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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마야는 어쩌다 나치의 전사로 다시 태어났을까

등록 2017-05-26 19:26수정 2017-05-26 19:54

[토요판] 최우성의 동화경제사
⑪ <꿀벌 마야의 모험>
독일 작가 발데마어 본젤스가 1912년 출간한 <꿀벌 마야의 모험>은 꿀벌을 비롯한 여러 곤충들을 내세워 어린이들에게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공동체의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고 개인보다 전체의 안녕을 앞세우는 덕목을 강조하는 등 전체주의적 색채도 강하게 띠고 있다. 사진은 2014년 티브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꿀벌 마야의 모험>의 한 장면. 위키피디아
독일 작가 발데마어 본젤스가 1912년 출간한 <꿀벌 마야의 모험>은 꿀벌을 비롯한 여러 곤충들을 내세워 어린이들에게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공동체의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고 개인보다 전체의 안녕을 앞세우는 덕목을 강조하는 등 전체주의적 색채도 강하게 띠고 있다. 사진은 2014년 티브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꿀벌 마야의 모험>의 한 장면. 위키피디아

“넓디넓은 바깥세상은 어두운 꿀벌 도시보다 천 배는 좋은 것 같아. 절대 돌아가지 않겠어. 평생 꿀이나 모으고 밀랍으로 집이나 지으며 살고 싶지는 않아. 난 꽃이 만발한 세상을 구경하며 곳곳을 돌아다닐 거야. 난 기쁨과 놀라움, 경험과 모험을 위해 태어났다고.” 여왕벌 ‘헬레네 8세’가 다스리는 궁정 공원의 꿀벌 왕국에서 도망쳐 멀리 날아간 어린 마야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곳은 벚꽃과 산사나무꽃, 라일락꽃이 구름처럼 피어 있는 정원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꽃잎 너머로 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마야의 입에선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아, 사랑하는 하느님. 산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바깥세상은 친구들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했다. 마야는 생김새와 성격이 제각각인 여러 곤충 친구들과 잇달아 마주쳤다. 장미풍뎅이 ‘페피’, 금파리 ‘한스 크리스토프’, 잠자리 ‘슈누크’, 자신이 장미풍뎅이라고 우기는 쇠똥구리 ‘쿠르트’…. 이따금씩 꿀벌 친구들이 남아 있는 고향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찾아왔으나, 말벗이 되어주는 새 친구를 만날 때마다 넓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더욱 커져갔다.

뭐니 뭐니 해도, 마야가 가장 만나고 싶은 생명체는 ‘인간’이었다. 마야는 마주치는 곤충 친구들을 붙잡고 어김없이 물었다. “인간을 본 적 있어? 인간에 대해 아는 거 있으면 죄다 알려줘.” 저마다 뽐내듯 한마디씩 거들곤 했다. 잠자리 슈누크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간들 내면엔 죽이고 싶은 충동이 숨어 있나 봐. 소년이라고 부르는 인간들은 붙잡은 잠자리의 날개나 다리를 그저 재미삼아 뜯기도 하거든.” 잘난 체하는 파리 푸크는 커다란 인심이라도 쓴다는 듯 인간의 ‘비밀’을 일러줬다. “코와 머리카락 사이를 이마라고 하는데 생각할 때 쓰는 곳이야. 인간이 생각할 때 이마를 쓴다는 사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길게 뻗은 밭고랑처럼 생긴 주름을 보면 알 수 있지. 생각할 때는 그게 움직여야 하거든.”

여왕벌을 중심으로 거대한 군집을 이루는 꿀벌 집단은 예부터 인간 사회를 빗댄 우화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다. 위키피디아
여왕벌을 중심으로 거대한 군집을 이루는 꿀벌 집단은 예부터 인간 사회를 빗댄 우화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다. 위키피디아

곤충 의인화 통해 꿈과 모험 그려내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 예찬하는 줄거리
1차 대전 때 전선의 병사들에게 큰 인기
개인보다 전체 앞세우는 공동체 강조

‘나치의 작가’ 오명 쓴 발데마어 본젤스
전체주의·인종주의 편견 사로잡혀
산업화 폐해 극복하려던 독일 사회
‘피와 땅’ 나치의 이데올로기 싹 키워

마야의 여정과 판박이였던 청년 본젤스

마야는 ‘꽃의 요정’의 도움으로 마침내 간절히 원하던 소원을 이루었다. 요정은 원래 이레 밤을 살 수 있으나, 자신이 태어난 꽃을 떠나 단 하루를 사는 대신 누군가의 가장 절실한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고 했다. 마야의 손을 잡고 하늘로 날아오른 요정은 얼마 뒤 마야에게 소리쳤다. “자, 어서 내려다봐. 저 밑에 네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것이 있어.” 달빛을 받으며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 젊은 남녀 한쌍이 보였다. 여자는 고개를 들더니 남자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나직이 속삭였다. 마치 마법의 주문에라도 걸린 듯 남자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마야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 바로 저거야. 이제 알 것 같아. 인간들은 서로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독일 작가 발데마어 본젤스가 1912년 출간한 <꿀벌 마야의 모험>은 꿀벌을 비롯한 여러 곤충들을 내세워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꿈과 모험의 가치를 일깨우는 아동문학의 고전이다. 1880년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아렌스부르크에서 의사 집안의 다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본젤스의 청소년기는 일상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미지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마야의 여정과 판박이였다. 몸속에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일까? 유럽 각지와 미국은 물론이고 아프리카와 아시아 곳곳을 닥치듯 떠돌아다닌 본젤스는 30대 중반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펴낸 <인도여행기>의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꿀벌 마야의 모험>이 세상에 나오고 2년 뒤. 유럽 대륙은 전쟁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흥미로운 건 전쟁이 터지자 <꿀벌 마야의 모험>이 독일 병사들 사이에서 유독 인기를 끌며 널리 읽혔다는 사실. ‘전쟁터의 베스트셀러’란 별명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전선의 허름한 막사 침대에 고단한 몸을 뉘거나 참호 속에서 꿀 같은 휴식을 취하던 시간, 총을 든 젊은 병사들에겐 마야를 감동시킨 자연의 생기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공포로부터 잠시 ‘도피’하는 대리만족이라도 주었던 걸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을 예고하는 뜻밖의 일화 한토막. <꿀벌 마야의 모험>이 외려 병사들의 사기와 전의를 북돋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데….

독일인은 ‘숲의 민족’이라 부를 만큼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숲과 자연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유독 강하다. 이런 움직임은 나치 시대의 녹색파시즘을 불러오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사진은 독일 남부의 거대한 ‘흑림 지대’ 모습. 위키피디아
독일인은 ‘숲의 민족’이라 부를 만큼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숲과 자연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유독 강하다. 이런 움직임은 나치 시대의 녹색파시즘을 불러오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사진은 독일 남부의 거대한 ‘흑림 지대’ 모습. 위키피디아
다시 마야를 따라가보자. 마야가 버드나무 기둥 옆 수풀 근처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마야의 뒷덜미를 낚아채듯 움켜잡았다. 덩치 큰 말벌이었다. 말벌의 성으로 끌려간 마야는 감옥에서 하염없이 흐느끼다, 멀리서 들려오는 말벌 여왕의 목소리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자, 그럼 우리의 계획대로 꿀벌들의 도시를 공격한다. 헬레네 8세를 산 채로 잡아오는 자에게는 기사 작위를 내릴 것이다.” 마야의 머릿속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을 도망쳐 말벌들의 흉계를 제 ‘종족’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헬레네 8세와 빌헬름 2세의 ‘합체’

꿀벌과 말벌의 전투.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마야 덕분에 미리 완벽하게 전투 채비를 마친 꿀벌 왕국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누군가 힘차게 외쳤다. “영원한 정의와 여왕의 이름으로 왕국을 지켜라!” 전투는 치열했다. 맨 앞에서 용감하게 싸우던 젊은 꿀벌 장교의 심장을, 말벌의 무지막지한 침이 단숨에 꿰뚫었다. 장교의 장렬한 죽음을 지켜본 꿀벌 병사들은 저마다 투혼을 불사르며 ‘침략자’에게 결연히 맞섰다. 승리의 영광은, 결국 꿀벌의 몫이었다. “꿀벌들은 단결력이 강하고 충성스럽지. 그것은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엄청난 힘이야.” 예상치 못한 패배의 원인을 복기하는 말벌 한 마리의 입을 빌려 전하는 작가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오래전, 어린 마야에게 나이 지긋한 암벌 ‘카산드라’ 아주머니가 들려줬던 “늘 전체의 안녕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는 훈계를 새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진하게 분칠된 이 대목에 이르러, 헬레네 8세의 꿀벌 왕국과 빌헬름 2세의 독일 제국은 슬그머니 하나의 얼굴로 포개진다. 둘의 ‘합체’를 완성하는 건 자비롭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와 충성스런 일꾼(전사)으로 이뤄진 공동체, 개인보다 전체를 앞세우는 공동체라는 그럴싸한 명제다.

당시 독일의 현실은 여러모로 꿀벌과 말벌의 전투처럼 모두가 함께 싸우는 전면전에 가까웠다. 1888년 즉위한 빌헬름 2세는 대외 팽창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다른 나라와의 갈등 수위를 높여갔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 파장은 즉각 후방에까지 미쳤다. 식량공급은 통제됐고 빵 가격은 엄격한 관리 아래 놓였다. 영국의 봉쇄령으로 수송체계가 왜곡되고 석탄 부족 현상마저 심해지면서 일반 시민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1916~17년 겨울엔 사료용으로나 쓰던 채소를 감자 대신 시민들에게 식용으로 배급할 정도였다.

<꿀벌 마야의 모험>의 작가 발데마어 본젤스는 나치 집권 이후 제국작가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나치의 작가’란 평가를 받을 만큼 나치 정권 유지에 힘을 보탰다. 위키피디아
<꿀벌 마야의 모험>의 작가 발데마어 본젤스는 나치 집권 이후 제국작가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나치의 작가’란 평가를 받을 만큼 나치 정권 유지에 힘을 보탰다. 위키피디아
이처럼 <꿀벌 마야의 모험>은 처음부터 자연과 삶을 예찬하는 ‘낭만주의’적 코드뿐 아니라, 공동체와 질서, 규율을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코드를 동시에 간직한, 양면적인 성격의 작품으로 보는 게 옳다. 불행하게도, <꿀벌 마야의 모험>에서 전체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기 어려운 이유를 본젤스 자신의 삶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을 ‘르포 작가’의 눈으로 바라봤던 본젤스는 점차 노골적인 반(反)유대주의 신념을 강하게 드러냈다. 나치가 집권한 1933년 이후의 행보는 급기야 ‘나치의 작가’라는 평가가 과장이 아님을 말해준다. 정권의 사주를 받은 ‘제국작가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을뿐더러, 유대인을 일러 “독일 사회에 치명적 독을 퍼뜨리는 적”이라 서슴없이 규정하는 글을 발표하는 등 ‘게르만 공동체’ 사수를 위해 온몸을 던졌다. <꿀벌 마야의 모험>은 나치 정권이 극진히 사랑한 작품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았다. 1945년 독일의 패망 이후, 본젤스의 작품이 한동안 출판·판매 금지되고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이 사실상 지워진 배경이다.

자연과 공동체, 낭만주의와 전체주의. 얼핏 보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이 결국 나치즘(파시즘)이라는 한 몸뚱이 괴물로 엮이고 말았다는 데 독일의 비극이 있다. 19세기 후반 이래 산업화의 후발주자인 독일의 행보는 항상 산업화 선발 주자와의 경쟁과 갈등 속에서 보폭을 다듬어 왔다. 특히 앞서 산업혁명을 이룬 나라들에서 나타난 급격한 사회변동과 계층 갈등을 피해야 한다는 현실적 압력도 거셌다. 이러다 보니, ‘따라잡되 닮지 않는다’는 게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당시 독일 사회를 짓눌렀다. 자연(숲)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독일인의 속성이 본격적으로 발현된 건 이 무렵이다. 영국을 대표로 하는 선발 주자 진영을 싸잡아 ‘문명’으로, 독일 자신은 그 반대편에 ‘자연’으로 위치 지으려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문명은 ‘만들어진 것’이기에 혼란스럽고 문제투성이인 반면,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주어진 것’이기에 질서 있고 정당하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 독일 사회는 질서를 따라야 하고, 그 자체로 옳고 정당한 행위다! 이런 강박관념이 인종주의와 결합해 극단으로 치달은 것이 바로 ‘피와 땅’이라는 1930년대 나치의 이데올로기다. 나치가 집권하자마자 각종 자연보호 법령을 쏟아낸 건 결코 선의만은 아니다. 자연은 나치즘을 지탱하는 중추였고, 그 토양에선 ‘우리 것(만)이 좋은 것’이라는 녹색파시즘(에코파시즘)의 망령이 살찌고 있었다. 이쯤 되면, 1910년대에 자연을 앞세운 <꿀벌 마야의 모험>이야말로 훗날 찾아올 독일 사회의 비극을 미리 ‘공개’했다고 봐야 할까.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꿀벌 마야의 모험>이 1차 세계대전 기간 중 독일 병사들에게 큰 인기를 끈 건 역설적이다. 사진은 당시 독일군 참호에서 병사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세계대전 아카이브 갈무리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꿀벌 마야의 모험>이 1차 세계대전 기간 중 독일 병사들에게 큰 인기를 끈 건 역설적이다. 사진은 당시 독일군 참호에서 병사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 세계대전 아카이브 갈무리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가 그리는 사회

돌이켜 보면, 꿀벌 집단은 여왕벌을 중심으로 거대군집을 이루며 사는 생태계 속성상 예부터 인간 사회를 빗댄 우화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다. 방점은 제각기 달랐다. 명예혁명 이후 영국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출신의 의사 버나드 맨더빌이 1714년 펴낸 <꿀벌의 우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에선 이기심과 악덕이 외려 사회 전체적으론 이롭다는 주장을 펴는 풍자시의 소재로 꿀벌 집단이 등장한다.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다른 백만을 먹여살렸다/ (…)/ 이리하여 모든 구석이 다 악으로 가득 찬데/ 그래도 전체를 보면 낙원이었다’. 자유로운 금융과 상업을 내세워 명예혁명으로 힘을 얻은 신진세력의 본보기라 할 맨더빌의 풍자는 애덤 스미스보다도 60년 이상 앞서 자유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을 갈파했다고 할 만하다. 이와는 결이 조금 다르게, 꿀벌 개체의 합리적 행동과 공익의 놀라운 조화에 주목하며 꿀벌 사회의 ‘민주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연구도 많다. 실제로 여왕벌이 꿀벌 집단을 ‘지배’한다는 신화는 거짓에 가깝다. 꿀벌 사회에서 여왕벌이 중심 역할을 한다고는 해도, 그 역할은 일방적인 의사결정이나 명령·지배와는 다르다. 지도자(여왕벌)-백성(일벌)의 일방향 관계를 전제로 한 <꿀벌 마야의 모험>의 서사구조는, 비록 100여년 전의 작품이었다고는 해도, 출발부터 집단지능과 민주주의 원리와는 거리가 상당히 먼, 극히 편향된 우화였던 셈이다. 힘찬 날갯짓을 하며 미지의 모험길에 나섰던 귀여운 마야. 자연과 삶의 신비를 차근차근 깨쳐간 행복한 마야의 앞길에, 기어이 ‘전사’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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