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산방 2층 서점 풍경. 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박미향 기자
[책&생각]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꿨다. 출판시장에서도 비대면 경제의 영향은 지대하다. 인터넷서점과 온라인 콘텐츠는 급성장한 반면 오프라인서점은 맥을 못 췄다. 어려움은 소규모 서점일수록 더욱 컸다. 불완전한 도서정가제에 더해 코로나19가 초래한 비대면 도서 구매의 확산은 전국 서점들의 생존을 벼랑으로 몰고 있다. 서점에서 직접 책을 보며 고를 수 있는 독자의 선택 폭도 그만큼 줄고 있다.
“건강한 책 생태계를 위하여 달린다!”를 내걸고 500킬로미터 전국 서점 순례 대장정이 시작된 지 8일째다. 마라톤은 부산의 영광도서에서 출발해 대전의 계룡문고를 거쳐 서울의 땡스북스까지 이어진다. ‘달리는 스님’으로 이름난 마하붓다사의 주지 진오 스님(복지법인 ‘꿈을 이루는 사람들’ 대표)이 서점인들의 염원을 안고 매일 10시간씩 달린다. 작가와의 만남 등을 열심히 개최하며 지역 독자들의 문화 사랑방 구실을 해온 전국 중형 서점들의 모임인 한국서점인협의회와 여기에 소속된 경북 구미의 삼일문고 김기중 대표가 행사를 기획했다. 김기중 대표는 지난해 6월 기업회생 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영업이 멈춘 국내 매출 2위 서적 도매업체 인터파크송인서적을 인수하기 위한 컨소시엄에서 활동하다가 최근 새로 구성한 인수 추진 법인의 대표로 뛴다. 서점인들의 뜻을 한데 모으고 국민 주주까지 더해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캠페인에 나선 것이다.
현행 출판유통 구조는 지역서점 입장에서 매우 불합리하다. 모든 책을 거래하는 도매업체가 대한민국에 한 곳도 없으니 서점에서 다양한 구색을 갖추기 어렵고, 서점이 출판사로부터 공급받는 가격(서점 매입률)도 출판사와 직거래하는 대형 온·오프라인서점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안정적인 도서 공급망 확보와 서점의 유통 마진율 개선, 세련된 공간과 전문 서가를 갖춘 지역서점을 운영하려면 단순한 출판 도매업체가 아닌 도매유통사 겸 서점 마케팅 회사가 필수적이다. 서점인들은 서점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며 지역서점 활성화를 다양하게 뒷받침할 출판 도매회사를 꿈꾼다.
물론 회사 이름은 트라우마가 된 ‘송인’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겠지만, 회생 계획안 제출을 위해 12일까지 투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인수 금액 35억원 중 서점인들의 합심으로 20억원 정도가 모였고 나머지는 출판계와 국민 주주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
다. 이미 각지의 작가와 출판사, 독자들이 모금 대열에 참여했다는 소식이다. 만약 인수 금액이 부족해 이대로 청산이 되면 영세한 출판사들의 피해는 물론이고 지역서점의 새로운 도약대가 마련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20년 전에 나온 요쉬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가 뚱뚱했던 독일 정치인의 자기 개혁을 위한 마라톤 체험담이라면, 오늘 서점인들의 마라톤 캠페인은 서점 경영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책 생태계의 진화를 지향한다. 서점인들이 주체가 된 세계 최초의 서적 도매 유통회사의 출범을 응원하며, 출판유통 혁신과 개성 넘치는 지역서점의 활성화를 바라는 이들의 동참을 바란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