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운영 중인 ‘병원학교 어린이 도서관’에서 한 의사가 환아에게 책을 보여주고 있다. 이 병원은 지난 2015년 4월 도서관을 개관해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 구로병원 누리집 갈무리
미국 병원들이 중심이 된 비영리단체 ‘아르오아르’(Reach Out and Read)는 6살 이하의 아이와 그 부모들에게 책을 나눠주며 읽기를 적극 장려한다. 30년 전인 1989년 보스턴 시립병원에서 시작된 아르오아르 운동은 미국 의료계와 시민사회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이제는 미국 전역에 산재한 6천개 이상의 병원에서 소아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참여해 매년 470만명의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한다. 사람의 뇌는 6살 이전에 95% 가량 완성되는데, 건강한 두뇌 발달과 취학 준비를 위해서는 이 시기의 독서 활동 및 부모와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의사들의 인식이다.
책이 어린아이들에게만 좋은 건 아니다. 치매 예방을 위한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 독서라는 것을 의사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 병원들은 입원 환자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병원도서관을 필수 시설로 인식한다. <유에스뉴스>가 전문가들에게 의뢰하여 미국 내 전체 병원을 평가한 2018~2019 미국 우수 병원 20위 순위에서 1등을 차지한 마요 클리닉(Mayo Clinic) 병원은 어떨까. 이 병원에선 책과 잡지, 오디오북, 디브이디, 보드게임까지 갖춘 도서관을 운영한다. 환자와 가족에게 의료 정보를 제공하고 컴퓨터 이용을 지원한다. 환자들을 위해 수레에 책과 잡지를 가득 싣고 병실을 찾아다니는 서비스까지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종합병원 규모에서 상위 다섯 곳 중 두 곳만이 도서실을 갖췄다. 서울대병원의 ‘제중원 서재’가 으뜸으로 꼽히지만, 오래된 책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대학 캠퍼스처럼 임대 수입에 눈먼 국내 대다수 종합병원들은 각종 상업시설을 유치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변변한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반면 규모가 작은 일부 병원들 중에는 도서실 운영에 정성을 쏟는 곳이 더러 있다.
병원도서관의 필요성은 이용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대목동병원 어린이도서관을 이용했던 어린이 환자의 부모는 블로그에 쓴 글에서 오랜 기간 입원해 있던 아이와 보호자에게 도서관이 “유일한 안식처”였다고 말했다. 병원 로비에 도서관을 만든 서울시 북부병원은 이용자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보험사의 후원으로 소규모 도서실을 연 병원도 여럿이다.
도서관법이 정한 공공도서관의 범위에는 작은도서관, 어린이도서관, 병영도서관, 병원도서관, 장애인도서관, 교도소도서관이 포함된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실태 파악조차 안 되는 곳이 바로 병원도서관이다. 시민 독서단체인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2011년에 강남세브란스병원, 2012년에 서울대병원의 도서관 개관을 지원하며 병원도서관의 씨앗을 뿌렸지만 그 뿌리가 자리 잡으려면 아직 멀었다.
대한병원협회는 오는 4월3일 창립 60주년 기념식을 연다. 단체의 연륜에 맞게, 이제 우리 병원들이 질적으로 진화하고 책 읽는 문화 확산에 기여하도록 중추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