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11월11일은 일명 ‘빼빼로 데이’다. 기억하기 좋은 이날은 올해부터 ‘서점의 날’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의 책들이 당당히 책장에 선 형상에서 1자 네 개를 가져와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서점의 날’로 제정했다. 척박한 이 땅의 서점들이 부디 좋은 기운 받아 쑥쑥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마침 “서울의 미래, 서점에서 발견하다”라는 주제를 내건 제1회 서울서점인대회가 서울시 주최로 오늘 개막한다. 보기 드문 ‘서울 서점 120년’ 전시회도 오늘까지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다. 개막식에선 ‘서점의 날’ 선포에 이어 서울 서점인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이 발표된다.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않은 국내 저자의 신간 중에서 서점들이 선정한 책은 윤여림의 그림책 <개똥벌레가 똥똥똥>(천개의바람), 김선영의 <가족의 시골>(마루비), 최종규의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이다. 이어 서울서점인상 시상, 책방 운영 아이디어 공모전 시상, 서울도서관 이용훈 관장의 ‘서울시 서점 활성화 종합계획’ 수립 경과보고, 국내외 서점 대표들의 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전례 없는 규모의 서점 행사다.
여기에 낭보 하나를 더하면 ‘경기도 지역서점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11월8일 공포된 일이다. 경기도의회 김달수 의원(경기도 제4연정위원장)이 대표발의한 이 조례는 도지사의 책무로 “경기도교육감 및 시장?군수들과 협력하여, 완전한 도서정가제의 정착 및 지역서점 우선구매 정책을 시행하고, 필요한 예산 지원”(제4조)을 하도록 명시했다. 지난 7월부터 시행 중인 서울시와 10월부터 시행 중인 부산시에 이어 광역 지자체 중 세 번째로 제정된 경기도 서점 조례의 진화가 놀랍다.
아직도 상위법이라 할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서조차 도서관에 15%까지 직간접 할인 판매를 허용하는 등 정가제에 대해 미온적이다. 이에 비해 경기도 조례는 ‘완전한 도서정가제 정착 및 지역서점 우선구매’를 못 박았다. 입법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를 구체화하는 노력은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지자체 연정(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연합정치) 체제인 경기도이기에 가능한 선진 모델이다. 김달수 의원은 “경기도는 완전한 도서정가제 구현을 위해 내년에 지역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31개 시?군에 도서관 책 구입비 총액의 10%를 지원하여 할인 없이 정가에 구매할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혁신 노력은 전국 광역지자체 가운데 인구, 도서관, 자료구입비가 가장 많은 경기도발(發) 도서관 도서 구매의 새 전형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책의 터전인 서점의 다양성과 자생력을 키우는 토양은 공공부문의 지역서점 구매만이 아니라 완전한 도서정가제 개정에 의한 거품가격 제거, 독일과 같은 서점 공급률 차별 금지 조항 적용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침몰하는 출판시장을 방치한 채 문제투성이인 현행 ‘골다공증 도서정가제’ 고수에만 급급한 무기력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점 육성에 앞장서는 지자체들을 보며 각성해야 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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