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양경언의 시동걸기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문학동네, 2020)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은 채로 봄을 맞이하다보니, 이전과는 다른 일상의 풍경이 펼쳐지는 요즘이다. 각 대학들마다 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면서 교수자와 학습자가 인터넷 게시판으로 또는 이메일로 과제 및 의견을 주고받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점도 그중 하나다. 나 역시 온라인 수업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의 최근 관심사에 관한 얘기를 글로 접했다. 대개 학생들은 최근의 중요한 문제로 ‘코로나19’와 ‘엔(N)번방을 위시한 집단 성착취 영상 거래 사건’ 이 두 가지를 꼽았는데, 와중에 해당 이슈를 언급할 때마다 드는 본인의 감정을 ‘무기력하다’고 표현한 이들이 있었다. 분노가 치미는 만큼, 무기력할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해선 갈등을 일으키지 말라는 학습을 거듭 받아왔던 이의 경우 그럴 수 있을 테고, 한편으론 운신의 폭을 좁힌 상태에서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접하는 경우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싶어 스스로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일컬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나. 그렇다고 하기엔 지금 이 순간 반드시 분노하고, 맞서고, 해결해야 할 동시대적인 과제를 피하지 않고, 거기에 적합한 감정을 가지며 정면으로 대하고 있지 않은가. 청원, 해시태그 운동 등 활용할 수 있는 온갖 표현 수단을 동원해서, 온 마음을 다해. 이제 읽을 최현우의 시에는 무언가가 결여된 상태에 놓여 있거나 어떤 조건이 제약을 거는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그 상태를 끈질기게 받아들임으로써, 그러니까 그 상태의 내력을 결국은 이해함으로써 주어진 상황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끔 만들 줄 아는 이의 시간 감각이 드러난다. 핵심은 시의 ‘끈질긴’ 태도, 끝을 알지 못한다 해도 일단은 계속 행하는, 아름다운 집요함에 있다. “어느 날/ 마음이 먼저 죽는 날이 올 거다// 어떤 어깨/ 오른쪽으로 가방을 메는 사람에게는/ 왼손을 비워두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 거다// 풍경에 길들여진 얼굴은/ 지하철에서도 자꾸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물건을 오래 쓰고 고쳐 쓰다보면/ 흔적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처음 빙판을 걸었을 때/ 보폭을 망가뜨리는 일이 즐거웠다/ 둘 다 서투니까/ 손을 놓을 수 없으니까/ 자꾸 같이 넘어지면/ 먼저 일어나서 일으켜주고 싶어지니까// 내가 아는 속기사는 형편없는 기억력을 가졌는데/ 병실에 누워 의식이 부서질 때도/ 옆 침대에서 들리는 유언을 받아 적었다// 그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어떤 첼로/ 마찰을 지속하지 않은 현은/ 아무도 건들지 않는 거실 구석에서/ 음과 음의 기억을 떠돌다가/ 한 번도 내보지 못한 고음을 내며/ 펑, 끊어지기도 한다// 믿음도 연습이야/ 그 단 한마디에 구원을 버린 적이 있다// 그러니까 어느 날/ 무언가 먼저 죽는 날이 올 거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 있어서 유능할 것이다// 몸의 착각으로 만들어진 마음이 있는 것처럼/ 오늘도 오후 네시가 지나간다”(최현우, ‘오후 네시’ 전문) 시인의 말마따나, “믿음도 연습”이다.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살아 있어서”, 몸의 착각을 동원할지언정 일상을 재편하며 마음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그런 유능을, 좀 믿어줄 필요도 있겠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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