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나폴리 4부작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한길사(2017)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이야기 네권이 모두 번역되었다. 책들이 너무 재미있고 뒷 내용이 궁금한 나머지 뛰어서 퇴근하곤 했다. 엘레나 페란테는 가명이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저자가 여자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남자가 이 책을 썼다면 전 세계 여성 독자들은 그 남자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 정도로 여자를 이해하는 남자가 있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릴라와 레누, 두 친구의 60년간에 걸친 우정 이야기는 약속에서 시작한다. “나의 눈부신 친구가 되어줘. 남자 중에서도 여자 중에서도 최고가 되어줘. 그렇지 않다면 사는 의미가 없을 거야.” 친구와 이런 약속을 해본 적이 나에게 있었던가? ‘성공해야 해, 출세해야 해’ 말고 말이다.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나 혼자만의 약속은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눈부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멋진 친구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그 욕망은 그대로 있고,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엘레나 페란테는 모순된 그러나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는 감정을 깊게 들여다봤다. 이혼은 했으나 아이들 때문에 괴롭고, 죄책감이 드나 행복하고, 친구가 나보다 뛰어나고 아름다운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초라함의 원인이고, 친구를 사랑하면서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고, 자기 목소리를 갖고 해방되고 싶어하면서도 지지해줄 누군가를 애타게 필요로 하고, 잘 살아온 것 같다고 자체평가 할 수 있지만 돈도 명예도 찾는 사람도 없이 늙어버리는 것이 두렵고, 자아해방과 실현을 중시하면서도 아주 형편없는 남자에게 뼛속 깊이 휘둘리고. 꽤 성공은 했으나 삶이 부와 신분상승을 위한 비참한 투쟁에 불과했던 것 같고. 이 모순 때문에 인간은 자기를 충분히 좋아할 수도 없고 자기 비판적이어야 할 필요 속에 놓인다. 모순된 감정 덩어리에 불과한 우리들이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즉 어떤 정체성을 갖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대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책만큼 답이 분명하기도 힘들 것 같다. 이 책들의 말미에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문장은 ‘(삶에) 형태를 부여하다’이다. 내가 내 삶과 이야기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다. 나에 대해서 말하자면 ‘너’가 필요하다. ‘너’가 내 이야기에 끼어들어야 한다. 나의 이야기를 너의 이야기에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체성이 확실한 어엿한 성인이다. 라파엘로 체를로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그레코였다.” 60년간의 이야기를 가능하게 했던 기억은 ‘너’(타자)로부터 왔다. 쿤데라가 말한 대로 우리는 잊히고 소멸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를 창조하고 주목받고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증명하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다. 타인은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나를 찾아낸다. 책의 마지막 순간에 레누는 릴라에 관한 책을 쓴다. 왜 그랬을까? “나는 릴라를 사랑했다. 릴라가 잊혀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릴라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은 나여야만 했다.” 이 책은 ‘눈부신 나’ 혼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깊이 연결되어 있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현대문학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이야기하기의 방식이고 그래서 눈부시게 빛난다. 정혜윤(시비에스) 피디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한길사(2017)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이야기 네권이 모두 번역되었다. 책들이 너무 재미있고 뒷 내용이 궁금한 나머지 뛰어서 퇴근하곤 했다. 엘레나 페란테는 가명이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저자가 여자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남자가 이 책을 썼다면 전 세계 여성 독자들은 그 남자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 정도로 여자를 이해하는 남자가 있다면 세계는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릴라와 레누, 두 친구의 60년간에 걸친 우정 이야기는 약속에서 시작한다. “나의 눈부신 친구가 되어줘. 남자 중에서도 여자 중에서도 최고가 되어줘. 그렇지 않다면 사는 의미가 없을 거야.” 친구와 이런 약속을 해본 적이 나에게 있었던가? ‘성공해야 해, 출세해야 해’ 말고 말이다.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나 혼자만의 약속은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눈부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멋진 친구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그 욕망은 그대로 있고,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엘레나 페란테는 모순된 그러나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는 감정을 깊게 들여다봤다. 이혼은 했으나 아이들 때문에 괴롭고, 죄책감이 드나 행복하고, 친구가 나보다 뛰어나고 아름다운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초라함의 원인이고, 친구를 사랑하면서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고, 자기 목소리를 갖고 해방되고 싶어하면서도 지지해줄 누군가를 애타게 필요로 하고, 잘 살아온 것 같다고 자체평가 할 수 있지만 돈도 명예도 찾는 사람도 없이 늙어버리는 것이 두렵고, 자아해방과 실현을 중시하면서도 아주 형편없는 남자에게 뼛속 깊이 휘둘리고. 꽤 성공은 했으나 삶이 부와 신분상승을 위한 비참한 투쟁에 불과했던 것 같고. 이 모순 때문에 인간은 자기를 충분히 좋아할 수도 없고 자기 비판적이어야 할 필요 속에 놓인다. 모순된 감정 덩어리에 불과한 우리들이 자기 목소리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즉 어떤 정체성을 갖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대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책만큼 답이 분명하기도 힘들 것 같다. 이 책들의 말미에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문장은 ‘(삶에) 형태를 부여하다’이다. 내가 내 삶과 이야기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다. 나에 대해서 말하자면 ‘너’가 필요하다. ‘너’가 내 이야기에 끼어들어야 한다. 나의 이야기를 너의 이야기에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체성이 확실한 어엿한 성인이다. 라파엘로 체를로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그레코였다.” 60년간의 이야기를 가능하게 했던 기억은 ‘너’(타자)로부터 왔다. 쿤데라가 말한 대로 우리는 잊히고 소멸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를 창조하고 주목받고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증명하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다. 타인은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나를 찾아낸다. 책의 마지막 순간에 레누는 릴라에 관한 책을 쓴다. 왜 그랬을까? “나는 릴라를 사랑했다. 릴라가 잊혀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릴라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은 나여야만 했다.” 이 책은 ‘눈부신 나’ 혼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깊이 연결되어 있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현대문학에서 거의 사라져가는 이야기하기의 방식이고 그래서 눈부시게 빛난다.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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