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알고 있다(조너선 벨컴 지음, 양병찬 옮김/에이도스 2017)
올해는 어디로 여행을 갈까. 고래 보러 갈까? 오로라 보러 갈까? 비록 현실화되지 못해도 꿈만은 꾸던 사람으로서 비행기가 내뿜는 탄소와 관광산업이 망가뜨리는 자연과 동물의 서식지, 지역 공동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그럼 여행을 가지 말아야 하나? 그러나 낯선 곳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을 아예 포기하고 살기도 괴롭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여행’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찾아보려고 지난달 내내 끙끙거렸다.
하루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봤다. 딱 한 번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갈 수 있고 내가 여행 기획자라면 나는 어디 가서 무엇을 하자고 할까? 그랬더니 여러 가지 감각이 열렸다. 우선 물소리가 들리고 더운 여름날의 땀을 식히는 바람이 불고 숲의 향기는 눈을 사르르 감게 만들고 언뜻 새 한마리가 보이고… 상상만으로도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능력인 ‘마음을 비우는 능력’의 경지에 잠시 이르렀다. 그런 여행이라면 그냥 그 자체로 좋다. 바람 소리, 물소리만 있으면 된다. 다른 것은 더 바라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소리 여행(조용히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행)이 나의 지속가능 여행법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기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물고기 전문가에게 내 소리 여행 기획을 엄청나게 자랑했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물고기 소리는요?” 가슴이 철렁했다. 아! 어쩐다. 물고기 소리도 들어야 하는데! 그때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알래스카의 한 여성 과학자가 자메이카로 신혼여행을 갔다. 신혼부부는 스노클링을 즐겼는데 수영 실력이 뛰어난 신랑은 신부가 잠수를 못한다는 것을 알자 깜짝 놀랐고, 아무리 알려줘도 그녀가 잠수를 배우지 못하자 더 놀랐다. 신랑은 과감하게도 신부의 수영복 반쪽을 벗겨서 바닷속 4미터 50센티미터 아래 있는 산호초에 걸어 놓았다. “수영복을 찾으려면 저기까지 잠수해봐.” 그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비록 인간은 둘밖에 없었지만 몹시 수줍어진 신부는 수영복을 찾아오려고 몇 번이나 잠수를 시도했고 안타깝게도 다 실패했다. 그녀의 ‘광기 어린’ 행동은 물고기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물고기들은 신랑신부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녀의 ‘광기 어린’ 몸짓에 영향을 받은 것은 물고기들뿐만은 아니었다. 신랑은 신부에게 헤엄쳐 가 애정을 표시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신부의 부력 때문에 그의 모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작은 블루피시, 에인절피시, 그밖에 산호초 주변에 사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모두 모여들어,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빤히 지켜보는거예요. 몸과 꼬리를 가볍게 떠는 모습이 마치 희미하게 일렁이는 파도 같았어요.” 결국 수영복은 신랑이 잠수해 찾아왔다. 그다음은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잠깐 동안의 열정이 가라앉자 신혼부부를 에워쌌던 물고기들도 흥미를 잃으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신랑신부는 지금까지도 ‘물고기들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호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나도 물고기 속이 정말 궁금하다. 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지금 듣는 파도 소리는 호기심에 사로잡힌 물고기들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내는 소리예요. 진짜라니까요.” 인간만 놀지 않고 물고기도 신기한 인간 구경을 하면서 논다고 생각하면 신난다. 자신만의 지속가능 여행법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나는 상상도 못한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지속가능 여행 ‘이야기’가 많아지면 너무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시비에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