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로 온나라가 전례 없는 난리를 치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막막한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이른바 ‘코로나 블루’를 앓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의료계에서는 몸의 방역 못지않게 마음의 안정과 활력을 위해 책 읽기를 권한다. 하지만 긴급한 뉴스들에 묻히는 현실이다.
책 생태계에서도 출판 활동이나 유통, 판매가 모두 위축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건재한 인터넷서점과 달리 오프라인 서점 매장은 대부분 텅 비어 있고 전국의 도서관들도 문을 닫았다. 한숨밖에 안 나오는 상황 속에서도 독서문화 확대를 위한 새로운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 서점은 주문받은 책을 집까지 배달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고양시 공공도서관들은 지역 서점에서 구입하는 책에 대해 할인율 10%를 적용하지 않고 정가에 구입하기로 했다. 제주도 도서관에서는 이용자가 도서 대출 신청을 하면 차를 타고 받아가는 ‘북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를 선보였다. 전자책 월정액 플랫폼 업체인 밀리의 서재는 확진자와 자가격리자 대상으로 두 달 동안 무료 이용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입학과 개학 등 학사 일정이 모두 연기된 초중고 학생들에게 집에서 책 읽기는 중요한 학교의 권장 활동이다. 예를 들어 중학교 가정통신문이나 학교 홈페이지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휴업일 중 자기학습 자료’로 책을 추천한다. 한 중학교 국어 과목의 권장 도서로는 <홍길동전>(허균), <별>(알퐁스 도데) 등의 목록이 나온다. 다른 학교에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J.M. 바스콘셀로스),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포올러스), <갈매기의 꿈>(리처드 바크) 등을 추천했다. 한국 근대문학 작품들도 줄줄이 이어진다.
또 다른 중학교 3학년의 한문 과목 권장도서에는 1995년에 발행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자>(한호림)도 있다. 이 책을 비롯한 여러 권장도서나 추천도서들은 품절 또는 절판 상태로 시중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구해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학부모와 학생이 권장도서를 구하려고 중고서점을 뒤지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벌어진다.
물론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거나 필독서로 지정하고 학생들이 손글씨로 독서감상문을 써서 개학 후에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학생들을 생각해서’ 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50년 전, 100년 전 나온 ‘명작’이나 ‘고전’들이 2020년을 살아가는 고민 많은 아이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지 깊이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가뜩이나 ‘책’ 하면 고개를 가로젓는 디지털 시대의 학생들에게 책을 적으로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부모 세대의 필독서나 명작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고전 명작도 좋겠지만, 학교 교육과정에서는 청소년들의 관심사에 가까운 주제의 책부터 권하고, 읽기에 대한 흥미와 애착을 키우도록 했으면 한다. 청소년 책 추천 홈페이지 ‘북틴넷’이나 ‘책따세’(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사이트 등을 참조하면 좋겠다. 좋은 책은 많다. 교육정책의 공력이 부족할 뿐이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