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대중문화평론가가 드라마를 중심으로 티브이(TV) 속 다양한 캐릭터를 분석합니다. 캐릭터로 보는 세상이야기. 그 일곱번째 시간은 납량특집 드라마보다 더 등골 오싹하게 하는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김동미입니다.
삼복더위에는 귀신이나 구미호가 등장하는 납량 특집 드라마가 제격이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과 인간이 되고자 욕망했던 구미호를 등장시켜 여름 한철 시청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던 그 옛날 <전설의 고향>(한국방송)이 그랬다. 지금은 시대 변화에 따라 흡혈귀나 좀비들이 대세를 형성하면서 귀신이나 구미호에 대한 공포심이 예전 같지 않다.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귀신들은 희화화되고, 구미호들도 낭만적 사랑의 주체로 변신했다. 어쩌면 귀신이나 구미호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이라 그런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결혼작사 이혼작곡>(티브이조선)의 김동미(김보연)도 시즌2에서 귀신이 되어 엽기적인 행각을 일삼는 남편 신기림(노주현)보다 더 무서운 인물이다. 김동미는 시즌1에서 심근경색으로 죽어가는 남편이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뿌리치고 괴기스럽게 웃으면서 섬뜩한 공포를 유발한 바 있다. 19살 많은 늙은 남편과 젊은 의붓아들 신유신(이태곤)을 위해 평생 헌신한 전형적인 현모양처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잘생기고 멋진 의붓아들에 대한 성적 욕망을 숨기지 않을 정도로 도발적인 여성이었다.
김동미는 자신이 1960년대 영화 <페드라>에서 의붓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페드라와 닮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의붓아들에게 성적 매력을 과시하지만, 김동미가 사랑하는 신유신은 원숙한 매력이 돋보이는 아내 사피영(박주미)도 아닌, 패션모델 겸 배우로 활동하는 20대 여성 아미(송지인)한테 마음을 빼앗긴 지 오래다. 김동미가 몸매가 드러나는 수영복을 입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혹해도 신유신에게 김동미는 ‘김 여사’ 또는 ‘누나’일 뿐이다.
그런데도 김동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며느리한테서 신유신을 빼앗으려고 한다. 엽기적 욕망에 사로잡힌 김동미는 어쩌면 죽은 남편한테 그랬을지도 모를 방법으로 사피영의 육체를 훼손시킬 계략을 실천에 옮긴다. 겉으로는 자상한 시어머니처럼 행동하지만, 속마음은 며느리를 불행으로 내몰고 젊은 의붓아들과 살을 맞대면서 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김동미는 신유신을 아들이 아닌 남자로 독차지하는 것만이 한평생 늙은 남편의 수발과 남동생 같은 의붓아들을 양육하며 살았던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이라고 합리화한다.
전형적인 시어머니의 틀에서 벗어난 김동미가 의붓아들의 젊은 육체를 관음증적 시선으로 탐하는 모습은 대단히 괴기스럽고 섬뜩하다. 그는 신유신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 그것도 자신에게 부재한 젊음을 소유한 여자와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를 향한 욕망이 충족될 수 없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결핍의 상황을 확인하고도 김동미는 욕망의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가정이 깨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사피영의 이혼을 만류하면서도 “아미든 매미든 젖내 나는 것들 트럭으로 와도 이 김동미 못 이겨! 며느리도 아니겠다, 산전수전, 공중전, 수중전, 시가전, 심리전 다 치른 나야”라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김동미는 유교적 가부장제 아래에서 강요되었던 여성성이나 모성성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불손한 존재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애착과 욕망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유형의 여성인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의미에서든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캐릭터다.
그러나 세상의 윤리의식이 아무리 타락했다 하더라도 의붓아들을 향한 김동미의 욕망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건 비단 여성 김동미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아버지의 재혼 이후 김동미의 아들이 된 남성 신유신에게도 해당되는 윤리의식이다. 신기림과 결혼한 순간부터 신유신은 그의 아들이다. 김동미는 자신이 임신과 출산의 생물학적 경험을 통해 신유신의 어머니로서 자리매김하지 않은 여성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적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것은 분명하다. 그만큼 유사 근친상간의 욕망에 사로잡힌 김동미의 말과 행동은 불온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엽기적인 욕망은 공포심을 유발하면서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좀비처럼 죽지 않는 욕망을 절제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절이다.
충남대 국문과 교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