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었다 그다음은
한연희 지음/아침달(2020)
한 사람이 쓴 여러 편의 시를 차례로 읽다 보면, 시인의 시와 시 사이에 씨앗이 심기고 열매가 맺히는 과정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한 편의 시에 씨앗이 등장하는 장면과 또 다른 시에 열매가 나타나는 장면이 연결되어 읽히면서 시인이 현재 돌보고 있는 숲으로부터 이야기 하나를 건네받는 경험을 독자가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시에 접근하는 경로가 다양하다고 믿는다면 이런 방식의 읽기가 가능하다. 우선은 씨앗에 대한 시 한 편 읽기.
“나는 콩샐러드를 한 숟가락 떠먹었습니다// 여태 내가 불행의 씨앗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왔는데/ 불행은 콩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둥글고 딱딱한 것이라 믿어왔는데/ 결코 아니었어요// 집안에 잠자고 있는 서리태는 아직도 단단해 곧 깨어나 이야기를 만들어낼 거예요 나는 불행과 뒤섞이고 맛보면서 자라왔어요 짠맛 쓴맛 다 본 삶이 내 이야기예요 콩샐러드가 우아하게 입 안을 활보하며 자극해요 그러니까 결말이 뭐가 중요한가요 으깨져도 괜찮아요 싫어하는 걸 존중해줘요 콩샐러드는 여전히 아무 맛이 없지만 눈물의 맛 같아요 그럼에도 나는// 콩 한 알처럼 얼마나 자주 이야기를 하고픈 사람인가요”(‘그럼에도 콩샐러드는 우아해’ 부분, <폭설이었다 그다음은>)
시에서 ‘콩’은 아직 무엇이 될지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잠재성의 상징 ‘씨앗’으로 등장하는 한편, 온갖 역경과 굴레의 이야기를 이고지고 오늘에 이른 ‘열매’로 나타나기도 한다. “콩샐러드”를 떠먹는 행위는 불행한 삶의 장면이 이어지더라도 일단은 출발해보자고, 무엇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고 설혹 닥친다 해도 어찌되었든 그것은 “짠맛 쓴맛 다 본” “내 이야기”이니 다 겪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 ‘나’로부터 깨어날 이야기에 기대를 거는 일. 샐러드 재료로 으깨지는 상태가 콩의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 다른 열매처럼 그릇에 담겨 나오는 콩이 실은 씨앗이기도 하다는 비밀은 우리를 얼마간 두근거리게 만든다. 그러니까 시인에게 열매의 시간이란 인간이 씹고 삼킨다 해서 종지부가 찍혀지지 않는 것에 해당한다. 다음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딸기 아래엔 구더기가 있고 구더기 아래엔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물컹거리며 달콤해지다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침묵과 침묵 사이에서 말 못 한 사연은 끈적하게 상처에 달라붙었다// 너무 간지러워 긁고 또 긁었다/ 이것을 부스럼이라 부를지 부질없음이라 부를지/ 인간 대신 다른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면 딸기 같은 것도 좋지 않을지/ 끈질기게 달라붙어 남에게 깨알 같은 흔적을 남길 수 있으니// 그러니까 지금 나는 새로운 딸기에 진입한 거구나”(‘딸기해방전선’ 부분, <창작과비평> 2021년 봄호)
점점 썩어가는 열매의 사연에 귀 기울이면서 점점 상해가는 마음이 단순하게 무마되지 않도록 다스릴 줄 아는 ‘나’는 “딸기” 같이, ‘열매’ 표피에 ‘씨앗’이 달라붙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 한연희의 시들을 ‘씨앗’과 ‘열매’의 이야기로 읽으면서, 시인의 첫시집 제목 ‘폭설이었다 그다음은’을 다시 떠올렸다. 특별한 희망 없이도 폭설 다음에 열매, 그리고 씨앗을 두는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