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양경언의 시동걸기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 문예창작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재미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기쁨’, ‘슬픔’, ‘분노’ 등과 같이 감정 상태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해당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그 상태에 대해 설명하는 글쓰기를 시도했던 것이다. 가령 학생들은 슬픔을 표현하려고 엎질러진 물에 대해서 쓰거나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공간에 대해서 썼다. 문학에서 비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공유하기 위해 워밍업의 차원에서 마련된 프로그램이었지만, 의외의 수확을 얻기도 했다. ‘기쁨’을 표현할 다른 언어가 자신에게 별로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한 친구가 ‘나는 왜 기쁨에 대해 쓰기 어려운가’ ‘내게 기쁨이란 무엇인가’ 하고 처음부터 해당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문학은 ‘A’를 ‘B’로 혹은 ‘C’로 말할 줄 아는 세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B’와 ‘C’로 설명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A’를 어떻게 품고서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A’는 어떤 형태로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이 사라졌거나 없다는 것은 어떤 세계가 잘 감각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된다. 조해주 시인의 시 ‘다큐멘터리’에는 ‘원숭이’와 마주보고 서 있는 ‘내’가 지금 쳐다보는 유리 너머에 대해서 별다른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온다. 폐쇄된 프레임 안에 놓인 ‘원숭이’와 ‘나’는 서로를 의식하며 행동을 할 뿐, 지금과는 다른 관계를 맺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프레임만이 지금 세상의 전부라고 여긴다면, 거기에 “닿은 부분 말고는 모두 지워지는 기분”이 되므로 다른 언어가 개입할 여지 역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달의 입체성을 믿지 않는다. 그것에게 옆모습이 있다고?// 원숭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유리 너머의 원숭이는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내게 바나나 껍질을 던진다.// 원숭이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유리에 비친 자신의 붉은 얼굴과 긴 코트를 입고 멀뚱히 서 있는 내 모습이 겹쳐 있다.// 어쩌면 원숭이는 나를 자신의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악몽 같은 형상을 향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원숭이에게 우리이고 내게는 화면인 것. 그것에 얼굴을 가져다 댄다.// 유리는 너무 차가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유리와 닿은 부분 말고는 모두 지워지는 기분이다.// 원숭이의 공격성이 유리를 깨부술 수는 없을까.// 원숭이는 내가 서 있는 곳이 바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거나 등지고 앉지 않는다.// 원숭이에게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달의 개수와 무관하게// 달의 이름은 여럿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달의 변화라기보다는 그림자의 변화.// 부를 수 있는 것과 부를 수 없는 것. 원숭이의 눈동자 위로 떠오른 빛 같은// 조명을 켜면 원숭이에게서 뾰족한 영혼이 솟아난다.”(조해주, ‘다큐멘터리’ 전문) 주어진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꾸 갈증을 느끼는, 그리고 그 갈증에 제대로 된 표현을 붙이고자 ‘다른 표현’을 찾아 나서는 이들의 간절함이 어쩌면 이 시가 쓰인 배경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와 “화면” 이상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유리”를 깨부수는 언어의 송곳니가 필요하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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