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19대 대선이 눈앞이다. 우리 선거판에서는 후보의 공약으로 인물을 선택하는 비율이 낮고, 그 공약조차 잘 지키지 않는 것이 그간의 관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화두는 공약이다. 차기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 콘텐츠를 보여주는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문화 공약의 빈곤을 통탄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책, 독서, 출판, 서점, 도서관 관련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공개된 후보별 공약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미세먼지 대책, 동물 복지까지 주요 공약으로 제시되는 마당에 ‘책 읽는 나라 만들겠다’고 말하는 후보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주요 여가 활동(5순위까지) 비중에서 ‘텔레비전 시청’은 72.7%인 반면 ‘독서(웹툰 등 만화책 보기 포함)’는 불과 1.2%에 불과했다. 새로울 것 없는 통계지만, 이처럼 국민의 삶과 책이 먼 상황에서 어떻게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고 교육 혁신을 하겠다는 것인지 대선 후보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고 관련 공약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후보는 ‘도시 재생 뉴딜 정책’ 공약에서 매년 100개씩 노후된 마을에 도서관 등의 공공시설을 짓겠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24일 펴낸 공약집에서 필수 문화기반시설로 도서관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둘 다 ‘도서관’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에 그쳤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열아홉 차례의 대선이 필요했다. 이제 도서관계 요구인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를 독립행정기관으로” 만들고 관종별 도서관의 시설, 장서, 전문인력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정책 추진 약속이 추가돼야 한다.
출판 분야는 그나마 대선공약 반영 비율이 나은 편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 한국작가회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등 범출판계 20개 단체는 지난 3월29일 대선공약 제안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어 4월5일에는 출판진흥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고, 13일에는 더불어민주당 및 국민의당과 독서·출판진흥 정책협약을 맺었다. 후보들의 독서 사진을 모아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캠페인도 펼쳤다. 공약집을 먼저 펴낸 국민의당 자료를 보면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개편, 도서정가제의 완전한 정착, 출판유통 종합정보시스템 구축, 사적복제보상금 적용 등 업계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정책협약에 근거하여 공공도서관 확충과 전문인력 충원, 초중고 독서율 증진을 위한 교육·문화 정책 추진, 독서·출판 진흥예산 확대와 민관 거버넌스 구축, 지역서점 육성, 법제 개선 방침을 공약집에 담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단체의 전례 없는 추진력에 정치권이 화답하여 만든 성과다.
올해로 독서문화진흥법 시행 10주년을 맞았지만, 독서 생태계는 날로 황폐화하고 있다.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책이 문화정책의 기본인 나라’가 시작되기를 고대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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