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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절정에 올라탄 그림책, 도전하는 어린이·청소년 문학

등록 2020-12-25 04:59수정 2020-12-25 08:35

[책&생각] 한미화의 2020 어린이·청소년책 결산
신인 작가 배출, 성인 독자 유입으로 눈부시게 성장한 그림책
소재 다양성 아쉬웠던 어린이문학, 에스에프 약진한 청소년책

한국 그림책의 선전은 눈이 부셨다. <구름빵>의 백희나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을 받으며 2020년은 시작되었다. 세계적 그림책 상을 수상하고, 스타 작가가 탄생하고, 성인 독자가 참여하며 그림책 시장은 질과 양에서 변화를 맞았다. 백희나를 비롯해 마니아 독자를 거느린 작가가 여럿 탄생했다. 안녕달의 <당근 유치원>, 이지은의 <이파라파냐무나무>, 조원희의 <미움>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특히 고무적인 현상은 지속적인 신인 작가들의 유입이다. 사설 그림책 교육 기관에서 공부를 했거나 응모전을 통해 혹은 독립 그림책을 출판하다 데뷔하는 등 시작도 다양하다. 주로 독립출판물을 발표해온 조호는 <나의 구석>으로 첫 번째 그림책을 선보였다. 작가의 분신인 까마귀가 자기만의 방을 꾸며가는 모습, 나아가 내면을 가꾸어 가는 모습이 눈부시다. 제본선이라는 종이책의 물성을 내용과 조응시켜 연출한 점도 빼어나다. 이명환의 <미장이> 역시 완성도가 높다. 미장 일을 하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아들의 시선이 그림책 전체를 감싸 안는다. 아버지가 붙이는 타일의 이미지를 책의 시각적 구조와 연결한 점도 흥미롭다.

성인 독자가 그림책의 자장 안으로 들어오며 어른 그림책 또한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이는 독자의 확장뿐 아니라 변화한 작가 의식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죽을 자리를 찾는 산양을 주인공으로 삼은 고정순의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 먼저 세상을 떠난 배우자를 그리워하는 노인의 하루를 보여주는 이명환의 <사랑하는 당신> 등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요안나 콘세이오, 키티 크라우더, 마리 칸스타 욘센 등 비영어권 국가의 그림책까지 더해진 풍성한 한 해였다.

2020년 출간된 어린이 책을 살핀 자리에서 작가와 평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이 있다. 볼만한 책이 너무 많은 그림책에 비해 어린이문학은 신선함이나 다채로움이 부족했다는 평이다. 비단 어린이·청소년 문학에 해당하는 말만은 아니다. 본다는 것에 비해 읽는 것이 열세에 놓인 시대의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어린이책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올해부터 초·중·고 전체 학년에서 시행된 ‘한 학기 한 권 읽기’다. 읽기가 정규교육 과정으로 들어오며 작품성과 재미가 검증된 동화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10년 만에 <만복이네 떡집>의 후속 시리즈가 나오고 <푸른 사자 와니니>의 2권이 출간된 것도 이런 영향력 안에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읽은 책으로 알려져 역주행한 <아몬드>의 선전도 십 대가 어떤 이유로 책을 읽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주었다.

어린이문학에서 신인 작가의 등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출판사 공모전이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 <꽝 없는 뽑기 기계>의 곽유진, <고양이 해결사 깜냥>의 홍민정, <5번 레인>의 은소홀, <독고솜에게 반하면>의 허진희, <유원>의 백온유 등 올해 주목받은 신인 작가들은 공통으로 문학상을 통해 재조명받거나 이름을 알렸다. 이중 저학년 동화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깜냥이라는 쿨한 고양이 캐릭터를 등장시켜 시리즈 동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청소년 문학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십 대 소녀 특유의 심리에서 비롯된 여왕과 ‘은따’ 이야기지만 탐정과 마녀를 등장시켜 새롭게 직조했다.

최근 어린이·청소년 문학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흐름은 성인 문학과 마찬가지로 장르물의 약진이다. 탐정물이 여러 해 전부터 어린이문학의 주요한 형식을 담당했던 것처럼 에스에프(SF·사이언스 픽션) 혹은 스포츠 서사가 여럿 등장했다. 일관되게 에스에프를 발표해 온 최영희 작가는 일상의 에스에프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것이 특징인데 올해는 다소 묵직한 <써드>를 선보였다. 효율이 낮다는 이유로 책이 사라진 시대를 배경으로 용감한 돼지치기 소녀와 마음이 따뜻한 로봇 소년의 만남을 그린다. ‘프랑켄슈타인’ 같은 고전에 대한 오마주가 더해져 무엇이 인간다운지를 묻고 있다.

박상기의 <오늘부터 티볼>이나 은소홀의 <5번 레인>은 모두 스포츠 서사다. <오늘부터 티볼>은 야구와 비슷하지만 다른 티볼을 소재로 삼은 동화다. 저마다 어려움을 지닌 아이들이 티볼에 참여하며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5번 레인>은 언제나 승리를 위해 달렸던 엘리트 수영 선수 강나루가 라이벌이 등장하며 왜 수영을 하는지를 묻고 답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스포츠는 흔히 삶의 축소판으로 비유된다. 필연적으로 패배와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본질적으로 성장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린이·청소년 문학의 좋은 이야깃거리다. 또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십 대에게 이기고 지는 것을 넘어 살아가는 이유를 돌아보도록 이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여성의 서사도 이어졌다. 다만 풀어가는 방식은 달라서 이금이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역사소설로, 이현의 <전설의 고수>는 옛이야기를 차용해 여성이 살아온 삶과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그렸다.

올 한해 우리가 머문 현실의 시공간은 제한적이었지만 공유한 세상은 더 수평적이고 더 개방적으로 재편되었다. 이른바 뉴노멀의 시대, 어린이 책은 어떻게 답해야 할까. 도전과 숙제가 기다린다.

한미화 어린이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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