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문학동네(2015) 광화문 촛불 집회 현장에 있을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모였을까? 우리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것(아주 좋은 것)이 튀어나온 것일까? 확실한 것은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고통을 겪어왔다는 것, 이제는 혐오스런 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다는 것, 내면 깊숙한 곳에서 존중과 정의와 공정함을 원한다는 것, 그것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광장을 가득 채운 고함소리가 내 마음과 결코 다르지 않았고 산산이 흩어진 것들이 다시 엮이는 기적적인 순간이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찰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렇게 드물게 기쁜 순간에도 슬픔은 어려 있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집회 현장에서 중고생들이 행진하는 것을 볼 때, 그 아이들이 건강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학생들 뒤를 따라서 행진하고 싶었다. ‘얘들아,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대상 하나 없이 살고 있다면 그다지 보람있는 인생이라고 하기 힘들다고 하지? 이 거부의 공간에서 너희들을 만난 것이 너무 좋다. 너희들의 삶에 좋은 일이 하나 더 추가된 날 우리가 만났으니 이제 우리 같이 가자. 지금 우리가 만드는 이 놀라운 현실을 사소하게 만들지 말자.’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잘 사랑해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옆에서 악취를 뿜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변화를 위한 이 거의 혁명적인 거리의 에너지들을, 이 삶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의 좋은 일에서 두번째 좋은 일을 만들어 볼 수 있을까? 페스트, 즉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로 폐쇄된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한 소설 <페스트>에서 카뮈가 그려낸 ‘타루’라는 인상적인 인물이 있다. 그는 오랑 사람이 아니면서도 죽음이 퍼져나가는 도시에 남아 목숨을 걸고 시민들의 자원봉사 조직을 만든다. 그는 그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는 페스트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질병과의 투쟁을) 끝없이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페스트는 박멸되지 않고 잠복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아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죠.” 바로 이렇게 잔뜩 긴장한 채, 방심하지 않은 채, 밤의 피로에 젖은 채, 더 많은 변화를 꿈꾸면서 학생들과 함께 걷고 싶다고 생각할 때, 촛불과 밤하늘의 함성과 각자 끌어안고 있는 삶의 무게들과 그것을 뛰어넘는 에너지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빛은 깜빡깜빡 유혹적으로 반짝거렸다. 정혜윤(시비에스) 피디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문학동네(2015) 광화문 촛불 집회 현장에 있을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모였을까? 우리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것(아주 좋은 것)이 튀어나온 것일까? 확실한 것은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고통을 겪어왔다는 것, 이제는 혐오스런 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한다는 것, 내면 깊숙한 곳에서 존중과 정의와 공정함을 원한다는 것, 그것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광장을 가득 채운 고함소리가 내 마음과 결코 다르지 않았고 산산이 흩어진 것들이 다시 엮이는 기적적인 순간이 있다는 것이 가슴 벅찰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렇게 드물게 기쁜 순간에도 슬픔은 어려 있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집회 현장에서 중고생들이 행진하는 것을 볼 때, 그 아이들이 건강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학생들 뒤를 따라서 행진하고 싶었다. ‘얘들아,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대상 하나 없이 살고 있다면 그다지 보람있는 인생이라고 하기 힘들다고 하지? 이 거부의 공간에서 너희들을 만난 것이 너무 좋다. 너희들의 삶에 좋은 일이 하나 더 추가된 날 우리가 만났으니 이제 우리 같이 가자. 지금 우리가 만드는 이 놀라운 현실을 사소하게 만들지 말자.’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잘 사랑해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 옆에서 악취를 뿜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변화를 위한 이 거의 혁명적인 거리의 에너지들을, 이 삶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의 좋은 일에서 두번째 좋은 일을 만들어 볼 수 있을까? 페스트, 즉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로 폐쇄된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한 소설 <페스트>에서 카뮈가 그려낸 ‘타루’라는 인상적인 인물이 있다. 그는 오랑 사람이 아니면서도 죽음이 퍼져나가는 도시에 남아 목숨을 걸고 시민들의 자원봉사 조직을 만든다. 그는 그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는 페스트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질병과의 투쟁을) 끝없이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페스트는 박멸되지 않고 잠복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아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죠.” 바로 이렇게 잔뜩 긴장한 채, 방심하지 않은 채, 밤의 피로에 젖은 채, 더 많은 변화를 꿈꾸면서 학생들과 함께 걷고 싶다고 생각할 때, 촛불과 밤하늘의 함성과 각자 끌어안고 있는 삶의 무게들과 그것을 뛰어넘는 에너지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빛은 깜빡깜빡 유혹적으로 반짝거렸다.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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