에도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동갑내기 친구가 되었다. 몇개월의 군번 차이가 있는 선임과 후임 관계라 소소한 갈등은 있었지만, 우리 사이에 폭력적 가혹행위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보통의 사병들이 그렇듯이, 30여년 전의 안준호(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50대 중년 남성이 대한민국 청년들을 가혹행위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뒤엉키게 한 군부대의 실상을 폭로한 <디피>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너무 잘 알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 황장수의 가혹행위에 분노하고 조석봉의 파국에 고통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심리 상태를 인지상정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디피>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유발 드라마라는 군필자들의 평가에 대한민국 국방부가 뭐라고 대답할지 자못 궁금하다.
윤석진ㅣ대중문화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