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 수상의 쾌거를 거두었다. 한국 영화 101년 역사의 만만치 않은 온축이 빚어낸 감동의 순간이다. 도대체 봉준호라는 세계적 거장의 탄생 배경은 무엇일까. 궁금하던 차에 실마리를 발견했다. 봉 감독의 누나(봉지희 교수)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봉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책, 만화, 영화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는 성장 과정에서 문학과 만화로 상상력을, 교양서로 생각의 지평을 넓히며 자란 영화광이었던 것이다. 17년 전 인터뷰에서도 봉 감독은 “새 영화 작업에 들어갈 때 책은 늘 바탕이자 출발이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책의 힘이다.
예술가 집안인 봉 감독의 집에서는 독서가 일상이었다고 한다. 그런 가정에서 봉 감독의 책 읽기는 자연스러운 습관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독서 습관이 있는 사람들 다수는 성장기 가정환경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향, 혹은 책 읽기의 즐거움 같은 긍정적 독서 체험이 공통적이다. 즐거워야 또 하게 되고 습관으로 굳어진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독서환경은 어떤가. 대부분 마음의 여유 없이 살면서 스마트폰은 가까이, 책은 멀리한다. 한국인의 생애 독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가장 심각한 시기가 청소년기다. 인생의 자산이 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을 왕성하게 읽어야 할 때임에도 대학입시 부담과 넘쳐나는 오락 매체 등으로 인해 급격하게 책을 멀리하면서 평생에 걸친 ‘안 읽는 습관’이 형성된다.
이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고 사회적 노력을 모아나가고자 독서 관련 시민단체들이 모여 ‘2020청소년책의해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적극 후원한다. 지난 1월말 그 출발을 알렸다. 기존에 없었던 형태의 즐거운 청소년 책 추천 사이트를 만들고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여 선정하는 청소년문학상을 운영하는 등 여러 의미 있는 새로운 시도들을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이 처한 환경 속에서 책을 가까이하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은 몇가지 사업만으로는 불가능한 목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이 책을 가까이하는 환경 만들기’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청소년 독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힘을 모으는 데 뜻이 있는 분들은 네트워크(사무처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 올해를 계기로 지속적으로 청소년 책의 문화를 키우는 동력을 만들었으면 한다. 둘째, 청소년 스스로가 자신이 읽고 싶은 책과 만날 수 있는 기회(시간·공간·프로그램)를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제공했으면 한다. 어디까지나 어른의 시각과 강제성은 배제하고 청소년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셋째, 당장 나부터 하루 몇 쪽이라도 책 읽기에 시간을 할애했으면 한다. 어른들은 읽지 않으면서 펼치는 청소년 책의 해는 모순이다. 책 읽는 청소년이 많아질 때 꿈과 희망의 불평등도 사라질 것이다. 지면을 빌려 봉준호 감독을 청소년 책의 해 홍보대사로 초대한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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