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사제들이 집전하는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미사가 열리는 가운데 참석자들이 촛불과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l 창비(2023)
세월호 참사 소식을 처음 들은 부모들이 단원고로 달려갈 때 벚꽃은 원망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와 유가족이 이태원으로 달려갈 때 서울의 단풍은 아름다웠다. 이제 벚꽃에 이어서 단풍을 볼 때도 참사 생각이 날 것 같다.
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기록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는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책이다. 그러나 증언을 하기로 용기를 낸 사람이 없었더라면, 그 슬픔에 귀 기울이려는 작가단이 없었더라면, 뭐라도 해서 진상을 파악하고 반복을 막고 싶은 처절하고도 큰 마음이 없었더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책이다.
이주영씨의 연인이자 생존자 서병우씨의 사연은 이렇다. 둘은 결혼을 앞둔 사이였고 사고 당일에도 웨딩플래너를 만났다. 둘에게 일어난 일은 이렇다. “원래 저랑 주영이랑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다가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주영이를 제 앞에 세우고 주영이 어깨에 제 두 손을 올리고 갔었거든요. 그러다가 압착이 되니까 제가 잠깐 의식을 잃었어요.” 그가 의식을 잃고 깨보니 주영씨도 의식을 잃고 앞사람 등에 고개를 떨군 채로 있었다. 그는 어떻게 했을까? “선 채로 주영이한테 인공호흡을 했어요.”
김의현씨의 여자친구이자 생존자 김솔씨의 사연은 이렇다. 둘은 그날 김솔씨의 생일 기념 식사를 하고 밀려드는 인파에 휩쓸렸다. 김솔씨는 키가 작은 편이었다. “의현이는 ‘너 넘어지면 안 돼’ 하고 저를 안아들고 있었어요. …그때 어떤 남자분이 사람들한테 여자친구가 숨을 못 쉰다고 계속 도와달라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움직이지 못하니 도와줄 방법이 없었는데 의현이가 자기가 도와주겠다면서 자기를 반대쪽으로 밀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김솔씨도 의식을 잃었다. “그러고 나서 제가 기억하는 건… 갑자기 어떤 분이 제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저를 뒤쪽으로 끌어당겼어요. 제가 뒤로 당겨지니까 저를 안고 있던 의현이가 제게서 떨어지면서 앞으로 고꾸라지는 거예요.” 김솔씨는 그날 거기서 같이 죽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 다른 슬픔도 있다. 유가족과 싸우던 유튜버는 이런 말을 한다. “내 딸은 그런 데 안 가. 교육을 잘 시켜서.” 공감에의 호소는 이렇게 잔인하게 짓밟힌다. 어떻게 해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혐오의 말을, 그것도 대체로 공정과 정의의 이름으로 내뱉게 되었는지 파고들어 보고 싶다. 우리는 혐오 속에 살 때 가장 사는 것 같지 않게 살게 된다. 다행히 다른 희생자 이야기도 있다. 1996년생 양희준씨가 잠든 산은 높았다. “한겨울에도 저희(가족들)는 눈이 많이 와서 못 올라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보니까 빗자루 두 개가 있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친구들이 눈길을 쓸면서 올라갔더라고요.”(누나 진아씨)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것은 같이 슬퍼하고 공감하고 갖가지 방식으로 힘이 되고 싶어하고 유가족, 생존자와 같이 그날의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이 슬픔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 그것을 보면 우리가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금 현재 유가족·생존자가 가장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은 이태원 특별법이다. 슬픔 속에서 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의 그 ‘뭐라도’ 때문에, 그나마 우리가 무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나는, 이태원 특별법이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따라가 보려고 한다.
CBS(시비에스)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