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가 도서정가제 폐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출판 시장은 양적 성장을 이뤘다. 코로나19로 ‘집콕’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책에 손을 뻗는 독자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교보문고는 올해 책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7.3% 증가했고, 특히 초등학습(31.0%) 과학(29.4%), 경제경영(27.6%) 분야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출판 업계가 마냥 웃진 못했다. 도서정가제 개정 문제로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첨예하게 대립했고, 업계 2위 책 도매업체 인터파크송인서적이 또다시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공포와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국내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위주였던 행사를 부랴부랴 수정해야 했다. 2020년 출판계를 뒤흔든 이슈 5가지를 짚어본다.
올해가 3년마다 돌아오는 재검토 시한이었던 도서정가제가 출판계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도서정가제는 책을 팔 때 정가의 15%(10% 가격 할인, 5% 경제상 이익) 안에서만 할인하도록 법으로 정한 제도다. 대형 서점의 할인 공세에 밀려 중소책방이 고사하지 않도록 출판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은 재검토 시한을 넉 달여 앞둔 지난 7월 점화됐다. 문체부, 출판계, 웹툰, 웹소설 업계가 1년 동안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대략의 합의안을 만들었는데, 문체부가 돌연 ‘소비자 후생’을 문제로 이 안을 재검토하겠다고 하자 출판계가 거세게 반발한 것이다. 출판인들은 국회 앞 릴레이 1인 시위,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한강·박준 작가 등과 함께 도서정가제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한 기자간담회를 여는 등 총력 저지에 나섰다.
지난 7월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도서정가제 공개토론회. 최윤아 기자
결국 문체부가 한발 물러섰다. 당초 민관협의체 합의안대로 ①도서 할인율 15%를 유지하고 ②재정가(책값을 다시 책정하는) 기한을 18개월에서 12개월로 완화하며 ③웹소설·웹툰 등 전자출판물 가격 표시 의무를 다소 완화하는 선에서 개정안을 내놨다. 현행 도서정가제를 사실상 ‘유지’한 셈이다. 핵심 쟁점이었던 전자출판물 도서정가제 적용 여부 등은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때문에 3년 뒤에 올해와 비슷한 논란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0월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한 ‘작가 대상 도서정가제 여론 조사 발표 및 작가 토크’ 에 참석한 박준(왼쪽) 시인과 소설가 한강. 한국출판인회의 제공
지난 6월 인터파크송인서적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외환위기 때 1차, 2017년 2차 부도에 이어 세 번째 존폐기로에 선 것이다. 앞선 두 차례 부도 사태 때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송인서적의 채무를 상당 부분 탕감해줬던 출판사들은 2년6개월 만에 날아든 법정관리 소식에 분노했다. 특히 2차 부도 이후 송인서적을 인수했던 모기업 인터파크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두 차례나 피해를 감수하고 회생시켰는데 출판계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회생절차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반년이 지난 현재도 인터파크송인서적 사태는 답보 상태다. 다만 신채권(인터파크 인수 후 발생한 신규채권) 70억원 가운데 30억원은 변제가 됐고, 이달 일부 중대형 서점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법원에 송인서적 인수의향서를 제출하는 등 해결 기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은 “채권단의 누적된 불신을 해소해 줄 만큼 인수 희망자가 안정적인 자금력을 확보했는지가 협상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6월 열린 인터파크송인서적 기업회생절차 신청 관련 긴급 간담회. 최윤아 기자
올해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구름빵>은 저작권 논의의 기폭제가 됐다. 지난 3월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구름빵>은 2004년 첫 출간 뒤 40여만부가 팔렸다. 캐릭터 상품과 뮤지컬·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백 작가가 받은 수익은 1800여만원에 불과했다. 출간 당시 무명이던 백 작가가 2차 콘텐츠 등 모든 저작권을 출판사쪽에 일괄 양도하는 ‘매절’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매절 계약은 출판계의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백 작가는 2017년 출판사인 한솔교육, 한솔수북을 상대로 저작권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걸었지만 지난 6월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 처리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출판사와 법적 싸움에서 패했지만 그의 소송으로 매절 등 출판사의 일방적인 출판 계약 관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출판계에서는 ‘을’의 입장인 신인 작가들의 처우 개선, 표준계약서 마련 등 ‘제 2의 구름빵’을 막기 위한 논의도 이어졌다.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 <한겨레> 자료사진
불황에 경제경영서가 잘 팔리는 건 외환위기 이후 반복된 패턴이지만, 코로나19로 경제가 직격탄을 맞은 올해는 그 경향이 더욱 또렷했다. 교보문고 연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안에는 출간 이후 40만부가 팔린 <더 해빙>을 비롯해 <돈의 속성>,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하기> 등 5종의 자기계발·경제경영 분야 도서가 이름을 올렸다. 특히 “돈에 대한 감정을 바꾸라”고 조언하는 <더 해빙>처럼, 돈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강조하는 책이 독자들에게 열렬한 관심을 받았다.
코로나19 시대 출판계는 온라인에서 ‘북택트’(book-tact)를 시도했다. 국내 최대 책 축제로 6월 열릴 예정이던 ‘서울국제도서전’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취소된 뒤 10월에 열렸다. 비대면 시대, ‘XYZ: 얽힘’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도서전은 오프라인 행사를 줄이는 대신 강연 생중계 등 온라인 프로그램을 늘려 진행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10월에 국내 처음으로 ‘모바일 북 페스티벌 2020’(모북페 2020)을 열었다. 온라인으로만 진행된 이 행사의 주제는 ‘잇다-북택트, 책으로 연결되는 나와 세상’이다. 국내외 출판사 139곳, 동네책방 71곳이 참여해 라이브 방송, 작가와의 온라인 만남 등을 진행했다. 서울시도 11월에 온라인에서 책 축제 ‘2020 서울 퍼블리셔스테이블X서점페어'(SPB20)를 개최했다. 동네책방과 독립출판제작자들이 참여하는 독립출판 축제로, 올해 처음 온라인에서 진행했다.
최윤아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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