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양경언의 시동걸기
황인찬 지음/창비(2019) 며칠 전 기차에서 겪은 일이다. 내가 앉은 좌석 부근에 있던 어린아이가 기차가 한창 움직이는 와중에 칭얼대기 시작했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땀을 흘리며 달래는 중이었음에도 무엇 때문에 아이가 우는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른들도 기차 안에 오래 머무는 일이 쉽지 않은데 아이는 오죽할까 싶어 안쓰러웠다. 그때였다. 같은 칸에 있던 웬 성인 남성이 아이와 아이의 부모를 향해 “거 좀 조용히 합시다!”라고 거칠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의 부모는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칸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고, 소리를 질렀던 남성은 자신의 세계로 빠져들려는지 팔짱을 낀 채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저 난데없는 적의를 어쩌면 좋을까. 본인의 잠깐의 휴식을 위해서 아이를 제압하려 드는 어른의 위력적인 목소리에 담긴 이기심이 너무하다 싶었다. 자연스럽게 표현을 하고 움직이면서 자라야 할 존재와 잠시도 함께 있질 못하는 어른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저조한 출산율 운운하면서 실상은 곳곳에 ‘노키즈존’이 살벌하게 있고, 아이를 통제 대상으로만 여기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아이가 모두의 보살핌 속에 안전하게 제 힘을 가꾸면서 자랄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은 멀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황인찬의 시에는 어떤 상태로 있는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맞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이야기 하자’에 가까울 때 그로부터 무언가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이의 얘기가 담겨 있다. 맞은편에서 들려올 목소리가 상대를 향해 말을 걸 줄 아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를 바라는 이는 ‘끝’을 고민할 때도 ‘무엇을 끝낼지’보단 ‘어떻게 끝낼지’에 대한 생각에, 그러니까 과정에 대한 생각에 힘을 할애하게 된다. “어떻게 끝내야 할까,/ 그런 고민 속에서 이 시는 시작된다// 문이 열리는 것이 좋을까, 영영 닫혀 있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없었다는 결말은 어떨까// …그런 생각 속에 있을 때,// “우리 이야기 좀 하자”// 맞은편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어떨까 목소리가 들려오면 이야기라는 것이 시작되겠지// 어떤 목소리는 이야기와 무관하게 아름답고, 어떤 현실은 이야기와 무관하게 참혹하고, 그런데도 이야기를 하자는 사람이 있구나//(중략)// 그렇다면 어떻게 끝내야 할까,// 영원한 폭우 속에 갇혀버린 채로 끝난다면 어떨까, 문을 열고 나가니 전혀 다른 골목에 도착한다면, 어쩌면 영원히 계속되는 이야기로 이야기를 끝낼 수도 있겠지//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렇게 끝내면 정말 끝나버릴 것만 같다//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이렇게 이 시를 끝내기로 했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네게 말을 건네며”(황인찬, ‘부서져버린’, <사랑을 위한 되풀이>) 맞은편에서 ‘거 좀 조용히 합시다’가 들려올 때와 ‘우리 이야기 좀 하자’가 들려올 때는 결과적으로 분명히 다른 상황을 만들어낸다. 2019년을 마무리할 즈음인 요즘, 그 둘 사이에 놓인 간극을 떠올리다보면, 이전의 세상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기 위한 말은 어떤 태도에서 빚어져야 하는지를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문학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