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 평론가는 “우리 아이 이렇게 독서영재로 키웠다, 우리 아이 이렇게 책 읽혀서 하버드 보냈다 같은 책들이 많은데 실은 그런 방법이 ‘우리 아이’에겐 안 맞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아이로 하여금 책을 더 싫어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조기축구회가 있다면 우리에겐 새벽독서회가 있다!”
대전의 독서모임 ‘짜릿한 탈출, 새벽 독토’는 3살부터 9살까지 어린 자녀들을 키우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엄마들이 한달에 2번 새벽에 만나서 책을 읽는 모임이다. 2년 전 아이의 손을 잡고 그림책 전문 서점인 ‘프레드릭 희망의 씨앗’을 오가며 알게 된 이들은, 처음에는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 읽기를 하다가 1년 전부터 엄마들끼리만 만나서 책을 읽고 있다. 이 모임의 정혜영 대표는 “어린 자녀가 두세 명 되다 보니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고, 아이 없이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부족해 엄마들끼리만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 고팠다”며 “다들 손꼽아 기다리는 이 시간이 삶의 큰 활력”이라고 말했다.
전업주부, 교사, 휴직중인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회원들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려고 토요일 아침 6시30분에 만나는데, ‘독후 활동’은 예정된 2시간을 넘기고 종종 점심 나절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정 대표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투영해서 책을 읽게 마련이어서, 책 이야기를 하다보면 각자 살아온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달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한아영 회원은 “다들 한창 아이를 키우다 보니 ‘기승전 육아’로 이야기가 자주 흐르는데, 그럴 때마다 나 자신과 나의 육아법을 되돌아보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그리스인 조르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랩걸> 등 고전부터 현대과학서까지 다양한 책을 읽었고, 지금은 <코스모스>를 읽는 중이다.
이들이 지난달 15일 오전, 그들의 인연을 이어준 대전 유성구 ‘프레드릭 희망의 씨앗’에서 <아홉 살 독서수업>의 지은이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겸 어린이책 평론가와 만났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엄마들인 만큼 자녀들의 독서교육에 대한 질문이 잇따랐다. “아이가 운동하고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반면에 책 읽는 걸 힘들어해서 걱정”이라는 엄마, “아이에게 강요한 적도 없는데 아이가 책과 도서관을 질색해서 고민”이라는 엄마, “책을 좋아하던 아이가 최근 유튜브 시청에 몰두하면서 책을 멀리하는데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엄마도 있었다. “아이가 글자를 깨치자마자 학습만화에만 빠져서 고민”이라거나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건 다행인데,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들 책까지 다 읽으려 해서 그리 해도 되는지 의문”이라는 등 고민의 층위도 다양했다. 하지만 막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에 노출이 시작된 아이들에게 어디까지 얼마나 기계 사용과 시청을 허용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고민만은 공통적이었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겸 어린이책 평론가. 부모가 알아야 할 초등 저학년 독서교육법을 담은 <아홉살 독서수업>을 썼다.
이에 한미화 평론가는 “우리 아이 이렇게 독서영재로 키웠다, 우리 아이 이렇게 책 읽혀서 하버드 보냈다 같은 책들이 많은데 실은 그런 방법이 ‘우리 아이’에겐 안 맞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아이로 하여금 책을 더 싫어하게 만들 수도 있다”며 “모든 아이에게 다 정답처럼 들어맞는 독서교육법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독서 교육을 할 때 부모가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원칙은 있노라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첫째, ‘읽는 뇌’ 만들기. 한 평론가는 “뇌과학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읽기는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니라 애써 만들어진 능력이기에 읽는 뇌가 성장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뇌 훈련 과정에서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에 노출되면 읽는 뇌가 형성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10살까지는 부모도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 이용을 자제하는 등 최대한 디지털기기 노출을 막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런 훈련으로 12살 무렵 읽기가 습관으로 자리잡으면 평생 책 읽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결론”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둘째, 부모가 먼저 읽기. “부모가 좋아하지 않는 걸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부모가 읽기 시작하면 마법이 일어난다”고 한 평론가는 말했다. “특히 10살까지는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는 시기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행복하게 책을 읽고, 아이가 읽었으면 하는 책을 부모가 먼저 읽으라”고 권했다.
셋째, 재미있게 읽기. 한 평론가는 “적당히 충분하게”, “과한 게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부모가 독서 활동을 너무 밀어붙인다면 부모도 지칠 뿐더러, 아이 역시 질려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책을 혼자 읽는 것도, 많이 읽는 것도, 스스로 독후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 ‘책 읽기가 재미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15~20분씩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방법이 가장 쉬우면서 꾸준히 할 수 있는 독서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책 읽기의 행복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테고요.”
‘아홉 살 독서 수업’ 한미화 평론가와 ‘짜릿한 탈출, 새벽 독토’ 회원들.
엄마들의 질문 공세가 끝난 뒤, 이번에는 한 평론가가 회원들에게 독서 동아리를 시작하고 가정에 변화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여미 회원은 “독서모임을 하게 되면서 집 여기저기에 책들이 놓여있으니 남편도 자연스럽게 독서를 시작했다”며 “종이책을 멀리하던 남편이 이제는 화장실에 갈 때도 책을 들고 간다”고 전했다. 전보라 회원은 “책을 읽고 느낀 점이나 좋은 구절을 공책에 기록하는 걸 5년째 해오고 있는데, 그걸 본 아이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따라하고 있더라”며 “특히 11살짜리 첫째 아이는 동시를 필사하기 시작하더니 동시 쓰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됐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책을 혼자 읽는 것도, 많이 읽는 것도, 스스로 독후활동을 하는 것도 아닌, ‘책 읽기가 재미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한미화 평론가는 말했다.
물꼬가 트인 독서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정혜영 대표의 손에 들려 있던 <이상한 정상 가족>을 보고 한 평론가까지 가세한 ‘즉석 독후활동’이 느닷없이 벌어져 지은이와 독서 동아리가 함께한 시간은 네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책으로 얘기가 시작되면 끝없이 달려간다”는 이들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대전/글·사진 김아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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