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독서 공동체를 찾아 인터뷰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함께 책을 읽는 독서 공동체는 한 사회의 지적, 정서적 건강성을 떠받치는 굳건한 토대”라고 했다.(<같이 읽고 함께 살다>) 요즘 독서계의 유행은 단연 ‘함께 읽기’다. 취향을 공유하고 깊게 만나 비슷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독서 모임들은 서로를 독려하며 토론과 논쟁으로 사유를 확장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적 독서’라는 집단적 행위가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겨레>는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공동기획으로 전국의 독서 동아리와 책의 저자들을 연결해 이들이 만나는 기회를 마련하고, 서로 나눈 얘기를 지면에 싣는다.
19일 저녁 서울 종로구 대학로 책방이음에서 <공부의 미래> 지은이 구본권 기자가 독서 동아리 ‘책행진’과 ‘늘책’ 회원들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알파고가 등장한 뒤 지난 몇 년 동안 전국 도서관, 고교, 대학 등에서 수많은 강의 요청이 밀려들었습니다. 앞으로 내 아이에게 어떤 공부를 시켜야 할지 혼란스럽다, 자동화에 밀려나지 않으려면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이 공통적이었죠. 정답은 어디 있을까요?” 지난 19일 저녁 서울 종로구 대학로 책방이음. 테이블에 10여명의 사람이 둘러앉았다. 서울·경기 지역 두 곳의 독서 동아리 회원들과 아이티(IT) 전문기자 겸 디지털 인문학자로 최근 <공부의 미래>를 지은 구본권 <한겨레> 미래팀 기자가 만나는 자리였다.
이날 모인 독서 동아리 회원 모두가 책과 공부, 진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독서 동아리 ‘늘책’(늘기쁜협동조합 책모임)은 재작년부터 자기치유와 자기계발에 관심을 갖고 독서 모임을 하고 있으며 ‘책행진’(책과 함께하는 행복한 진로)은 2014년부터 진로 상담, 직업학 전공자들이 함께 연령별로 주제에 맞는 책을 읽어 왔다. ‘늘책’ 김성희 대표는 “지난해엔 그림책에 집중했고 올해는 마로니에북스판 20권짜리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같이 읽고 있다”고 말했다. ‘책행진’을 이끌고 있는 김수정 교수(경기대 대학원 직업학과)는 “직업학 전공자들이 모여 최근 ‘중년의 변화 관리’를 주제로 책을 탐색하고 토론해왔는데, 오늘의 주제가 특히 직업학과 밀접하게 관련돼 놀랐다”고 말했다. 회원들이 미리 읽은 <공부의 미래>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을지 생각해보도록 이끄는 책이다. 다가올 미래에 쓸모 없어질 지식을 배우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이해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능력을 먼저 갖추도록 제안한다. 구 기자는 “자기가 실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지적 오만’을 경계해야 하지만 사실은 누구나 고차원적 사고를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공자가 <논어> 위정편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라고 한 것이 메타인지의 명확한 정의죠. ‘생각에 대한 생각’을 의미하는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일수록 학습 능력이 탁월합니다. 메타인지를 활성화하고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결과 한국인들은 20대 이후 나이가 들수록 복잡한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성인 독서율과도 관련이 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독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1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와 문해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최정은(공공선연구소·직업학 박사)씨는 어느 날 성경을 읽던 아흔 살 어머니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기뻐하던 모습을 전했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은 자신이 무언가 발견했다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특히 학생들에게는 책을 보며 궁리하고 탐구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 할 것 같아요.”
<공부의 미래> 저자 구본권 기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자 겸 작가라는 ‘21세기적 융합형’ 직업을 가진 지은이의 평소 생활 습관이 어떠냐는 질문도 나왔다. 구 기자는 “평소 달리기를 중시한다”며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이론에서 보듯, 달리면서 몰입하고 생각의 전환도 이뤄낸다”고 했다. 저술 활동에 보탬이 되는 독서 습관으로는 ‘다독’을 꼽았다. “책 한 권을 쓸 때 100여권쯤 관련 도서를 읽는데 어원의 풍부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원서를 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19일 저녁 서울 종로구 대학로 책방이음에서 <공부의 미래> 지은이 구본권 기자가 독서 동아리 ‘책행진’과 ‘늘책’ 회원들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날 참가자들이 가장 오래 토론한 질문은 “현실에서 어떻게 ‘메타인지’의 공부법을 적용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자녀에게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충분히 주고 싶지만 실제로는 “방황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부모 노릇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를 허락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는 답 없는 문제에 직면해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온 생존의 기록이자 공부의 기록입니다. 생존에 필요한 정보는 경험과 학습으로 얻게 되죠. 이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공부의 미래일 것입니다.” (구본권)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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