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촛불이 묻는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사회경제개혁
사회경제개혁을 위한 지식인선언네트워크 기획, 이병천·김태동·조돈문·전강수 편저/동녘·2만5000원
비판과 비난은 흔히 뒤섞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비난은 헐뜯어(非) 나무라는(難) 것인 반면, 비판은 비평하고(批) 판단하는(判) 것이니, 목적과 의도가 완전히 다른 행위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이 빗발친다. 명백한 정책실패가 드러나고 맹목적 지지자들의 아우성이 때로 볼썽 사납다 해도, 지식인의 역할이 비난에만 그쳐서는 안 될 터이다. 이런 까닭에 시의적절하고도 방대한 기획인 <다시 촛불이 묻는다>는 의미가 크다. 1년 남짓 남은 임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는 물론, 이후 대권을 노리는 주요 정치세력과 4년여 전 촛불을 높이 들었던 시민들이 새겨 봐야 할 ‘시대정신’이 이 책에서 발견된다.
지난 2018년 7월18일,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즈음해 학자와 시민사회 활동가 등 지식인 323명이 모여 사회경제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 이 책의 뿌리다. 당시 이들의 문제 의식은 노동·재벌·부동산·조세 정책 등 전반적으로 ‘촛불정부’의 경제 기조가 후퇴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이에 따라 재벌 적폐 청산 및 경제민주화 정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노동 존중 사회로의 로드맵 확보, 부동산공화국 해체, 적극적 증세를 통한 복지국가 실현, 경제개혁 청사진 제시 등이 이들의 요구였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돈문 당시 가톨릭대 교수(현 노회찬재단 이사장),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이 ‘총대’를 메고 ‘사회경제개혁을 위한 지식인선언네트워크’를 꾸려 지금껏 지속적으로 ‘촛불정부의 소임’을 강조하며 비판하고 견인하려는 노력을 이어왔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겪으며 생태·사회·경제 등 전 사회적 전환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이들의 엄중한 목소리가 집약되어 이번에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된 것이다.
이들의 현실 진단은 비관적이다. “촛불정부로서 사람이 먼저이고 노동이 존중받는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던 “약속은 거의 깨진 듯하며 촛불의 기운은 희미하다.” “코로나 방역모범국 한국은 한 꺼풀을 벗기면 생태사회경제 전반의 정의로운 전환에서 한참 지체”됐고 “압축성장주의와 사회생태적 전환 간의 불균형발전 방식”이 여전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소득주도성장 등 사람 중심 경제를 내세웠던 (…) 초기 정책 패러다임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이미 코로나 위기 이전부터 뒷걸음질을 쳤고, (…) 구조개혁 정책은 희미했으며, K(케이)방역은 일정 정도 성공했지만 K의료는 실패했다.” 또한 “한국사회는 세계 수위의 화석연료체계가 빚어낸 부끄러운 기후 악당국가, (…) 위험사회의 고착화, (…) 다방면의 지대추구 행태, 거대 재벌과 자산 부자계층의 기득권 수호와 사회적 무책임의 역류효과에 짓눌려 있다.” 그러나 “재벌과 자산부자계층에 대해 규율력이 약하고 그들의 요구에 끌려가는 연정 민주정부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생태적·환경적 불평등이 맞물려 진행되는 악순환의 상황을 반전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비판은 비관으로 끝나지 않는다. 1년여 남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소임, 더 나아가 다음 정부의 과제까지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본론이다. 전체 3부, 16장(서장 제외)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1부는 코로나 위기 시대에 긴요해진 6대 개혁과제를 다루고 2부와 3부에서는 각각 경제와 사회 분야의 구조개혁 정책을 제시한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으로서의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전국민고용보험제, 공공의료, 부동산공화국 문제와 기본소득 도입 방안 등이 코로나 시대와 함께 더욱 중요해진 개혁이라면, 소득주도성장과 산업생태계 혁신, 공정경제와 재벌개혁, 재정개혁, 금융개혁, 자영업은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의 문제이며, 비정규직, 최저임금, 성평등, 사회서비스, 포용국가의 주제는 사회 분야의 구조개혁 과제다. 이 방대한 내용이 400여쪽의 책에 압축되어 있는데, 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불평등의 문제다. “평등과 공정 가치가 사회적 합의로 제도적·문화적으로 깔려 있는 선진 복지국가가 생태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에도 유능하다.”
지난 2016년 11월26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광화문 광장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런 맥락에서, 한국판 뉴딜에는 “광범위한 사회보호 장치의 구축”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및 불평등에 대한 구조적 개혁”이 미비하며, 탄소중립 목표가 불확실한 그린 뉴딜은 “무늬만 뉴딜”에 그칠 뿐이다. 또한 “임금노동자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방치한 채 자영업자 의무가입제를 전제한 고용소득보호 전국민고용보험제를 선언하는 것은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K방역의 떠들썩함 뒤에 여전한 공공의료 미비의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패작으로 꼽히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다. “정권 초기에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용으로 하는 ‘세 바퀴 경제정책’을 내세웠지만 정작 그 세 가지의 발목을 잡는 것이 부동산 불로소득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 정책 실패의 근원이라는 지적이다. 근본대책 대신 마련한 ‘핀셋’ 증세·규제는 “사후약방문”일 뿐이었으며,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하면서도 동시에 부동산 투기를 자극하는 이율배반적 정책을 추진했”는데, 특히 다주택자의 임대주택 등록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한 임대주택 등록제는 “치명적 오류”였다. 이에 따라 근원적으로는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정책철학을 갖추고 토지보유세 강화와 토지공공임대제 방식의 주택공급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아울러 단기적으로 임대주택 등록제의 획기적 개선과 양도소득세 중과정책의 완화 등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시된다. 이와 함께 “특혜의 문제점이 규제의 편익을 압도”한 재벌개혁의 후퇴와 “비정규직 공약을 비롯한 주요 노동정책 공약을 거의 이행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에 대한 지적은, 촛불정부에 그야말로 뼈아픈 대목이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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