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양경언의 시동걸기
말이 시로, 시가 노래로: 운동해요 운동!
사부작 활동가 외 7명 지음/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2020)
발달장애인의 말을 시로 옮기고, 그를 바탕삼아 노래를 만드는 활동에 시작품을 비평하는 역할로 참여한 적이 있다.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활동가들의 음반책 <운동해요 운동!> 제작 활동이 그것이다(해당 책자는 판매용으로 제작되지 않았으므로 책을 읽고 싶은 독자는 따로 사부작의 이메일 sabujak2017@naver.com으로 연락을 취하면 된다).
‘사부작’은 발달장애청년의 ‘마을살이’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이다. 이들은 발달장애청년들의 ‘문화 만들기’, 생활공간에서 발달장애청년들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놀 수 있도록 하는 ‘길동무 연결’ 등의 활동으로 누구나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그중 ‘사부작 뮤직’은 발달장애인의 솔직하고 독특한 표현, 개성 있는 리듬으로 채워진 말에서 시적인 활력을 발견하여 그로 시를 짓고, 곡을 붙임으로써 많은 이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탄생시키는 활동을 이른다. ‘음반책’에는 이러한 활동과 관련된 이야기와, 낯설게만 느껴질 줄 알았던 모르는 이의 언어가 다른 이의 마음에 성큼 다가가 서로 ‘잘 아는 감정’을 나누는 상황을 만드는 시작품들이 담겨 있다.
사부작 활동가들의 시를 살피며 새삼 예술이 출발하는 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작가의 의도를 따져가며 시를 읽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화자의 규칙적인 일상에 대한 바람을 담은 시(이정찬, ‘운동’)나, 친구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표현방식을 잃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담은 시(여인찬, ‘만화’)를 읽다보면 시는 누군가가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언어로는 쉬이 누설할 수 없을 무언가에 대한 바람으로 시작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는 얘기다. 시의 기원 역시 머나먼 옛날 공동체가 서로의 안전을 바라며 간절한 기도와 함께 올렸던 제의에서 나눈 말에 닿아 있지 않은가. 특히 김수진의 말로 만든 시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가 나의 옆에 있는 ‘누구’에 의해 가능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느껴진다.
“누구야?/ 나는 소피아, 좋아하는 노랠 불러줄게/ 누구야?/ 나는 연두야, 날마다 생생하게 웃어줄게/ 누구야?/ 나는 타잔이야, 힘들 때 아아아 달려갈게/ 누구야?/ 나는 다래야, 맛난요리 같이 해 먹자// 그러는 너는 누구야?/ 나는 피아노, 피아노야/ 피아노 치고 춤 출 때 행복한 사람/ 네가 누군지 알고 싶은 사람// 누구야?/ 나는 이정찬, 만나서 정말 반가워/ 누구야?/ 나는 달님이야, 하나뿐인 너를 낳았지/ 누구야?/ 나는 나야, 지금 네 곁에 있어/ 누구야?/ 나는 나야, 지금 네 곁에 있어”(김수진의 말로 만든 시 ‘누구야?’ 전문)
화자의 ‘누구야?’라는 질문은 상대를 잘 몰라서가 아니라 상대를 환대하기 위한 바람을 담고 출발한 물음으로 들린다. 또한, 그런 말을 꺼내는 화자 자신의 위치가 동시에 드러나므로, 이 물음은 상대를 향해 자기 자신의 안부를 발신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이의 말에는 그 말이 출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올해는 어떤 말의 출발을 짚는 일의 중요성을 새기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는 몇몇 정치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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