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케네 왕궁터에서 바라본 미케네 평원. 김헌 제공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역사라 믿었다. 7살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그림책이 그에게 평생의 꿈을 심어주었다. ‘영웅들의 궁전을 찾아가리라.’ 가난 때문에 14살부터 식료품점에서 일을 했던 그는 한 주정뱅이가 <일리아스>를 구성지게 낭독하는 것을 듣자,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을 느꼈다. 악착같이 일하며 사업에서 성공한 그는 48살의 나이에 꿈을 향해 떠난다. 터키의 히사를리크에서 발굴을 시작한 그는 층층이 쌓인 아홉 개의 도시와 황금의 유물들을 발견하고, 트로이아와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고 발표했다. 얼마 후 그는 펠로폰네소스반도 동북쪽 카르바티라 불리는 곳으로 갔다. 무너진 성벽에 오래된 먼지가 두껍게 덮인 산에서 화려하고 거대한 도성을 상상할 수 있었던 슐리만은 전설의 미케네를 찾아냈다. 그곳 초입에서 원형의 구조물을 파헤쳐 수많은 금제 유물들을 캐내었고, 그곳이 미케네 왕족의 무덤임을 밝혀냈다.
기원전 25년께, 지리학자 스트라본이 그곳을 찾았을 때, 찬란했던 미케네는 없었다. 그로부터 200여년 뒤, 파우사니아스도 그곳에서 페르세우스의 샘물만을 어렴풋이 그려냈을 뿐이다.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며 호메로스가 ‘길이 넓고 황금이 넘쳐나는’ 도시로 묘사했던 미케네는 트로이아 전쟁 이후 도리아인들에게 짓밟히고, 인근의 아르고스에 의해 폐허가 된 이후, 30세기 가까이 그렇게 버려져 있었다. 파우사니아스는 페르세우스가 미케네를 세웠다고 전한다. 제우스가 황금 소나기로 변해 다나에와 사랑을 나눈 뒤에 태어난 페르세우스는 눈만 마주쳐도 돌로 변한다는 메두사를 처치했다. 그는 목이 잘린 메두사의 몸뚱이에서 솟아난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타고 지중해를 질주하며 바다의 괴물과 싸워 안드로메다를 구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천하를 호령하던 아가멤논의 죽음
그러나 미케네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신화의 주인공은 단연 아가멤논이다. 슐리만은 원형의 왕족 무덤에서 황금가면을 발견하는 순간 ‘아, 아가멤논’이라고 직감했다. 지금도 ‘아가멤논의 가면’이라 불린다. 아가멤논을 아는 사람이라면, 미케네를 둘러보는 내내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미케네의 시작은 ‘사자의 문’이다. 두 마리의 사자가 크레타식 기둥 받침대에 앞발을 올려놓고 마주하는데, 머리는 잘려 나간 상태다. 부조로 새겨진 사자 밑으로 길고 커다란 돌덩이가 통째로 상인방을 이루고, 두 개의 돌기둥이 상인방을 지탱하며 땅에 박혀 있다. 문에서 좌우로 거대한 성벽이 길게 늘어서 입구를 이루는데, 돌덩어리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하다. 땅(가이아)과 하늘(우라노스)의 아들 외눈 거신 키클롭스 삼형제가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다. 트로이아 전쟁을 위한 출정식 때도, 전쟁에서 승리한 뒤 개선할 때도 아가멤논은 군대를 이끌고 이 문을 통과했고, 그 행렬을 따라 미케네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열렬히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분명 문 앞까지 나와 그를 배웅하고 마중했을 것이다.
사자의 문과 이어지는 성벽은 기원전 1350~1300년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전에는 산 정상에 세워진 왕궁과 그 부속 건물을 둘러싼 성벽만이 있었지만, 미케네가 번영하면서 확장된 것이다. 사자의 문을 통과하면 오른쪽에 원형의 왕족 무덤이 보인다. 바로 거기에서 슐리만이 아가멤논의 가면을 찾아낸 것이다. 트로이아 전쟁에서 승리한 아가멤논도 그 곁을 지나 왕궁으로 향했지만, 그는 며칠 후 그곳에 묻히게 될 판이었다. 아내가 그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가멤논이 그리스 연합군을 아울리스에 모았을 때, 바람이 불지 않아 트로이아로 출항할 수가 없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이 노했기 때문인데, 유일한 방법은 아가멤논의 딸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전쟁을 위해 딸을 희생시킨 아가멤논에게 분노했고 10년 동안 복수의 도끼날을 갈고 있었다. 개선식이 끝나고 따뜻한 목욕물에 몸을 담그고 여독을 풀던 아가멤논은 저항할 틈도 없이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그렇게 방금 지나쳐온 원형의 왕족 무덤이 그의 영원한 잠자리가 되었다.
비명횡사의 현장으로 가려면 사자의 문과 왕족 무덤을 지나 지그재그로 산의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 길옆으로는 도성 안에 살던 고위층 인사들의 집이 줄지어 있었을 것이나, 침략자들의 참혹한 파괴 탓에 지금은 흔적도 별로 없다. 반면 정상에는 최초의 성벽과 왕궁터가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곳에 서면 섬뜩한 상상을 하게 된다. 어디쯤에서 아가멤논은 아내의 도끼를 맞았을까?
미케네의 사자의 문. 두 마리의 사자가 크레타식 기둥 받침대에 앞발을 올려놓고 마주 보고 있다. 김헌 제공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의 복수
아가멤논의 비극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 처절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가멤논의 자식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다. 그들은 아버지의 복수를 꿈꾼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죽여야 한다. 반면 친모살해의 대죄를 피한다면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지 못한다. 어머니의 손길을 피해 숨어 지내던 어린 오레스테스는 성인이 되자 복수를 위해 미케네로 돌아온다. 복수는 성공했을까?
그리스 3대 비극작가는 남매의 복수극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무대에 올렸다. 아이스킬로스는 아가멤논의 무덤가에서 극을 시작하는데, 오레스테스가 복수를 결의하는 장면이다. 때마침 엘렉트라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지시에 따라 아버지의 무덤에 제주를 바치러 오다가, 극적으로 동생을 만난다. 슐리만의 추측대로라면, 둘은 사자의 문을 지나 원형 왕족 무덤에서 만났을 것이다. 그곳에 서면, 어디쯤에서 둘이 만나 복수의 계획을 짰을까, 한동안 멈춰 상상하게 된다. 궁전으로 잠입한 오레스테스는 먼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를 칼로 찌르고, 칼에서 피가 마르기도 전에 어머니를 겨냥한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오레스테스는 울부짖는다. “어머니는 죽여서는 안 될 사람을 죽였으니 받아서는 안 될 고통을 받으셔야죠.” “제가 아니라 어머니가 어머니 자신을 죽이는 거예요.”
소포클레스는 복수극의 서막을 왕궁 앞에서 시작한다.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위한 복수에 언제나 이글거리고, 아가멤논의 무덤에 제주를 바치라는 어머니의 지시를 거부한다. 아이스킬로스의 엘렉트라보다 훨씬 강한 모습이다. 아이기스토스가 궁을 비운 사이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는 만나 왕궁으로 들어가고, 엘렉트라는 다시 나와 주위를 살핀다. 그사이 궁 안에서는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울부짖는다. “내 아들아, 이 어미를 불쌍히 여겨다오.” 그러나 오레스테스의 칼날은 자비를 모른다. “아, 나를 찌르다니.” “아아, 또 찌르다니.” 약 3200여년 전 미케네의 궁전에서 울려 퍼졌을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미케네 궁전은 터가 좋다. 동쪽으로는 병풍처럼 높은 산이 둘러서 적들의 방어에 용이하고, 서쪽으로는 넓은 평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아가멤논은 아침에 일어나 서쪽 평원에서 백성들이 농사를 짓는 모습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에우리피데스는 복수의 무대를 왕궁이 아닌 미케네 변경의 언덕 위에 있는 초라한 농가로 잡았다. 어머니에 의해 강제로 결혼한 엘렉트라는 궁전에서 쫓겨나 있었다. 그곳으로 오레스테스가 찾아오고, 둘은 어머니를 잡을 함정을 판다. 엘렉트라가 아이를 낳았다는 거짓 전갈을 궁으로 보내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유인한 것이다. “오레스테스와 나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어머니를 죽여야 해요. 어머니의 행위가 정당한 것이라면 우리의 행위도 정당해요.”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는 훨씬 더 강력하다. 그녀는 농가를 찾아온 어머니를 오레스테스와 함께 찌른다. “얘들아, 제발 이 어미를 죽이지 마라!” 그러나 둘의 서슬 퍼런 칼날은 멈추지 않았다.
왕궁터에 서서 평원을 내려다보며, 에우리피데스의 두 남매는 어디쯤에서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였을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렇게 미케네의 문명은 몰락하고, 그리스는 암흑기로 접어든다.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