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남주.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조남주(사진)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누적 판매 부수 100만부를 기록했다. 2016년 10월 출간 이래 2년여 만이다. 서효인 민음사 편집장은 27일 “<82년생 김지영>이 오늘로 100만부를 넘어섰다. 종이책이 82만부, 전자책이 18만부 남짓 나간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국 소설에서 밀리언셀러가 나온 것은 2007년 김훈의 <칼의 노래>와 2009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서른네살 전업주부 김지영씨를 통해 한국 사회 여성들이 학교와 직장에서 받는 차별, 고용시장에서 겪는 불평등, ‘독박 육아’의 현실, 경력 단절 문제 등을 다뤄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한국 사회 젠더 감수성의 변곡점이라 할 지난 2년 동안 이 소설은 크고 작은 이슈들과 함께 거론되며 꾸준히 읽혀왔다.
지난해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 소설 300권을 구입해 선물한 사실이 알려진 데 이어 5월19일 대통령과 원내대표 오찬 모임에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안아 주십시오”라는 문구와 함께 이 책을 선물하면서 ‘김지영 열풍’에 불을 지폈다. 올해 2월에는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이 소설을 언급했고, 3월에는 가수 아이린이 요즘 읽고 있는 책으로 <82년생 김지영>을 들었다가 일부 남성 팬들이 반발하는 바람에 오히려 책 판매율이 오르기도 했다. 또 영화화와 주연배우 결정을 전후해서는 영화화 반대 국민청원 등이 올라오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82년생 김지영>이 2010년대 최초의 한국 소설 밀리언셀러 자리에 오른 까닭으로는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불평등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당대의 핵심 관심사 중 하나인 젠더 이슈를 선점했다는 점이 꼽힌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 작품은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정치 주체로서 여성의 일대기를 사회적 통계자료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소설”이라며 “남성 정치인들이 관심을 촉발하기는 했지만 실제 독자는 젠더 문제에 민감한 여성 독자들이라는 점에서 지금 한국 문학의 소비층이 누구인지를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여성학자 박이은실씨는 “82년 즈음에 태어난 여성들은 가정에서는 남자형제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학교에서는 남녀평등을 시민교육으로 받은 첫 세대”라고 이 소설 열풍에 깔린 세대론적 특성을 짚었다. 그는 “이들은 성장기에 받은 교육과 달랐던 직장과 결혼생활에서 성 역할과 경력단절 등 여러 문제에 맞닥뜨렸지만 이전 세대와는 달리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대적 감수성이 이 책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문학평론가 서영인씨도 “여성 독자들의 일상적 관심사이자 사회적 이슈이기도 한 문제를 소설화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준 것이 밀리언셀러가 된 비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82년생 김지영>이 모든 여성을 대표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더 많은 김지영’의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는 점을 평론가들은 지적했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씨는 “연령과 계층에 따라서는 이 작품을 두고 ‘내 얘기와 꼭 같지는 않은데’ 하는 반응도 있다. 이제는 ‘김지영만으로 충분한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좀 더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여성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문학과 미디어에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학평론가 백지연씨는 “실화와 통계자료, 취재 등을 활용해 성공을 거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나도 내 삶을 이렇게 글로 재구성해볼 수 있겠다 하는, 여성의 글쓰기 욕망을 자극했다는 점 역시 매우 고무적”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민음사는 이 소설 100만부 판매를 기념해 ‘코멘터리 에디션’을 선보였다. 평론 다섯편과 작가 인터뷰를 앞세우고 소설 본문을 후반부에 배치한 특별판이다. 특별판에 실린 인터뷰에서 작가 조남주씨는 92년생, 2002년생 김지영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지 하는 질문에 “세상은 진보하고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82년생 김지영>은 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16개 나라 수출이 확정되었다. 영국판은 세계적 출판 그룹 사이먼 앤드 슈스터에서 나오며 일본판도 대표적 인문 출판사인 지쿠마 쇼보에서 나온다. 지난 5월에 나온 대만판은 대만 최대 전자책 사이트 리드무에서 전자책 부문 1위에 올랐다.
최재봉 선임기자,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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