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이슈 털기] 홍콩 시위
전문가 추천도서 ‘홍콩정치와 민주주의’ ‘종족과 민족’ ‘홍콩산책’ 등
홍콩의 역사·정체성·저항의 뿌리, ‘중화주의’와의 충돌 이유 분석
전문가 추천도서 ‘홍콩정치와 민주주의’ ‘종족과 민족’ ‘홍콩산책’ 등
홍콩의 역사·정체성·저항의 뿌리, ‘중화주의’와의 충돌 이유 분석
6개월 동안 타올랐던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홍콩 시위가 11·24 지방선거(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 압승을 분수령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경찰은 2주간의 홍콩이공대 봉쇄를 해제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였으나, ‘세계 인권의 날’(12월10일)을 앞두고 8일 대규모 시위가 예고된 가운데 일상의 평화는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행정수반 직접선거 등 홍콩인들의 민주화 요구가 관철되기엔 갈 길이 멀다. 4·19혁명, 광주항쟁, 1987년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간직한 한국인들에게 홍콩시위는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쇼핑천국, 미식의 도시 정도로 알려져 있던 홍콩을 깊이 있게 이해해보려는 욕구 또한 높아졌다. 장정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박민희 <한겨레> 기자로부터 ‘홍알못’ 탈출을 도와주는 책들을 추천받았다.
홍콩인들이 왜 이토록 분노하는지 그 저항의 뿌리를 가장 압축적으로 요약한 책은 지난 10월 번역돼 나온 <홍콩의 정치와 민주주의>(한울)다. 홍콩 정치 연구자인 일본인(구라다 도루), 일본 역사 연구자인 홍콩인(장위민)이 공저한 것으로 입문서로 맞춤하다. 홍콩-중국 관계의 기본적 틀인 ‘일국양제’ ‘고도(高度)의 자치’ 등 모순과 절충으로 복잡한 홍콩 정치제도를 알기 쉽게 보여준다. 홍콩은 독자적인 통화·여권 발행 권한을 지녔고 올림픽에도 ‘홍콩·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출전하며 ‘정치적 중립’을 위해 공산당이 없는 특이한 ‘준국가’다. 동시에 인민해방군이 상주하고(그러나 군복을 입고 거리에 나갈 순 없다) 외교는 중국에 일임하는 ‘중국의 일부’다. 이 책은 1967년 노동쟁의로 시작했던 홍콩봉기, 1989년 천안문 지지 시위, 1997년 반환, 2002년 국가안전법 반대 시위, 2012년 중국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교과서 반대 시위의 역사를 훑으면서, 행정수반 직선제의 요구를 뿌리치고 ‘가짜 보통선거’를 도입한 중국 정부에 분노해 벌어진 2014년 우산혁명을 집중 조명했다.
홍콩 현장을 누비며 연구한 장정아 교수의 글은 홍콩시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종족과 민족>(아카넷, 2005, 공저)에 실린 ‘국제도시의 시민에서 국민으로’는 홍콩인의 정체성을 살피면서 홍콩인의 염원인 ‘자유’의 의미를 분석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인들은 자유무역항, 글로벌 금융도시로서 ‘경제적 자유’를 구가했지만 정치 참여의 기회는 엄격히 제한됐다. ‘민주 없는 자유’라는 표현이 나온 이유다. 영국은 식민지 반환의 정당성을 과시하기 위해 1980년대 반환 결정 무렵부터야 부분적인 정치개혁을 시도했다. 장 교수는 현재 홍콩이 겪는 정치적 혼란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쌓여온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짚는다. 중국을 가난과 야만, 독재와 폭력의 대륙으로 배제·차별화하며 형성된 홍콩인들의 정체성 역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차별하고 경멸하던 대상(중국)이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해지자 홍콩인 정체성이 딛고 설 기반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은 열려 있다. 장 교수는 공저자로 참여한 <도시로 읽는 현대중국2>(역사비평사, 2017)에서 2014년 우산혁명 이후 곳곳에서 벌어진 커뮤니티운동을 소개하면서 '이 땅은 지킬 가치가 있기에 여기서 살아가겠다'는 새로운 움직임에 주목한다. 이런 움직임은 2006년 부두철거 반대운동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그는 이런 풀뿌리 운동의 역량이 꾸준히 쌓여오면서 올해 100만 시위가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계간지 <황해문화> 2016년 가을호는 ‘중국과 비(非)중국: 타이완과 홍콩 다시 보기’라는 특집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중화주의의 구심력에서 벗어나려는 타이완(해바라기운동)과 홍콩(우산혁명)의 정치적 움직임을 분석했다. 국제적 관심은 집중됐지만 성과가 없었고, 탈중심 운동의 혁명성이 분열로 이어진 우산혁명의 한계, 홍콩에서 번진 중국인들에 대한 혐오, ‘윗세대의 번영’을 누리지 못하는 홍콩 젊은이들의 절망, 1997년 이후 사회 양극화, 산업구조의 기형화를 촉발하며 폭력적인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다가온 중국을 바라보는 홍콩인들의 불안을 응시한다.
중국이 왜 홍콩의 이탈을 용납하지 않는지 중국의 입장에서 살펴볼 수 있는 책들로는 <중국몽과 소프트 차이나>(리시광 엮음, 차이나하우스, 2013) <중국 공산당을 개혁하라>(바이강 등 지음, 성균관대 출판부, 2015) <중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모델론>(판웨이 지음, 에버리치홀딩스, 2010) 등을 들 수 있다. 조문영 교수는 “서구와 대적할 뿐 아니라 서구 문법에 종속되지 않는 ‘보편중국’ 혹은 ‘중국 모델’을 만들려는 시도를 이해하면, 홍콩시위 참여자들이 서구에 에스오에스(SOS)를 보내는 상황에 중국 정부가 왜 그렇게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중국인 모두가 ‘중국몽’이란 같은 꿈에 취해 있는 건 아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알렉 애쉬가 쓴 <우리는 중국이 아닙니다>(더퀘스트, 2018)는 앞으로 중국을 이끌어갈 30대 젊은이들의 맨얼굴을 묘사했다.
중국현대문학전공자인 류영하 백석대 중국어학과 교수의 <홍콩산책>(산지니, 2019)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여행 에세이인데 홍콩에 대한 전문지식과 풍부한 감수성이 어우러져 결코 가볍지 않다. 중국이 ‘국민화 정책’의 강도를 높일수록 더 거세게 반발하는 홍콩사회의 모습을 인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추천한 박민희 기자는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아 중국 당국이 중국 사회의 목소리를 철저히 억누른 가운데, 홍콩 시민들이 절박하게 자유와 변화를 요구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중국 당국이 아닌 사회 저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장정아 교수는 현재 홍콩이 겪는 정치적 혼란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쌓여온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했다고 짚는다. 사진은 지난 6월 시위 장면. 홍콩/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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