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는 페미니즘을 굳이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지은이는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의견들은 대부분 페미니스트들의 것”이라고 밝힌다. “남자들이 한가하게 사무실 물통이나 들먹이고 있던 시간에, 페미니스트들은 이 남자들과 그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체제인 가부장제에 대해서 치열한 연구를 거듭해왔다.” 특히 남성성은 최근 페미니즘의 주된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 남자> 역시 수많은 인용과 각주 등으로 앞선 성과에 기댄 흔적들을 남겨두고 있다.
영국 심리학자 코델리아 파인은 <젠더, 만들어진 성>(휴먼사이언스, 2014)을 통해 ‘과학’의 이름을 앞세워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른 뇌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성차별을 사회문화적 ‘사실’로 만들어온 시도의 부적절함을 짚어냈다. 그는 이처럼 뇌과학, 신경과학으로 치장한 성차별을 ‘뉴로 섹시즘’(신경 성차별)이라 불렀다.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본질적인 성별 차이를 낳는다’는 신화를 논박한 후속작 <테스토스테론 렉스-남성성 신화의 종말>(딜라일라북스, 2018)도 올해 국내에서 출간된 바 있다.
<한국, 남자>에서 남성성 분석의 바탕이 되고 있는 ‘헤게모니적 남성성’ 개념은 오스트레일리아 사회학자 래윈 코넬의 <남성성/들>(이매진, 2013)에 주로 기대고 있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이란 오늘날 이상적인 남성성으로 여겨지는 것들은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투쟁과 동의, 전략의 산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남성성이란, 가부장제와 남성 우위의 사회 체계를 지키기 위해 단순한 힘과 폭력이 아니라 법과 제도, 문화적 코드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압박하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전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한국적 현실을 분석하는 데는 아무래도 그동안 한국 학자들이 다방면에서 펴온 연구들이 넓고 깊은 토양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한국, 남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을 비롯해 다수의 필자들이 쓴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교양인, 2018)와 기본적인 문제의식과 현실을 인식하고 분석해나가는 방향에서 크게 공명하고 있다. 남성성 내부의 이질성을 드러내는 ‘식민지 남성성’과 같은 개념이나, 가부장제의 위기로 더이상 주체화할 수 없게 된 남성들이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재주체화를 도모하는 현상에 대한 분석 등이 대표적이다.
최원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