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근의 출판 풍향계
수도권의 한 공공도서관은 “집에서 잠자고 있는 좋은 책들을 수집하기 위해” 8월부터 10월까지 도서 기증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수집한 책은 관내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의 장서로 활용하거나 책을 필요로 하는 학교와 단체에 재기증하고 책 축제 등의 행사에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도서 기증 캠페인을 통해 “도서관의 장서 수준이 한층 업그레이될 것으로 예상하며 도서관이 공동체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것을 기대”한단다. 공공도서관이 도서구입비 예산을 증액하여 도서관 장서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시민들에게 책 동냥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망발이다. 이곳만이 아니다. 전국 각지의 공공도서관들이 시민들에게 책을 기증하라고 나서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추진하는 도서 기증 및 나눔 운동인 ‘책다모아’ 프로그램 역시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이 많다. 희귀본과 절판본을 기증받아 소장하거나 재기증하는 것이야 의미가 있겠지만, 그 범위를 일반 도서로까지 넓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난해 기증받은 책만 46만부에 이른다.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이 감당해야 할 도서구입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기증받은 헌책을 작은도서관, 병영도서관, 지역아동센터, 해외 대학도서관에까지 재기증하는 일은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니다. 헌책 리사이클 운동을 정부가 나서서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국가 대표 도서관부터 그런 식이니 지역 도서관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특히 전국의 작은도서관(2015년 5595곳)에서는 지난해 구입한 책보다 기증받은 책이 더 많았다. 주민 맞춤형 장서는 공염불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한 사회적 협동조합이 기증한 영어 그림책 1만부를 산하 공공도서관 22곳 및 초등학교 220곳에 비치하여 어린이 독서습관 형성과 수업 자료로 활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교육청은 ‘미래 학력’을 기르기 위해 독서교육을 중시하고 있는 만큼 이번 도서 기증에 의미를 두고 있단다. 나아가 학교도서관의 자료구입비 부족으로 도서 구입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들에 간접적인 지원 효과가 있고 어린이들의 도서관 이용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다. 영어 그림책을 수십권씩 배포하면 그렇게까지 어마어마한 효과가 나오는 것인지, 자료구입비 부족을 예산 확충이 아니라 희한한 해법으로 푸는 것이 올바른지 난감하다.
근래 새 책을 반값에 되사들이는 방식의 인터넷서점 기반 중고책 사업 등이 번창하며 출판시장 축소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현행 도서정가제에 반하는 반값 할인 행위이지만 규제가 안 되고 있어서 저자, 출판사, 유통사, 동네서점 모두 울상이다. 여기에 공공도서관 등 공공 영역까지 출판시장의 판로에 동맥경화를 가중시키는 생각 없는 기증 운동으로 책 생태계의 고사를 재촉하고 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