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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공지능, 페미니즘, 불평등··· 읽고 고민하자

등록 2017-12-21 20:07수정 2017-12-25 11:09

 
 

지난해 가을부터 타오른 촛불은 겨우내 밝게 빛났고, 올해 끝내 어두운 권력을 끌어내렸다. ‘책이 촛불의 불쏘시개였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민주주의를 실천해낸 우리 시민 역량의 상당 부분은 책으로부터 왔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앞으로도 책은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고 민주주의란 나무를 키워가는 데 더욱 중요한 식량이 될 터다. <한겨레>는 올해도 어김없이 국내서 10권, 번역서 10권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도서평론가 이권우,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과학저술가 정인경, 문학평론가 양경언 등 5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한겨레 책지성팀 구성원들 이 선정했다.


<올해의 책 번역서>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생할 수 있을까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맥스 테그마크 지음, 백우진 옮김/동아시아·2만6000원

기계가 모든 방면에서 인간을 능가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은 인공지능(AI)을 통제할 수 있을까? 스웨덴 출신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는 이런 질문에 낙관론도 비관론도 펼치지 않는다. 그는 진화의 족쇄를 벗어나 스스로 하드웨어까지 설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동물(라이프 1.0), 인간(라이프 2.0)에 이어 출현할 ‘라이프 3.0’으로 규정한 뒤 이를 둘러싼 기본 개념과 논쟁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정치·경제·군사·법률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그 와중에도 미래에 살아남는 직업이 무엇일지(교사·성직자·미용사·안마사 등) 예측하는 등 구체적이고 친절한 설명을 내놓는다. 동료 과학자·기업인들과 함께 ‘이로운 인공지능 운동’을 펼치고 있는 테그마크는 “인공지능은 방향 없는 지능이 아니라 유용한 지능이 돼야 한다”며 인공지능으로 인한 재난을 막기 위해선 모든 사람들이 대화와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반지성주의의 뿌리를 탐구하는 고전
미국의 반지성주의/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교유서가·3만5000원

 
 
1964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인 미국의 대표적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올해에서야 비로소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50여년 만에 소개된 책인데도, ‘반지성주의’라는 제목과 이를 열쇳말로 삼아 책이 다루고 있는 50년대 미국 사회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지은이는 미국에는 반지성주의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고 보는데, 그 가장 강한 근원으로 애초 미국이란 나라를 건설하는 밑바탕이 됐던 복음주의를 지적한다. “반지성주의가 정치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평등을 향한 열정과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낳은 특유의 기업 세계 역시 반지성주의를 확대시키는 중요한 동력이었다. 추천사를 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반지성주의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20세기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나타났다”며, 오늘날 전세계에 만연한 반지성주의의 흐름을 제대로 성찰하기 위해 이 책을 볼 필요가 있다고 추천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편견과 두려움 없는 ‘자본주의’ 북한 보고서
조선자본주의공화국/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지음, 전병근 옮김/비아북·1만7000원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북한을 전방위로 압박하면 스스로 무너져내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평양 시내에선 고층빌딩이 속속 올라가고, 태블릿 피시를 들고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장마당(시장) 때문이었다.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과 제임스 피어슨 <로이터> 서울 주재 특파원은 수많은 북한인, 탈북자, 전문가를 만나고, 북한을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을 썼다. 북한이 1990년대 대기근을 겪으며 ‘고난의 행군’을 할 때, 식량 보급 체계가 무너져 북한 민중들은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여기서 장마당이 생겨났다. 북한이 장마당을 확대해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완전히 이동하더라도 체제는 붕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싱가포르가 그랬던 것처럼. 답은 명확하다. 체제 적대 행위를 지양하고 경제 협력과 문화 교류를 넓혀가는 것.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국경을 넘어선 여성들의 뜨거운 연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창비·1만5000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2015년 국내 출간)로 ‘페미니즘 바람’에 한 몫 단단히 했던 리베카 솔닛이 지난 8월 방한했다. 그가 가는 강연장은 국경을 넘은 여성들의 뜨거운 연대의 자리였다. 솔닛은 “한국의 ‘강남역 살인사건’ 등에 관해 들었다. 남성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우리의 적들이 페미니즘에 위협을 느끼고 있고, 페미니스트들이 하는 일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라고 응원했다.

신작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는 ‘맨스플레인’이란 기존의 용어를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전작 이후에 페미니즘에 관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책에서 솔닛은 2014년을 미국 페미니즘의 분수령으로 규정한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메갈리안이 만들어진 2015년을 한국 페미니즘의 새로운 분수령이라고 한다면, 거의 동시에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이 이 책에 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분배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정치경제
분배정치의 시대-기본소득과 현금지급이라는 혁명적 실험/제임스 퍼거슨 지음, 조문영 옮김/여문책·2만원

 
 
남아프리카에서 유럽, 캐나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전 세계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펼쳐지고 있다.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지난 30여년 동안 남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현지 조사와 이론 작업을 바탕으로, 기본소득 논의를 깊이 발전시켜 온 인류학자다. 국내에 처음 소개된 그의 책 <분배정치의 시대>는 오늘날 다수의 빈민 대중이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기존의 생산 중심 정치경제에 속해 있지 않으며, 되레 “물고기를 직접 주는” 분배 중심 정치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임금노동과 전통적 가족제도가 빠르게 형해화하는 오늘날, ‘경제적 고아’들은 과연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어떤 권리를 주장하고 또 요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일에 대한 보상도, 도움을 구하는 호소도 아닌, 노동이나 어떤 종류의 장애, 무능력에 상관없이 소득에 대해 누구나 정당한 자격을 갖는다는 주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10년의 각고 끝에 찾아온 정치학 고전
정치학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재홍 옮김/길·4만원

 
 
20여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서양 문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고전의 체계적인 원전 번역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학자 개개인의 분투뿐 아니라 여러 공부 공동체의 활성화가 밑거름이 됐다. 그런 흐름 속에서 학술·출판계의 기대를 모았던 작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의 우리말 번역이다. 10년 동안 여기에 공을 들인 김재홍 정암학당 연구원이 올해에서야 비로소 그 작업을 완성해냈다. 3200여개에 달하는 깨알같은 역주,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사상, 전체 저작물 체계를 종합적으로 해설해주는 해제 속에서, 정확한 번역을 위해 거쳐야 했을 부단한 고민과 절차탁마를 읽을 수 있다. 광화문 촛불이 ‘진정한 정치란 무엇인가’ 물음을 던진 직후이니, 출간 시기마저 절묘하다고 할까.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덕성(arete)과 실천적 지혜(phronesis)는 과연 어떤 것인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가슴 아닌 머리가 인간 진보의 동력
계몽주의 2.0-감정의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조지프 히스 지음, 김승진 옮김/이마·2만2000원

 
 
‘계몽주의’란 말은 자칫 듣는 이의 반감을 살지도 모를 말임에도, 이를 굳이 제목에 넣은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진보를 바란다면, 결코 ‘합리적 사고’를 두려워하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혁명을 팝니다>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 등으로 국내에도 알려진 조지프 히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계몽주의 2.0>에서 ‘합리적 사고’를 외면하는 대신 감정과 직관을 정치 문화의 중심에 두려 하는 최근의 흐름에 날카로운 비판의 칼끝을 겨눈다. 전공 분야인 철학뿐 아니라 인지과학, 심리학 등의 성과들을 두루 살펴본 그는, 애초 우리의 뇌가 ‘합리적 사고’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그럼에도 가슴이 아닌 머리를 써서 이룩해온 것이 인간 진보의 역사라는 것. 느리고 까다롭더라도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집단행동이 여전한 진보의 동력이며, 이것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구축하는 것이 ‘계몽주의 2.0’의 핵심이라고 선언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피케티 자신을 넘어선 21세기 자본 연구
애프터 피케티-<21세기 자본> 이후 3년/토마 피케티 외 지음, 유엔제이 옮김/율리시즈·3만8000원

 
 
절실한 물음이 ‘신드롬’으로 끝나선 안 된다. 3년 전 자본주의 체제의 장기적 불평등 추세를 지적한 토마 피케티의 저작 <21세기 자본>은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 <21세기 자본> 영문판을 출간했던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는 이 책에 대해 다른 여러 전문가들에게 검증과 평가를 요청했고, 폴 크루그먼, 로버트 솔로, 마이클 스펜스, 브랑코 밀라노비치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 21명이 피케티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생산적인 비판’에 나섰다. <애프터 피케티>는 이런 공동의 지적인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책이다. 학자들은 피케티의 책에서 바로잡아야 할 부분, 빠져 있어서 채워야 할 부분 등을 지적하며 오늘날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지 더욱 구체적인 물음들을 이어간다. 피케티 본인도 이들의 지적을 반기며, 자신의 책이 “21세기 자본 연구의 입문서”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더욱 깊은 연구와 고민, 그리고 실천이 남아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러시아혁명 100년, 그리고 예술
시대의 소음/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다산책방·1만4000원

 
 
올해는 러시아혁명 100주년의 해였다.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이 그것을 기념하려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런 맥락에서 이 작품을 읽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거나 엉뚱하지는 않을 듯하다. 작가는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75)가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 겪었던 억압과 공포, 좌절과 타협을 그의 삶의 세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자신이 작곡한 음악이 최고 지도자 스탈린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생각에, 언제라도 조용히 잡혀갈 수 있도록 여행가방을 꾸려 놓은 채 아파트 층계참에서 대기하던 시절,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을 신봉한 동료 음악가들을 비판해야 했던 일, 그에게 권력을 주고 그것을 선전에 이용하려는 당국의 뜻에 따라 억지로 공산당에 가입해야 했던 일이 그것. 길지 않은 분량에 스탈린 시대 사회 분위기와 예술과 권력의 긴장 관계를 두루 담아낸 작가의 대가적 필치가 돋보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우뚝선 여성과학자
랩 걸-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알마·1만7500원

 
 
“세상은 조용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은 인간이 나무를 오직 식량과 의약품, 목재로만 인식하고 급속도로 파괴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지난 10년간 인간은 500억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가면 600년이 못 돼 나무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나무를 연구하는 자런은 여성 과학자로는 유일하게 풀브라이트상을 세 차례나 받았다. 이 책엔 나무, 숲, 씨앗, 토양에 대한 첨단의 연구들과 함께 지은이가 유망한 식물학 연구자로 단련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사연들이 박진감 있게 쓰여져 있다. 성차별이 여전한 과학계를 좌충우돌 돌파해가는 자런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잘 쓰인 페미니즘 도서로도 읽힌다.

자런은 지구상 생물종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지구 생태계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며 “자손들을 황폐한 폐허에 남겨두고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토로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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