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언의 시동걸기
<여전히 음악처럼 흐르는>(문학수첩, 2018)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의 ‘이십년 후에’는 20년 후에 만나자 하고 헤어진 두 청년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이들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바로 그날로 시작하는데, 오 헨리의 짧은 소설이 으레 그렇듯 이 이야기 역시 결말이 안타깝다. 20년 전에는 예상치 못했던 모습으로, 그러니까 한 명은 경찰, 한 명은 지명수배자가 되어 만남이 이뤄졌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8년 2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을 통해 들었다.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졸업을 하고 20년 후에 우리 역시 만나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졸업한 날로부터 20년 후인 2018년 2월13일, 우리 반은 6학년 2반이므로 저녁 6시2분에 학교 정문 앞에서 모이자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2월, 고향인 제주엘 갔었다. 누가 올까 싶어 조마조마했는데 놀랍게도 한 명의 친구가 약속 장소에 나와 있었고, 우리는 우리 말고 누가 또 오지 않을까 싶어 삼십 분 정도를 더 기다렸다. 20년 뒤를 약속하면서 ‘선생님도 오실 거죠?’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농담조로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으면?” 하고 말씀하시곤 깔깔 웃으셨다. “오 헨리 소설 같은 비극은 우리반에선 일어나지 않겠지?” 하시면서. 친구와 나는 선생님도 나오시겠다고 했던 것 기억나냐고, 만약 나오셨는데 우리가 없으면 민망해하실 것 같아서 나온 것도 있다고, 실은 나는 20년 내내 이 약속을 떠올렸다고 얘길 나눴다. 생각해보니 나는 늘 ‘그날’에 대해 상상해왔다. ‘20년 뒤면 나는 내가 쓴 글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선물할 수 있을까?’ ‘나는 어디에서 살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와 같은 상상을.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래도 좀 괜찮은’ 사람의 모습으로 약속 장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해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던 것 같다. 그날 선생님을 끝내 뵐 순 없었지만, 선생님은 어쩌면 그러라고, 각자의 사정 때문에 그날 약속 장소에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순 없더라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괜찮은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매일을 애써보라고, 그런 격려와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이 약속을 먼저 제안하시지 않았을까. 오 헨리 소설로 길게 운을 떼시면서. 신혜정의 시를 읽다가 다음 대목에 오래 눈이 머물렀다. “부고만큼 믿기지 않는 소식도 없어/ 영면에 든 자의 소식을 전달한 이의 살아 있는 슬픔을 가만히 꺼내 읽는다// 도저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은 심정으로/ 슬픔을 삽관하듯// 살아 있는 오늘을 입속에 넣는다/ 분류할 수 없는 감정을 섞어 우물거리며”(신혜정, ‘유예’ 부분) 믿기지 않는 부고 소식을 접한 요즘, 나는 우리를 계속 잘 살아 있게끔 이끄는 어떤 약속들을 자꾸 떠올린다. 약속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실은 ‘함께 나눴던 꿈’에 해당하는 그것을. 좋은 날을 상상하며 애썼을 몸짓이 빚어냈던 시간과, 다 지켜지지 못한 채 유예된 누군가의 바람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양경언 문학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