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으로 고통을 겪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
의술의 신을 모신 에피다우로스는 아픈 이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한 공간
의술의 신을 모신 에피다우로스는 아픈 이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한 공간
[책&생각] 신화와 축제의 땅, 김헌의 그리스 기행
⑩ 아스클레피오스의 신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피로감이 만연해 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힘든 상황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힘든 가운데, 각별히 고단한 시기를 보내는 이들은 방역 담당자와 의료진이다. 그들의 노력 덕택에 우리의 두려움 이상으로 사태가 악화되진 않고 최악의 상황은 피하는 것 같다. 옛 그리스인들이라면, 이들의 헌신을 신비로운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의사’와 ‘간호사’를 한갓 인간이 아니라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제들이고 후예라 믿었다. 병으로 고통을 겪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의술은 연약한 인간에게 신이 베푸는 은혜로운 섭리로서 경외의 대상이었으며, ‘병원’은 치유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신전이었다.
그런데 그 신전의 주인 아스클레피오스는 원래 신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태양의 신 아폴론이었지만 그의 어머니 코로니스가 인간이었기 때문에 둘 사이에 태어난 아스클레피오스는 반인반신의 영웅일 뿐이었다. 신이 아닌 그가 어떻게 신이 되었을까?
아스클레피오스의 기구한 탄생
아스클레피오스의 탄생은 기구했다. 코로니스는 아폴론의 총애를 감격스러워했지만, 불경스럽게도 다른 사내를 마음 깊이 품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아폴론은 진노했고, 화살을 쏘아 사내의 목숨을 단박에 끊어버렸다. 한편 아폴론의 누이 아르테미스 여신은 괘씸한 코로니스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아니, 코로니스를 쏜 것은 아르테미스가 아니라 아폴론 자신이었다는 전설도 있다. 비명횡사한 코로니스의 시신이 화장의 불길에 휩싸일 때, 아차 싶었던 아폴론은 황급히 코로니스의 배를 가르고 간신히 아이를 꺼냈다.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을 뻔한 아스클레피오스의 생명이 기적적으로 건져진 순간이었다. 그는 곧 영웅들의 스승 켄타우로스족의 현자 케이론에게 맡겨져 양육되었다.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아스클레피오스에게 가장 요긴한 것은 바로 의술이었다.
그러나 의술의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었다. 어둠을 비추는 태양이 그렇듯, 아폴론은 어둠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을 이겨내는 힘이 있었다. 의술도 병마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라는 어둠을 물리치는 밝은 태양과 같은 것으로 이미 아폴론의 것이었다. 그렇게 아폴론의 의술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유전되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자녀들도 모두 의술의 귀재였다. 휘기에이아(위생), 이아소(회복), 아케소(치료), 아이글레(화색), 판아케이아(모든 이들의 치유)가 다섯 딸의 이름이다. 이들 모두가 아버지를 도와 신전의 여사제로 일했다. 특급 간호사였다. 세 아들도 아버지를 돕는 신전의 사제로서 의사였고, 이 가운데 둘은 트로이아 전쟁에 그리스 연합군의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이 신화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찾는 병원은 거룩한 신전이며, 의사는 아스클레피오스 신과 같고, 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들은 신의 딸처럼 신비로운 존재인 셈이다.
그런데 의술은 여타 불사의 신들에겐 불편한 것이었다. 특히 저승의 신 하데스는 당혹스러웠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늙고 병들어 죽어야 할 사람들을 치유하고,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 되살려내자 저승세계의 출입구가 한산해진 것이다. ‘이러다가 아무도 저승으로 오지 않겠군!’ 걱정이 된 하데스는 제우스에게 불만을 터트렸고, 이에 추동된 제우스는 냅다 번쩍이는 번개를 던졌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번개를 맞고 목숨이 꺼져버렸다. 이대로 끝인가? 아들의 죽음을 안 아폴론은 제우스에게 항의했고, 보복했다. 제우스의 번개를 만드는 외눈박이 거신 퀴클롭스를 죽인 것이다. 격노한 제우스와 아폴론 사이에 지난한 신경전이 지속되었다. 마침내 제우스는 아스클레피오스를 불쌍히 여겨 하늘의 별자리로 빛나게 하고, 나아가 불사의 신으로 부활시켜 올림포스에 거주하게 하였다. 한갓 인간에서 불멸의 신이 된 것이다.
로마가 제국으로 군림하던 때, 식민지 유대 땅에 예수가 태어나 가난한 민중의 친구로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쳤으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의 제자들은 그가 다시 살아나 승천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예수는 인간이지만 동시에 신의 아들이며 신 자체라고까지 했다. 유대인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한 로마제국의 이방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그 이야기를 낯선 것으로 조롱하고 거부하기보다는 ‘유대판 아스클레피오스’의 신화라고 귀담아듣고 끄덕였을 것 같다.
아스클레피에이온을 찾은 환자들
고대 그리스 곳곳에 300여 개나 있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은 병원 노릇을 했다. 그 신전을 ‘아스클레피에이온’이라고 한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 옆에도 있었고,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고향 코스섬에도 여전히 웅장한 자태를 지키며 값진 유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아스클레피에이온은 에피다우로스에 있었다. 아테네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펠로폰네소스반도로 달리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파우사니아스는 그곳이 아스클레피오스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아스클레피오스의 어머니 코로니스는 임신한 채 신의 화살을 맞고 죽은 것이 아니었다. 에피다우로스로 와 아이를 직접 낳았던 것이다. 미혼인 자신이 아이를 가진 사실을 자기 아버지에게 숨기려고 몰래 아이를 낳아 산에 놓았는데, 염소들이 아이에게 젖을 먹여주고 개들이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주었다. 아폴론의 가호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에피다우로스에 아스클레피에이온이 세워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여기에서 의학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데 에피다우로스의 유적지는 병원의 모양새라기보다는 일종의 복합 레저타운에 가깝다. 아스클레피에이온과 아스클레피오스가 머물렀다는 원형의 톨로스가 중앙을 이루고 그 주변으로 아스클레피오스, 아폴론, 아르테미스, 테미스를 위한 제단이 있어 성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아스클레피에이온을 찾은 환자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 목욕탕이 곁에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가까이 동북쪽으로 단정하게 닦인 스타디온이 보인다. 올림피아 제전처럼 화려하고 성대한 잔치는 아니었지만, 나름 규모가 있던 스포츠 제전이 3, 4년마다 한 번씩 열렸다고 한다. 그리고 멀리 서북쪽으로는 산비탈을 깎아 객석을 만든 웅장한 극장이 위용을 뽐낸다. 병을 고치는 곳이라지만, 놀기 딱 좋은 곳이다. 우울한 분위기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치료의 핵심이 수술과 투약처럼 보이지만, 예전에는 휴양과 축제를 치료의 핵심이라 믿었던 것일까?
이곳에 환자가 오면, 일단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식이요법에 맞춰 식사를 했다. 무엇보다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신전에 들어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기도하고 명상에 잠겼으며, 신전 바닥에 누워 숙면을 취했다. 숙면의 목적은 꿈에 아스클레피오스 신을 만나는 것이었다. 사제들은 환자들을 재우면서 아스클레피오스 신이 찾아올 테니 그분의 말을 잘 기억하라고 다독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꿈에서 신을 만났다. 신을 만나지 못하고 다른 꿈을 꾼 이들은 그 꿈을 사제들에게 이야기했다. 사제들은 모든 꿈을 아스클레피오스 신의 계시로 해석하면서 그에 맞춰 적절한 처방을 제시했다.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였을까? 환자들은 사제의 처방을 신의 계시라 곧이곧대로 믿고 열심히 따랐다. 틈틈이 운동도 하고 극장에서 음악과 연극을 관람하면서 몸과 마음을 추슬렀고, 운동대회가 열리기라도 하면 열정적으로 응원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수많은 환자들이 기적적으로 치유를 경험했는데, 아하, 이것이 과연 신이 부린 신통한 조화였을까, 아니면 그렇게 하면 누구라도 좋아지게 마련인 자연스러운 결과였을까?
아스클레피에이온에서 발굴된 유물들 가운데 특이한 것이 있다. 발과 다리, 손과 팔, 가슴, 머리, 게다가 성기까지 신체의 부분을 정교하게 조각한 물건들이다. 대체 뭘까? 회복된 환자들은 신전을 떠날 때, 자신의 치유된 부분을 조각하여 신에게 감사의 표시로 바쳤던 것이다. ‘신이여 고맙습니다. 이제 회복된 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당신 것이니, 착하고 바르게 살겠습니다.’ 이런 결심의 표시였다. 에피다우로스의 풍경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니, 코로나의 위기를 헤쳐 나갈, 뭔가 슬기로운 지침이 보이는 것만 같다.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에피다우로스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유적. 김헌 제공
에피다우로스의 신전 터. 김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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