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양경언의 시동걸기
양경언의 시동걸기
조온윤 지음/<창작과비평> 2019년 겨울호 눈이 오지 않는 겨울을 겨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어떤 이들에겐 ‘의미 없는 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눈이 오지 않아도 겨울을 겨울이라 불러야지 뭐라 달리 말할 수 있나. 시기에 따라 기온이 상승하거나 하강하기는 하지만 계절을 뚜렷이 구분할 수 없게 된 지 오래이지 않은가. 기후적 특징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사정은 최근의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고, 계절을 지시하는 말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상황은 갈수록 흔해질 것 같으니, 주어진 환경이 이름을 잃어가는 일에 심드렁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그를 두고 크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기가 멋쩍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오염수를 해양에 유출하기로 결정했다는 어느 정치권력의 결정과, 한 시기 내내 불타올라 잿더미로 바뀌어간 어느 숲의 풍경과, 계절의 이름을 영상 속 이미지로만 학습하는 어느 아이들의 처지 등을 한꺼번에 떠올리면서,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으나 분명히 진행 중인 어떤 변화를 의식하는 일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읽을 조온윤의 시에선 보이지 않는 것이 남기는 감정과 내내 상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상황이 드러난다. “높은 하늘 어딘가에/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너희가 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우리는 겁에 질린 개미처럼 파다하게 흩어졌지// 공중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 돌멩이를 줍는 사람 돌멩이를 파는 사람/ 발을 딛지 못하게끔/ 온 땅에다 불을 지르려는 사람도// 쨍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언제나/ 눈썹을 찡그리고 마는 우리를 위해/ 너희는 투명한 손차양을 만들어주지만// 오직 햇빛만을 통과시키는 비닐하우스처럼/ 너무 쉽게 찢어지고/ 흩어지는 몸을 지니고 있지/ 사람들은 투명한 컵에 담긴/ 투명한 물을 두고도/ 마실 수 있는 걸까 의심을 하지// 그러니 공중을 떠다니는 것들아 내려오지 마/ 혹여 지상에 발을 딛게 되거든/ 우릴 찾아오지 마// 우리는 결코 너희의 가벼움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만져지지 않고서는 마음이 존재함을/ 인정 않는 우리에게/ 너희의 투명함은 사랑받지 못할 거야// 그을린 발바닥처럼 뜨거운 먹구름이/ 사람들의 정수리를 밟으며 지나가네/ 우리가 놓쳐버린 풍선들을 거두는 고도에서/ 공기보다 가벼운 몸을 쥐고 둥둥 떠 있네// 투명한 빛을 볼 때면 언제나/ 마음과 상관없이/ 찡그린 표정이 되어버리는 우리지만// 사라지지 마 사람들이 쏘아올린 미움은 다시/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테니/ 돌멩이를 쥔 손은 가벼워지지 못할 거야/ 끝내 닿지 못할 거야”(조온윤, ‘오존주의보’ 전문, <창작과비평> 2019년 겨울호) 얼핏 이 시는 ‘오존층’을 향해 ‘너희’라고 부르며 환경에 대한 걱정을 전하는 동화처럼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너희”로부터 계속해서 영향을 받는 ‘우리’의 모습을 보라. “만져지지 않”는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눈앞의 것들을 “의심”부터 하는 상황에 내몰린 ‘우리’의 모습을 보라.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미움”을 “쏘아올”리는 공격을 행하는 모습을 보라. 미래가 가로막힌 상태가 전하는 공포는, 이름을 잃는 일이 계절에 국한된 것만은 아님을 알리는 것 같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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