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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진혼의 제전’

등록 2020-06-26 06:01수정 2020-07-17 09:49

[책&생각] 신화와 축제의 땅, 김헌의 그리스 기행
⑥ 4대 범그리스제전(3): 네메이아 제전
아들을 잃은 네메이아의 왕, 2년마다 추모 위한 네메이아 제전 열어

로마인들이 그리스를 정복한 뒤엔 헤라클레스를 기념하는 제전으로
네메이아 제전에 참가한 이들의 대기실 앞에 선 필자. 김헌 제공
네메이아 제전에 참가한 이들의 대기실 앞에 선 필자. 김헌 제공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외여행도 요원하고, 대규모 관객이 모이는 콘서트도, 관중의 환호성이 충만한 스포츠 경기도 당분간 어렵다. 그 때문에 7월24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일본 도쿄 올림픽 경기도 전격 연기되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6월26일, 예년 같았다면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 북서부에선 또 하나의 범그리스 제전이 열렸어야 했다. 바로 네메이아 제전이다. 나도 이 제전에 참가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태양이 작열하는 스타디움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 뛸 꿈을 꾸었다. 그러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되었던 올림피아 경기가 1896년에 다시 부활했던 것처럼, 그로부터 100년 뒤인 1996년에 고대 네메이아 제전도 부활했다. 범 그리스 제전 가운데 ‘막내’였던 네메이아 제전은 제51회 올림피아 제전이 열리기 직전 해인 기원전 573년에 처음 열렸다. 네메이아 제전은 올림피아 제전이 열리기 직전 해와 열린 직후 해에 개최되었고,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기 전까지 계속되었다가 폐지되었다. ‘네메이아 경기 부활 협회’를 창립한 사람들은 현대 올림픽 경기가 너무 자본주의적 상업성에 오염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순수한 스포츠 정신과 화합의 이념을 회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상적이었다면, 바로 오늘 제7회 네메이아 제전이 열렸을 터이다. 이 대회는 누구라도 신청하면 참가할 수 있도록 활짝 열려 있다. 협회는 내년 여름에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공지를 올렸지만, 정말 가능할까?

네메이아의 사자를 무찌른 헤라클레스

제전이 열리는 네메이아에는 무시무시한 사자가 살았다. 티폰과 에키드나라는 어마어마한 거신(巨神) 괴물의 아들인데, 지옥의 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 사자 몸에 젊은 여성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 사자 머리에 등에는 불을 뿜는 염소 머리가 있고 뱀의 꼬리를 한 키마이라, 이런 괴물들이 네메이아 사자의 형제들이었다. 이놈은 칼과 창으로도 뚫리지 않는 가죽과 무쇠마저도 뚫을 수 있는 강력한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골칫거리를 물리친 영웅은 제우스와 미인 알크메네의 아들 헤라클레스였다. 그런 이유로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미워했고, 그에게 광기를 보냈다. 미친 헤라클레스는 자식들을 맹수로 착각하고 죽였다. 살인죄를 씻기 위해서는 12가지 과업을 수행해야 했다. 첫 번째 과업은 바로 네메이아 사자를 처치하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사자를 맞닥뜨려 활을 쐈지만, 날카로운 화살은 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헤라클레스는 굴로 들어가 맨손으로 사자와 맞붙었고, 그놈의 목을 힘껏 졸라 죽였다. 첫 과업에 성공한 헤라클레스는 사자 가죽이 탐났다. 하지만 벗길 수가 없었다. 칼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심하던 끝에 가죽에다 사자의 발톱을 그어댔다. 신기하게도 그 무엇으로도 뚫리지 않던 가죽은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발톱으로는 잘리는 것이었다. 그 후로 헤라클레스는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그것은 천하무적의 방탄복이었다. 사람들은 헤라클레스에 환호하였고, 그의 공적을 기념하는 성대한 운동경기를 개최했다. 그것이 바로 네메이아 제전이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는 모든 것이 제우스의 덕이라며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렸고, 그렇게 제우스는 네메이아 제전의 주신이 되었다.

제우스는 이에 보상이라도 하듯, 헤라클레스가 죽인 네메이아의 사자를 봄여름 밤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다. 헤라클레스도 죽은 후에는 사자의 뒤를 쫓는 찬란한 별자리가 되게 하여 아들의 용맹을 영원히 빛나게 했다.

네메이아 제전이 열린 스타디움의 출발선. 김헌 제공
네메이아 제전이 열린 스타디움의 출발선. 김헌 제공

억울하게 죽은 아이를 위한 추모

그런데 ‘헤라클레스 기원설’은 로마인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며, 정작 그리스인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네메이아의 어린 왕자 오펠테스를 추모하는 경기였다는 것이다. 왕자는 태어날 때, 혼자 걷기 전까지는 몸이 절대 땅에 닿아서는 안 된다는 신탁이 내려졌다. 어느 날, 아르고스에서 테베를 공격하려고 진격하던 일곱 장수들이 네메이아를 지나게 되었다. 목이 말랐던 장수들은 왕자를 안고 있던 유모에게 물을 좀 달라고 간청했다. 유모는 장군들을 돕겠다는 마음에 신탁을 잊고 왕자를 셀러리 밭에 내려놓은 뒤, 샘물이 있는 곳으로 장군들을 인도했다. 유모의 부주의로 아직 걷지 못하는 어린 왕자의 등이 그만 땅에 닿고 말았다. 신탁이 이루어진 것일까? 갑자기 용이 나타나 왕자를 칭칭 감고 조이자, 왕자는 비명횡사했다.

갈증을 해소하고 돌아온 장군들은 왕자를 죽인 용을 처치했지만, 아이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왕자의 장례식을 엄숙하게 치르고, 아이를 추모하는 성대한 운동경기도 열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지만, 아이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게 가슴이 아팠던 걸까? 아들을 잃은 네메이아의 왕은 2년마다 주변의 도시국가 사람들을 초청해 추모를 위한 네메이아 제전을 계속 열었다. 같은 해 봄에 열리는 이스트미아 제전이 그랬듯, 그해 여름에 함께 열리는 네메이아 제전도 어린아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전이었다. 우승자에게는 야생 셀러리 관이 주어졌다. 오펠테스 왕자가 셀러리 밭에서 참변을 당했던 것을 기리는 것이다. 또한 네메이아 경기의 심판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은 것도 어린 왕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였다. 현대 스포츠에서 심판들이 한때 검은 옷을 주로 입곤 했는데, 그것도 이 네메이아 제전의 전통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네메이아 제전은 나중에 아르고스에서도 열리게 되는데, 왕자를 추모한 일곱 장군들이 아르고스에서 왔기 때문이었다.

제우스 신전. 김헌 제공
제우스 신전. 김헌 제공

제우스를 위한 제전과 신전

하지만 ‘네메이아’라는 이름 때문에 사람들은 오펠테스 왕자와 함께 보통 헤라클레스를 떠올리고, 그가 네메이아에서 사자를 무찌른 사건을 상기한다. 무엇보다도 로마인들이 그리스를 정복하고 네메이아 제전에 함께 참여하면서, 위대한 영웅 헤라클레스를 기념하는 제전이라는 이야기가 더 큰 힘을 얻었다. 실제로 이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들은 헤라클레스의 용맹을 가진 사람이라고 찬양을 받곤 했다.

네메이아 제전이 열린 곳은 아테네에서 차로 1시간20분 정도면 도착한다. 이스트미아 제전이 열렸던 포세이돈 신전에서는 30분 거리다. 아테네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면 이스트미아 제전의 현장을 둘러보고, 네메이아 제전의 유적지로 가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 올리브기름 산뜻한 샐러드에 찰지고 고소한 빵, 향기롭게 잘 구운 양고기 스테이크에 네메이아 지방의 특산 ‘아기오르기티코’ 품종으로 빚은 적포도주를 곁들이면 기억에 오래 남을 맛있고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다.

포도밭 사이를 잠시 지나다 보면 곧 유적지에 도착한다. 입구는 곧바로 박물관으로 통하고, 서쪽 평지에 제우스의 신전이 있다. 멀리 동쪽 나지막한 언덕 중턱에 스타디움이 정갈하게 닦여 있다. 대기실에서 운동장으로 통하는 입구도 잘 보전되어 있다. 제우스의 신전은 몇 개의 기둥만 남아 있지만, 파란 하늘 배경으로 당당하게 우뚝 솟아 있다. 빈 곳을 상상으로 채우면 전체 위용이 느껴진다.

신전의 전면과 후면에는 6개, 좌우 측면에 12개의 기둥을 세우자. 32개의 중후하고 엄숙한 도리아 양식의 기둥이 세워지면, 기둥 안쪽으로 벽을 두르자. 벽 안쪽은 지성소의 내실인데, 입구 전면에 두 개의 기둥이 서야 한다. 곡선미가 우아한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일 것이다. 그 안쪽 깊숙이 2개의 기둥을, 양 측면에는 각각 6개의 기둥을 가지런히 세우자. 내실 안쪽 12개의 기둥은 모두 백합이 분수처럼 피어나듯 화려한 코린토스 양식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하나의 신전 안에 그리스를 대표하는 세 가지 기둥 양식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 신전의 기둥은 세 개뿐이었지만, 2002년에는 두 개를, 2013년에는 네 개의 기둥을 복원했다고 한다.

부디 내년에는 네메이아 제전에 참가하여 세상의 다양한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뛰고, 좀 더 많은 기둥이 복원된 것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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