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장기적으로 볼수록 차세대 출판시장은 디지털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릴 것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출판’ 시대에 그 기초를 잘 닦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전자책에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는 나라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장질서가 난장판이다.
그간 도서정가제 논란은 종이책 위주였다. 전자책에도 뒤늦게 도서정가제가 적용된 것은 2012년 7월27일부터였다. 형식적으로나마 종이책은 직간접 할인율이 15%로 제한된 반면,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 전자책에서는 플랫폼 업체들이 ‘장기 대여’ 서비스로 이를 무시했다. 판매가 아닌 대여 방식으로 법망을 피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북유럽 소설의 재미를 알려준 <오베라는 남자>의 정가는 종이책이 1만3800원이고 전자책이 9660원이다. 그런데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전자책 판매가는 50%가 할인된 4830원으로 종이책 대비 65% 할인된 금액이다. 여기에 마일리지 5%와 멤버십 마일리지 1~3%, 책 이외의 상품이 포함된 5만원 이상 구매시에는 2천점의 포인트가 덤이다. 친절하게 ‘정가제 프리’라는 꼬리표도 달았다. 해당 업체는 종이책 대비 50% 이상 할인된 전자책 2만종에 대해 ‘최대 83% 할인, 10년 대여 전자책’이라는 이벤트를 진행중이다.
전자책 판매 마케팅의 하나로 굳어진 ‘10년 대여’를 하는 곳은 예스24, 인터파크, 전자책 전문업체인 리디북스에 이르기까지 대형 업체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종이책이 없는 전자책의 경우에는 3천원대 가격을 30% 할인하고 할인 쿠폰까지 붙여 1천원대에 판매한다. 일정 금액 이상이면 추가 할인 쿠폰이 붙는다. 리디북스는 50년 장기 대여 서비스를 도입하여 파격가에 제공하고 결제액 모두를 다시 포인트로 쓰게 하는 방식의 ‘대국민 독서 지원 프로젝트, 책값을 100% 돌려드립니다’ 이벤트를 진행했다.
장기 대여 서비스는 이름만 다른 과당 할인이자 덤핑으로, 명백한 도서정가제 위반이다. 전자책 성장률이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 업체들의 제 살 깎기 출혈 경쟁은 당장의 생존에만 급급해 전자책 생태계를 송두리째 말살시키는 행위다. 그렇지만 이를 단속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물론이고 출판계 자정 노력은 찾기 어렵다.
11월이면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2주년을 맞는다. 출판시장 악화를 모두 정가제 탓으로 돌리는 편향된 시각도 있지만, 정가제의 순기능에 대한 지지가 훨씬 많다. 이를 살려야 한다. 제휴카드 할인 40%, 각종 할인 쿠폰, 문화융성을 가로막는 문화융성카드(오프라인서점의 추가 15% 할인 지원) 등 즉각 개선해야 할 정가제 관련 문제가 산적해 있다. 전자책 판매와 관련한 현안을 포함하여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을 통해 완전한 도서정가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주무 부처가 나서야 한다. 5년 전 <문화가 답이다>는 책까지 펴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추진력을 기대한다.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 답’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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