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서울시와 서울도서관이 운영하는 ‘서울책보고’가 최근 개관 2주년을 맞았다. 서울책보고는 국내외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공공 헌책방’이자 문화를 향유하는 책 중심의 복합문화공간, 시민의 독서생활 플랫폼이다. 지난 2년간 36만 명이 방문하고 헌책 27만 권이 판매되며 기대 이상의 존재감을 확인시켰다. 코로나19로 생긴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작년에 문을 연 날이 40퍼센트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숫자들이 갖는 의미는 더욱 커진다. 시민들이 책을 판매하는 문화공간을 즐겨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보기 드문 좋은 사례다.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 바로 옆에 자리한 서울책보고 공간에는 현재 13만 권이 넘는 각 분야의 헌책과 3천 권에 가까운 독립출판물, 1만 권이 넘는 명사 기증도서가 빼곡하다. 비대면으로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헌책방도 작년 말부터 운영한다. 지금은 개관 2주년을 맞아 코로나19에 지친 시민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들이 개최되고 있다.
서울책보고가 새로운 서울의 명소로 발돋움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헌책방과 시민을 연결하는 공공 플랫폼을 만든 데 있다. 서울에 소재한 31곳의 헌책방들을 한자리에 모아 각각의 진열 공간을 제공하고 위탁 판매하면서 생기는 상승작용이 엄청나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보유한 볼 만한 양질의 헌책들이 한 곳에 모이니 관람객들에게 이만한 지적 즐거움이 없다. 오래되었거나 절판된 좋은 책을 저렴한 가격에 만나는 것은 덤이다. 생각지도 못한 책을 발견하는 기쁨 또한 쏠쏠하다. 이곳을 찾는 관람객의 연령대에 따라 누군가는 이전 세대의 책의 역사와 만나고, 누군가에게는 추억과 잊혀진 명작을 만나는 공간이 된다.
헌책방 주인들 입장에서는 서울책보고가 구세주 같은 존재다. 판매 대행에 따른 최소한의 수수료만 지불하면 대부분의 수익이 헌책방 몫이다. 원래 책을 판매하던 헌책방보다도 서울책보고에서의 판매량이 훨씬 많다. 집객 효과의 차이가 매출의 차이를 낳았다.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비롯해 서울에 산재한 헌책방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혹독한 경영난을 겪었으나, 비로소 지속적으로 매장을 운영할 수 있는 든든한 후원군을 만난 셈이다. 처음에는 공공 헌책방의 개념에 대한 오해 등으로 혼선도 있었지만, 공공성을 살린 도시의 문화정책이 경쟁력을 잃은 개인 경영 헌책방 업종을 살림으로써 문화 다양성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며칠 뒤면 서울시장 보궐선거 날이다. 새로운 서울시장도 서울책보고처럼 시민에게 사랑받는 책이 있는 문화공간, 서울시민의 독서생활 플랫폼 만들기에 한층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공공 헌책방에 대한 정책 지원 성과를 바탕삼아 개별 헌책방들이 매력적인 문화공간으로서 자생력을 갖도록 특성화·전문화하는 데 힘을 보탰으면 한다. 뉴욕, 파리, 런던, 도쿄가 그런 것처럼, 책이 도시 곳곳에서 빛나고 시민의 일상에 자리할 때 도시의 품격과 미래 경쟁력도 함께 자랄 수 있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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