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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김어준은 왜 김현철을 불렀을까?

등록 2019-05-31 06:00수정 2019-05-31 20:08

[책과 생각] 이민경의 유연하고 단단하게
며칠 전 <문화방송>(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피디(PD)수첩>에서 대구의 정신과 의사 김현철이 저지른 행각이 보도되었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환자의 상태를 이용해 그루밍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은 여러 면에서 최근 대대적으로 폭로되었던 버닝썬 카르텔을 떠올리게 한다.

김현철은 의사로서의 권위를 이용해 환자들이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하게끔 하면서 성폭력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가 주목을 받은 계기는 따로 있다. 트위터를 통해서 배우 유아인에게 경조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내리며 자신의 병원으로 내원하라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보냈던 것이다. 클럽이라는 공간에서 술과 마약을 통해 여성들이 숱하게 강간 당해 왔지만 정작 남성이 폭행당한 사건으로 인해서 수사가 시작된 것과 유사하다.

남성이 여성에 대해 저지르는 폭력은 일상적이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부각되지 않는다. 게다가 의사의 권위가 전적으로 부여된 진료실, 또는 클럽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사건이 저질러진다면 더욱 공개되기 어렵다.

병원과 클럽이라는, 서로 연관 없을 것만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두 사건은 약물이라는 지점에서 또 한번 만난다. 버닝썬에서 여성을 상대로 ‘약물 강간’을 자행한 사실이야 진작 드러났지만 병원에서의 문제는 또 다른 충격을 던졌다. 진료실은 약 처방을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김현철은 그곳에서 성폭력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자살 고위험군을 비롯한 환자들에게 약물을 과다하고 무분별하게 처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약물을 대량으로 갖고 서울까지 오갔다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약을 다룰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의사로서 일종의 운반책이 되었던 것이다.

대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김현철이 전국 각지에서 환자를 받을 만큼 인지도를 가지게 된 계기는 미디어에 출연한 덕이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몸담으면서 클럽을 운영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한 승리가 미디어로 자신의 사업을 알려온 것과 비슷하다. <무한도전>의 ‘굿닥터’로 등장했던 김현철은 김어준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신뢰 자본을 얻었다.

두 사건이 드러낸 폭력의 구조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승리뿐 아니라 그가 속한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가 성접대와 성매매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폭로까지 나오는 지금, 그 끝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또, 남성들간의 의리를 자랑하기로 이름난 프로그램이나 인물이 왜 하필 김현철을 섭외해 공인된 인물로 만든 것인지 그 경위가 궁금해진다.

김현철이 <피디수첩>을 통해 세세하게 고발되었듯 버닝썬은 <에스비에스>(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고발된 바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제2의 버닝썬이 개장해, 스크린에 <그것이 알고 싶다> 영상을 띄워 놓고 그 아래 사람들이 조롱하듯 춤을 추었고, 비슷한 수법으로 여성들을 강간해 문제가 되었던 클럽들도 보란 듯이 영업을 재개하고 있다고 한다. 김현철 사건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의 재판에, 여성들은 ‘방청연대’로 결집했다. 싸움은 진작 시작되었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작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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