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한여진 지음 l 문학동네(2023)
한여진 시인의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에는 읽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게 주어진 ‘끝’이라는 형식에 대해, 소설 바깥에서 ‘끝없는 삶’을 감당하던 이가 고민하는 모습이 나온다.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읽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고// 그것이 이 책의 유일한 결말은 아니니까// 가장 많은 미움을 샀던 인물처럼/ 나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개울에 빠져 죽었다던 그와는 달리/ 반대편에 잘 도착했는데// 돌아보니 사방이 꽁꽁 얼어 있었고/ 그애는 여름에 죽었겠구나//…// 그것은 검고 아득해서/ 바닥이 보이지 않고// 돌멩이를 던져볼까// 아서라, 죽은 이는 다시 부르는 게 아니야//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찰나에도/ 두부는 아주 평화롭게 구워진다// 이것은 소설일까 아닐까// 고개를 들면 온통 하얀 창밖과/ 하얗게 뒤덮인 사람들이 오고가는 풍경//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해당 시 부분)
언뜻 이 시는 “소설”과 같은 가상 세계의 경계가 사라진 지금 시대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 “개울에 빠”진 “그”의 얘기가 너무 생생해서, 거기에 몰입해 있던 독자는 “그애”를 두고 소설 바깥으로 쉽게 나가지 못한다. 책장을 덮고 “고개를 들면” “온통 하얀 창밖과/ 하얗게 뒤덮인 사람들이 오고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해도, 누군가에 대한 마음을 깊이 가졌던 독자의 경우라면 쉽게 “그애”에 대한 마음을 다른 데다 내다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시는 여러 매체를 통한 추체험이 가능한 시대, 우리는 이를 통해 어떻게 우리의 경험을 재구성해나가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 구절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까지 읽는다면, 이 시는 좀 다르게 읽힌다. 재현된 세계가 차마 봉합하지 못하는 인간의 끝없는 마음을 드러내는 순간, 이 시가 경험이 재편되는 요즘 방식을 마냥 수용하지만은 않는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시의 처음과 중간에 살짝씩 끼어드는, 소설을 읽는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두부를 굽는 일’이 신경 쓰인다.
시의 인상적인 첫 문장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는 겨울이 오는 신호를 ‘생활의 감각’으로 알아차리는 방식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 변해가는 계절 풍경을 지켜보다가 사진 찍기에 급급한 구경꾼의 자리가 아니라, 하얗고 단단한 두부를 잘라 굽고 이를 그릇에 잘 담아내고자 의식을 치르는 사람의 자리에서 겨울은 으레 오지 않고 ‘겨울이’ 비로소 오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된다. 시인은 하얀 설원과 이어질 수 있는 형상인 ‘두부’를 제시했지만 계절을 맞이하려는 이에게 두부만이 답은 아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만두나 김치, 붕어빵 같은 것을 챙겨 먹으며 사람은 따뜻한 음식을 천천히 다 먹을 때까지 유지되는 평화로운 시간을 통해 끝나버린 한 계절이 다음 계절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체감한다. ‘생활의 감각’은 생이 계속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일러준다.
생활의 감각은 많은 사람의 삶은 가상의 것이 아니라는 감각이다. 이는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상 규명조차 이뤄지지 않는 어떤 ‘죽음’들의 소식이 신문을 통해 전해지는 요즘, 우리가 복원해야 할 감각이기도 하다.
양경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