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백원근의 출판풍향계
일본의 지쿠마쇼보 출판사에서 발행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발간 한 달 만에 5쇄(5만부)를 찍으며 화제다. 현지 언론들이 이 책을 언급하고 일본인 번역자는 서점 토크쇼에 불려 다닌다. 이전에 발행된 한국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초기 반응이 판이하다.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과 마찬가지로 성차별이 여전한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강력한 공감 때문이다. 배우 출신의 작가 마쓰다 아오코는 “여성들의 절망으로 채워진 이 책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의 책”이라고 힘주어 추천한다.
그런데 이 책이 일본에서 주목을 받은 배경은 한국에서 100만부 판매라는 성과를 거둔 것이 동력이었다. 밀리언셀러는 어느 나라에서나 드물다. 지쿠마쇼보의 홍보물에서도 “한국에서 100만부 돌파”가 핵심 문구다. <82년생 김지영>의 판권이 16개국에 수출된 데는 여성 불평등 문제에 대한 지구촌의 공명 못지않게 ‘한국의 밀리언셀러’라는 상품성이 큰 구실을 했다. 이는 신경숙, 한강 작가의 선례에서도 확인된다. 국내 독자들에게 인정받은 작품이 밖에서도 인정받는다.
그런데 지난해 소설시장을 교보문고 결산 자료로 살펴보면,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한 구간 소설과 스테디셀러가 강세를 보였지만 소설 전체 판매량과 판매액은 모두 전년 대비 감소했다. 유력한 신작이 적었던 점이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소설 판매량에서 일본소설(31.0%)이 한국소설(29.9%)을 앞지른 점은 특기할 만하다. 2006년의 소설 베스트셀러 100위권에서 일본소설(31종)이 한국소설(23종)을 추월해 ‘한국문학 위기론’까지 불러일으킨 이래, 지난 10년 동안 유지되던 3~4(한국소설) 대 2(일본소설)의 구도가 무너지며 역전된 것은 처음이다. 국내 출판시장에서 한국소설의 상대적 침체와 일본소설의 꾸준한 약진에 기인한다. 지난해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30위권에 오른 소설 7종 가운데 한국 작가는 조남주가 유일했고, 히가시노 게이고(3종) 등 일본 작품이 5종이나 되었다.
한국 독자들이 일본소설을 더 즐기게 된 이유는 ‘재미’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재미있는 소설의 창작과 소설 읽기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방향에서 출판시장, 문학 및 교육 정책, 언론이 우리 문학 발전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역량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키우는 투자와 독자 눈높이를 맞추는 가격·유통 전략, 문학책 판매에서 서점계의 협업 마케팅도 긴요하다. 일본 서점계에서는 재미난 일본소설을 뽑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서점대상’ 수상작들이 매년 50만부 이상의 판매력을 자랑한다. 또한 학교에서는 문인 연계 수업 활성화와 문학 작품 읽기의 대대적 확장으로 국어와 문학에 대한 암기식 교육의 폐해를 도려내야 한다. 상상력의 시대에 언제까지 암기력으로 응수할 것인가. 기업 메세나 활동에서도 문학 창작과 출판 지원 메뉴를 또렷하게 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문학에 대한 사회적 응원이야말로 한국문학을 키우는 뿌리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