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하지현 지음/문학동네·1만4000원
사는 건 대체로 지치는 일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쉼표 없이 달려야 하고, 그러다 보면 매일이 ‘기빨림’의 연속이다. “우울하다” “괴롭다” “신나는 일이 없다” 따위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주변에 차고 넘친다. 정신과 방문이 요즘은 마음고생을 측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텔레비전에서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앓았다는 고백을 서슴없이 하고, 이들을 보는 대중들의 시선도 전과는 달라졌다. ‘헬조선’의 ‘마음병’은 이대로 좋은 걸까.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는 최근 10여 년 동안 사회 전반에서 관찰할 수 있는 병리학적 징후들을 통해 한국인의 마음 지형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마음의 체력’ ‘마음의 밀실’ 등 6가지 테마를 두고 불확실한 시대에서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인간적 삶을 위한 심리학적 방법들을 제시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 하지현은 “지난 2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 문화가 정신과 의사의 어깨에 많은 짐을 얹었다”고 말한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중심축이 사회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 쪽으로 옮겨갔고, 문제의 해결도 개인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힘들어진 개인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인 ‘정신승리’ ‘혼밥(혼자 먹는 밥)’ ‘묻지마 폭력’ ‘소셜 다이닝(SNS로 모여 함께 밥 먹기)’ 등이 이를 방증한다.
커피 전문점에 설치된 1인 좌석 및 도서관 형태의 분리형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 ‘1인 시대’를 맞아 혼술, 혼밥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타난 이런 사회적 현상들은 하나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개개인이 다르게 반응한 양식이다. 정신승리의 기제는 ‘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정신승리 했다”고 말하며 자위하는 것은 질지 모르는 승부를 피하고 마음 편하게 현실을 외면하는 방법이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처럼 현실은 암울하고 미래는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행복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아니면 ‘길티플레져’처럼 형편에 맞지 않는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오늘을 사는 이들도 있다.
낙오하지 않으려고 숨 가쁘게 사는 삶에 마음의 여유가 있을 리 없다. 이는 곧 사회활동 위축으로도 이어진다. 스펙 쌓기 바쁜 취준생이나, 회사에 매인 ‘미생’들에겐 인간관계를 위해 쏟는 에너지도 아깝게 느껴진다. 혼자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쇼핑하고, 자꾸 자기만의 밀실로 숨어 든다. 때로 무리에 속하지 않은 불안이 불쑥 솟아나면 밖으로 나와 섞여보기도 한다. 원룸 대신 카페에 앉아 나와 같은 1인들 속에 묻혀 일을 하고, 혼밥의 변형으로도 볼 수 있는 소셜다이닝도 즐긴다.
저자는 이런 현상들을 “‘1인분으로 살아가기도 힘든 벅찬 현실’에 적응한 결과”라고 말한다. “보통이라도 되려고 노력하지만 결코 만족감을 얻을 수 없고 마음은 가난해지기만 하는 현실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라는 것이다. 자기중심주의가 선을 넘고, 충동 조절이 어려워지면 극단적으로 ‘묻지마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여성 혐오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가혹한 환경에 놓인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저자는 “개인이 강해질 수 있는 정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나 하나 살아남는다고, 더 강해져서 옆 사람을 누른다고, 영속하는 행복은 오지 않는다”면서 “완벽할 필요 없음을, 이길 필요 없음을, 욕망의 적정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내 결핍을 인식해야 타인의 결핍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세상과 타인을 향한 대가 없는 이타적 호혜평등성이 개인에게 긍정적 가치와 삶의 의미를 주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광화문광장에 나와 촛불을 든 사람들을 예로 든다. 결국, 버티는 것만이 답인 시대지만 나를 넘어선 우리를 둘러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