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시선들-자연과 나눈 대화
캐슬린 제이미 지음, 장호연 옮김/에이도스(2016) 이탈리아의 한 소설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거의 전적으로 아는 바가 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이 삶에 작별을 고하는 가장 행복한 방법이다.” 엄청나게 끌리는 생각이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그 이야기가 여행에 관한 것이라면 나는 그것이 보물인 줄 알고 행복한 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갈 것이다. “우리 내년에는 어디로 여행 갈까?” “우리, 고래 보러 가자.” “우리, 오로라 보러 가자.” 아! 이런 이야기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코틀랜드의 작가 캐슬린 제이미의 <시선들>은 거의 전적으로 아는 바가 없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발살렌, 세인트 킬다, 로나, 라 쿠에바. 이런 지명들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녀가 묘사한 장소들은 황량하지만 깨끗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말대로 그런 곳에 있으면 뼈가 피리가 될 것 같다. 가넷, 흰올빼미, 흰허리바다제비, 범고래 등을 찾아다니는 그녀의 여행기는 다른 세계와 다른 이야기로 인도하는 웜홀 같다. 이를테면 19세기에 지어진 베르겐 자연사박물관의 발살렌(고래홀). 그곳에는 130년 동안 천장에 매달려 있는 스물네마리 고래뼈가 있다. 긴수염고래 15.7m, 1867년. 대왕고래 24m, 1879년. 문제는 베르겐 박물관이 여러모로 의문투성이란 점이다. 고래가 어떻게 베르겐까지 왔지? 누가 고래를 옮겨 천장에 매달아 놓았지? 또 하나 의문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슬란드로 가는 길에 있는 북대서양의 마지막 푸르른 언덕인 로나섬, 한때 인간이 살았으나 이제는 회색 바다표범과 새들만 사는 곳. 그렇다면 로나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로나 사람들은 하늘, 무지개, 구름의 색깔에서 자신의 이름을 따왔고 세상 도처에 널려 있는 악덕을 완벽하게 모르는 옛 종족이다. 마지막에 그 섬을 표류했던 사람들은 로나 주민들의 최후에 대한 글을 남겼다. 인간이 사라진 로나 섬에 범고래 네마리가 찾아왔고, 캐슬린 제이미 일행이 섬을 빙글빙글 도는 범고래를 보려고 절벽 위를 질주하는 장면은 특히 아름답다. 그런데 그녀는 대체 어떻게 이런 여행을 하고 다른 생명체의 노래를 알아듣고 형태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을까? 그녀 인생에 일어난 가장 예상치 못한 일, 그것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처럼 십대 때 인적이 드문 해변을 거닐면서 발아래를 내려다보고, 나이가 더 든 다음에는 그것을 경력으로 삼은 아마추어 박물학자, 조류학자, 고고학자인 사람들. 이런 생각이 든다. 한때 사랑했고 마음을 두었던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걸까? 그럴 수 있다면 그만큼 반갑고 힘나고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모든 글이 아름답지만 제목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자신만의 경험, 어려움, 관심사, 슬픔, 기쁨을 통과하는 우리의 문제 많은 삶, 우리를 애태우는 삶, 지쳐 빠지게 하는 삶. 그 삶을 꿋꿋하게 살다보면 어느날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시선’이란 생각이 든다. 정혜윤(시비에스) 피디
캐슬린 제이미 지음, 장호연 옮김/에이도스(2016) 이탈리아의 한 소설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거의 전적으로 아는 바가 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이 삶에 작별을 고하는 가장 행복한 방법이다.” 엄청나게 끌리는 생각이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그 이야기가 여행에 관한 것이라면 나는 그것이 보물인 줄 알고 행복한 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갈 것이다. “우리 내년에는 어디로 여행 갈까?” “우리, 고래 보러 가자.” “우리, 오로라 보러 가자.” 아! 이런 이야기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코틀랜드의 작가 캐슬린 제이미의 <시선들>은 거의 전적으로 아는 바가 없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발살렌, 세인트 킬다, 로나, 라 쿠에바. 이런 지명들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녀가 묘사한 장소들은 황량하지만 깨끗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말대로 그런 곳에 있으면 뼈가 피리가 될 것 같다. 가넷, 흰올빼미, 흰허리바다제비, 범고래 등을 찾아다니는 그녀의 여행기는 다른 세계와 다른 이야기로 인도하는 웜홀 같다. 이를테면 19세기에 지어진 베르겐 자연사박물관의 발살렌(고래홀). 그곳에는 130년 동안 천장에 매달려 있는 스물네마리 고래뼈가 있다. 긴수염고래 15.7m, 1867년. 대왕고래 24m, 1879년. 문제는 베르겐 박물관이 여러모로 의문투성이란 점이다. 고래가 어떻게 베르겐까지 왔지? 누가 고래를 옮겨 천장에 매달아 놓았지? 또 하나 의문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슬란드로 가는 길에 있는 북대서양의 마지막 푸르른 언덕인 로나섬, 한때 인간이 살았으나 이제는 회색 바다표범과 새들만 사는 곳. 그렇다면 로나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기록에 따르면 로나 사람들은 하늘, 무지개, 구름의 색깔에서 자신의 이름을 따왔고 세상 도처에 널려 있는 악덕을 완벽하게 모르는 옛 종족이다. 마지막에 그 섬을 표류했던 사람들은 로나 주민들의 최후에 대한 글을 남겼다. 인간이 사라진 로나 섬에 범고래 네마리가 찾아왔고, 캐슬린 제이미 일행이 섬을 빙글빙글 도는 범고래를 보려고 절벽 위를 질주하는 장면은 특히 아름답다. 그런데 그녀는 대체 어떻게 이런 여행을 하고 다른 생명체의 노래를 알아듣고 형태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을까? 그녀 인생에 일어난 가장 예상치 못한 일, 그것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녀처럼 십대 때 인적이 드문 해변을 거닐면서 발아래를 내려다보고, 나이가 더 든 다음에는 그것을 경력으로 삼은 아마추어 박물학자, 조류학자, 고고학자인 사람들. 이런 생각이 든다. 한때 사랑했고 마음을 두었던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걸까? 그럴 수 있다면 그만큼 반갑고 힘나고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모든 글이 아름답지만 제목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게 된다. 자신만의 경험, 어려움, 관심사, 슬픔, 기쁨을 통과하는 우리의 문제 많은 삶, 우리를 애태우는 삶, 지쳐 빠지게 하는 삶. 그 삶을 꿋꿋하게 살다보면 어느날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시선’이란 생각이 든다.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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