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즈미르 남서쪽에 위치한 헤라클레이토스의 고향 에페소스
고대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신전 터와 장대한 유적의 흔적 남아
고대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신전 터와 장대한 유적의 흔적 남아
[책&생각] 신화와 축제의 땅, 김헌의 그리스 기행
⑫터키 에페소스의 자취
크루즈를 타고 그리스를 여행하면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장점은 배가 움직이는 호텔 노릇을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델로스 옆 미코노스에서 밤 11시에 출발한 배는 밤새 서서히 움직여 아침에 터키 서쪽 쿠샤다스(쿠사다시)에 도착한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곳이다. 배 위에서 일몰이나 일출을 볼 수도 있다. 어둠에 검게 물들었던 에게해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이 노을로 번져가는 모습은 자연이 짓는 예술이다. 호메로스가 표현했듯이 “불모의 바다를 쟁기질하며 달리는 것” 자체가 가슴 전체를 파랗게 물들인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 잔잔한 옥빛 바다, 드문드문 보이는 짙은 황톳빛 섬들, 양떼처럼 느릿느릿 걸어가는 새하얀 구름들, 햇볕에 따뜻이 데워진 살갗 위로 스쳐가는 상쾌한 바람, 그리고 다시 바람에 식혀진 피부를 데우는 강렬한 태양, 이 모든 것들이 온몸에 잠자던 감각들을 산뜻하게 깨운다.
쿠샤다스에서 차로 25분 정도 달리면 에페소스에 도착한다. 전설에 따르면, 에페소스를 세운 사람은 아테네의 왕자 안드로클로스였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고 있었는데, 불붙은 물고기가 튀어나가 불이 났고, 불길을 피해 멧돼지 한 마리가 숲속에서 튀어나왔다. 안드로클로스는 친구들과 함께 멧돼지를 쫓아가 잡고서는 그 자리에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일찍이 그는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갔다가 “물고기와 멧돼지가 너의 길을 인도하리라”라는 신탁을 들었는데, 바로 그 순간 신탁의 뜻을 깨달았던 것이다.
“에페소스는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를 중심으로 델로스 동맹이 결성되자 에페소스는 회원국이 되었다. 기원전 431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터지자, 에페소스는 아테네와 함께 스파르타와 싸웠다. 그러나 얼마 후, 아테네에 등을 돌리고 스파르타 쪽으로 붙었다. 미리부터 전세를 읽었던 것일까. 전쟁은 결국 27년 만에 스파르타 쪽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전쟁의 와중에 페르시아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던 스파르타는 이오니아 해변에 있던 그리스 식민도시의 많은 수를 페르시아에 넘겨줘야 했고, 에페소스는 그렇게 페르시아에 넘어간 대표적인 도시가 되었다.
나중에 알렉산드로스가 이곳을 정복하면서 에페소스는 페르시아의 치하에서 벗어나 다시 그리스의 도시가 될 수 있었다.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에페소스는 더욱더 번성하며 최절정에 이르렀다. 지리학자 스트라본이 “에페소스는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지금도 수많은 그리스 로마 유적이 에페소스의 영광을 가늠하기에 충분하게 남아 있다. 특히 독보적인 조형미를 뽐내는 켈수스 도서관과 25000명을 수용했다고 하는 거대한 극장은 압권이다.
에페소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뜻깊은 곳이다. 만물은 불이며, 이글거리는 불처럼 쉼 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것이 만물의 본성이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의 고향이 바로 에페소스이기 때문이다. 인근에는 다른 유명한 철학자들의 고향도 여럿 있다.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남쪽으로 달리면 밀레토스에 갈 수 있다. 그곳은 서양철학의 요람이다. 그리스 철학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탈레스가 그곳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만물을 이루는 근본요소는 물이라고 했다. 탈레스가 헤라클레이토스를 만났다면,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물과 불의 만남이니,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을 것만 같다. 물론 둘은 만난 적이 없다. 탈레스가 세상을 떠날 때,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섯 살쯤 된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에페소스와 밀레토스와 함께 정삼각형의 꼭짓점을 이루는 서쪽 바다에 사모스섬이 있다. 그곳은 삼각함수로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고향이다. 그는 만물은 물이나 불 같은 것이 아니라 수로 이루어져 있고, 우주는 수의 완벽한 비율로 질서를 이루는 코스모스라고 주장했다.
사모스섬 서쪽 가까이에는 ‘이카리아’라는 섬이 있다. 그곳에는 하늘을 날다가 떨어져 죽은 이카로스라는 신화의 주인공이 묻혀 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의 전설적인 건축가이며 발명가인 다이달로스였다. 크레타섬의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의 궁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미노스 왕에게 미움을 사자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와 함께 그 궁전에 갇혔다. 탈출을 궁리하던 다이달로스는 마침내 이카로스와 함께 새의 깃털을 모아 커다란 날틀을 만들어 등에 짊어지고 날아올라 미로를 빠져나왔다. 탈출의 기쁨도 잠시, 하늘을 날게 되자 흥분한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너무 높이 날아오르다 참변을 당했다. 이글거리는 태양열이 깃털을 이어 붙인 밀랍을 녹이는 바람에 바다로 추락한 것이다. 그의 시신을 수습한 다이달로스는 아들이 추락한 곳 가까이에 있는 섬에 묻었다. 그 섬이 이카로스의 이름을 딴 이카리아섬이다.
기독교의 유서 깊은 명소로 가득
에페소스에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다. 이곳의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본토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수많은 젖가슴을 가진 풍요와 다산의 여신으로 그려진다. 첫 번째 신전이 홍수로 무너지자, 기원전 6세기 중반에 재건했다. 새로운 신전은 전설적인 부자로 유명한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돈을 대서 웅장하게 세워졌다. 과시욕이 강했던 그는 신전과 함께 자신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길 원했다. 그러나 그 신전은 어이없이 무너졌고, 크로이소스 대신 엉뚱한 이름이 신전과 함께 기억되고 있다. 기원전 356년에 헤로스트라토스라는 천한 신분의 사내가 신전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의 범행 동기는 크로이소스 왕과 같았다. “나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
이때 아르테미스 여신의 사제들은 어디에선가 장차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인물이 태어난 것 같다며 전율했다고 한다. 그 예언은 사실이었을까? 신전이 불타던 날, 때마침 마케도니아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쳐 그녀의 배를 때리더니, 불길이 번져 세상을 전부 태우더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2년 뒤, 알렉산드로스가 에페소스에 방문해서 아르테미스 신전의 재건 비용을 댈 테니 자신의 이름을 신전 앞에 새겨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의도도 크로이소스와 같았을 것이다. 사제들은 예전의 방화사건을 떠올리며, 예언의 인물이 바로 그였음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들은 제안을 거절하기 난처했지만, 거절해야만 했다. 신과 같이 불멸하고자 하는 인간의 불경스러운 욕망이 또다시 경건한 신전을 더럽히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슬기로운 거절이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신이신 폐하께서 다른 신을 위해 신전을 짓는 것은 적절한 일이 아닙니다.”
그 후 에페소스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더 웅장한 새 신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고트족의 침략에 무참히 파괴되고, 나중에 기독교에 의해 폐쇄되면서, 지금은 신전의 주춧돌과 함께 기둥 하나만이 외롭게 남아 있다. 아르테미스 여신을 기리는 화려한 행렬과 함께 대규모 축제가 봄이 되면 열렸다고 하는데, 자세한 기록은 신전처럼 사라지고 폐허 같은 단편들만이 아득한 메아리처럼 전해진다.
에페소스는 기독교인들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말 성경에는 에베소라고 하는데, 기독교의 초석을 세운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운 곳이다. 에페소스로부터 5㎞ 정도 떨어진 산속에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말년을 보냈다는 유적지도 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마리아가 다가오자, “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라고 했고, 그 곁에 있는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다”라고 했다. 요한은 예수의 말을 명심하며 마리아를 이곳에서 모셨다고 한다. 마리아의 죽음 이후, 요한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파트모스섬(밧모섬)에서 마지막 삶을 보내며 ‘계시록’을 집필했다. 이렇게 에페소스는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기독교의 유서 깊은 명소로 가득한 문명의 보고와도 같은 곳이다.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터키의 고대도시 에페소스에 있는 극장의 모습. 김헌 제공
에페소스의 켈수스 도서관 전경. 김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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