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힘듦을 알아채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지난 1일 9살 아이가 아버지의 동거인에 의해 여행가방에 7시간 동안 갇혀 있다 숨지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아동 학대의 비극에 우리 사회는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차려진 분향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분노와 더불어 ‘미안함’이 가득하다.
아이들에게 더는 미안해하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면 그림책 <세상 모든 아이들의 권리>를 펼쳐 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은 ‘유엔(UN) 아동 권리 협약’(협약) 54개 조항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림으로 재구성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비준한 협약은 누구나 읽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공허한 구호’이기도 하다. ‘모든 아동은 생존할 권리가 있다’(6조), ‘정부는 폭력과 학대, 방치로부터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19조) 같은 조항을 마주하게 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슬픔이 밀려온다. 그럴수록 협약은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현실에서 실천돼야 한다. 책은 울고 웃는 아이들과 다양한 얼굴을 한 어른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으로 딱딱한 54개 조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아이들은 사랑 받을 권리가 있어.’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어.’ ‘모든 아이는 원하는 것을 믿을 권리가 있어.’ ‘누구도 아이를 때려서는 안 돼.’ ‘모든 아이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자기만의 비밀을 가질 권리도 있어.’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내용이지만 사회가 너무나 쉽게 외면하는 아이들의 권리다.
“이런 이야기가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날 거예요. 그래서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아동 권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책도 그런 방법 중 하나지요. 어쩌면 여러분도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서 아동 권리에 관한 지식을 알릴 수 있을 거예요.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어린이들이 좋은 삶을 누릴 수 있을 거예요.”(작가의 말)
아이든 어른이든 책장을 넘기면서 ‘당연한 권리’를 머릿속에 담고, 일상에서 되새김질한다면 작가의 생각은 현실이 될지 모른다. 아이들이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손잡고 한걸음 내딛는 것이다.
지은이 페르닐라 스탈펠트(스웨덴)는 어린이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작가다. <세상 모든 아이들의 권리>는 지은이가 시리즈로 내고 있는 ‘처음 철학 그림책’의 아홉번째 책이다. 초등학교 1학년 이상.
이승준 <한겨레21> 기자
gamja@hani.co.kr, 그림 시금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