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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골동품에 배인 오리엔탈리즘 향기

등록 2014-05-08 11:59수정 2014-05-08 12:00

만화가게 아가씨/ 하츠 아키코의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
정령과 대화하는 소년의 ‘동양 신비’ 옴니버스
전통-서구 문화 뒤섞이던 근대 일본의 타자화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대상화하는 서구의 시선을 가리킨다. 흔히 말하는 ‘동양의 신비’, 순종적인 이미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발달된 항해 기술과 무역 및 영토 확장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서구는 중세 말기부터 꾸준히 아랍권, 아메리카 대륙, 아시아에 접촉해 왔다. 태곳적부터 존재하던 땅을 ‘신대륙’이라고 부르거나 인도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이들을 ‘인디안’이라며 편의대로 이름을 붙이면서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는 어렵지만 ‘그는 누구인가’는 쉽다

오리엔탈리즘은 이 과정에서 다른 문화권을 타자화 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정복자의 시선으로 생산돼 동양의 서양에 대한 종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널리 유통됐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반대로 동양쪽에서 서양을 대상화하는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유통되는 맥락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오리엔탈리즘이든 옥시덴탈리즘이든, 핵심은 타자화다. 유통돼는 맥락을 빼고 거칠게 말하면 내가 아니라 남이기 때문에 단순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는 한 인간을 종교나 철학이나 수행의 길로 이끌 만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남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은 술자리에서 오징어를 씹으며 특정 인물에 대한 뒷담화를 즉석에서 수십 분은 떠들어낼 수 있을 만큼 쉽다. 씻을 수 없는 상처나 애정으로 인해 자아에 깊이 침윤된 몇몇 타인을 빼면, 타인을 대상화하는 것은 직업적인 면접관이 아니라도 우리가 늘 어렵지 않게 해내는 일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은 ‘모던 걸’, 일본은 기모노가 주역

그런 면에서 일본작가가 그린 일본만화에서 오리엔탈리즘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것은 묘한 느낌을 준다. 하츠 아키코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고등학생 때 처음 접한 하츠 아키코의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은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1년에 한 권 나와주면 고마울 정도로 띄엄띄엄 발간되는 책이다.

이 작품은 양장과 전통 복식을 섞어 입고 전통문화와 서구 문화가 막 섞이던 근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으로 치면 드라마 <경성 스캔들>, 영화 <모던 보이> 시대, 일본을 통해 서구 문물이 들어왔던 시대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특이한 점은 한국은 당시 일제강점기로 한국 전통문화가 배척되던 시대적 배경 탓인지 ‘신식 문물’을 받아들여 양장을 한 ‘모던 보이’나 ‘모던 걸’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 만화나 드라마는 이 시기를 그릴 때 기모노를 입은 이들이 주역일 때가 더 많다.

이런 것들을 보면 근대 일본도 서구의 강압으로 개항했지만, 문화 수용에 있어 ‘주체’ 자리는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구와 일본의 동시 공략을 당한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면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근대화 과정의 산물일 수도 있겠다.

골동품 하소연 들어주고 백호와 차 나누고…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은 골동품점 ‘우유당’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옴니버스 형식의 만화다. 골동품점 주인의 손자인 주인공 렌은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쯤 되는 신비한 소년으로, 작품이 14권까지 발간된 지금 시점까지 부모며 성장과정이며 특이한 능력을 가진 배경이며 성장사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인물이다.

렌은 골동품에 깃든 신이나 정령이나 ‘불길한 것’ 들을 보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요괴도 보고 귀신도 만나니 으스스한 분위기가 없지는 않지만, 운치 있고 귀여운 이야기들도 많다. 달과 갈대숲이 새겨진 오래된 찬합을 여니, 그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 풍취있는 공간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사람으로 둔갑해 달밤에 다과회를 즐길 만큼 오랜 시간 도를 쌓은 백호와 차를 즐기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 손님들의 이야기, 일본에 온 영국인이 중국 다기에 홍차를 넣어 끓이니 변발을 한 어린 아이 모습의 다기의 정령이 나타나 잔소리를 해 대는 이야기 등이 그렇다.

렌은 자기주장이 강한 이 ‘골치아픈 물건들’의 주인을 찾아달라, 짝을 만나고 싶다 등의 민원을 들어주고 이 물건들의 주인이 된 이들의 고충을 해결해준다. 일본의 전통 예술품들을 떠올리게 하는 표지 이미지부터, 작품 중간중간 서양인 고객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놀랍고 신비로운 이야기’(돌아가신 일본인 어머니가 남기고 간 벚꽃 그림이 그려진 병풍에서 실제 꽃잎이 흩날려, 이후에는 가지만 남은 이야기 등)까지 작품 내용까지 ‘동양의 신비’로 가득 찬 책이다.

제국주의 가해자이자 원폭 피해자, 두 얼굴

하츠 아키코는 ‘아름다운 영국 시리즈’도 펴냈는데, 여기서는 반대로 서양을 대상화한다. 딱딱하게 말하면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 둘 다에 능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나쁜 의미는 아니다. 지금은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고, 이 만화가 유통됨으로써 동양이나 서양에 대한 치명적 편견이 세계를 관통하지도 않는다. 동양인으로서가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표준화된 근대문화에 편입된 사람으로서, 과도기의 동서양 문화 양쪽 모두에 ‘낭만’을 품고 멀찍이 떨어져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타자도 대상화하지만, 자신도 대상화하는 일본 문화는 묘한 느낌을 준다. 일본 만화나 드라마, 소설을 접하다 보면 ‘일본인은 축소 지향적이다’, ‘일본인은 자학적이다’ 등 ‘일본인은’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문장을 종종 만난다. 자기 자신에 대해 3인칭으로 말하는 셈인데, 전체주의와도 맞닿아 있는 그러한 표현은 그러나, 그 자체로 ‘자학’이기도 하다.

동양이 공통적으로 겪어야 했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타자화해 깨부숴야 했던 폭력적인 근대화 과정, 제국주의 일본이 패망하는 과정, 그 뒤 전체주의 가해자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다시 한 번의 비판과 원폭 피해국으로서의 피해자로서의 입장 등 역사적 상흔을 지닌 문화가 아닐까 하고 짐작만 하는데, 어찌 됐든 건강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김효진의 만화가게 아가씨 http://plug.hani.co.kr/toon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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