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쓰카 아키라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과거사 인식 오류의 출발점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부당한 개입과 그에 따른 청일전쟁’이라고 지적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동학 연구’ 나카쓰카 아키라 교수
“한반도 관련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잘못된 인식은 ‘일본의 문제’이며, 이에 대한 비판은 일본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카쓰카 아키라(85) 일본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의 준엄한 지적이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0년, 동학 창도 155년이 되는 해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처형당한 지 1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나카쓰카 교수는 19세기의 가장 빛나는 세계사적 민중운동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동학농민혁명과 일본군의 야만적인 ‘토벌’, 그리고 청일전쟁을 “한-일 관계, 한반도 문제를 생각하는 원점”이라고 했다.
그는 침략과 식민지배로 얼룩진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 과정에서 동학농민혁명 압살은 근대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 총리 등 수뇌부 지시에 따라 계획적으로 자행한 첫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이며, 이후 패전으로 이어지는 일본 근대 실패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일본의 부당한 개입은 조선,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운명을 바꿔버렸다. 그럼에도 일본은 아직도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는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과거사 무시·무지와 인식 오류는 거기서 비롯됐다고 나카쓰카 교수는 말했다.
지난달 27일 ‘의암 손병희 선생 기념사업회’ 초청으로 방한해 서울 천도교 본부 중앙대교당에서 3·1운동 제95돌 기념 강연(3·1 독립선언의 정신과 동아시아 평화)을 한 나카쓰카 교수를 만났다. 그는 “3·1운동도 동학의 엄청난 에너지 분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했다. 그와 함께 동학 공동연구를 해온 박맹수 원광대 교수가 통역을 했다.
아직도 철저히 왜곡·은폐시켜
아베는 사실 자체를 모르나 싶고
하시모토는 모르는 게 확실해 일본의 과거사 인식은
일본 안에서만 통용되는 것
세계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어
일본 비판은 일본을 위해서다 나카쓰카 교수는 “상대방과 만날 때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의 자주성, 주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한반도의 자주적 움직임을 모조리 자국에 적대적인 것으로 매도해 버린다. 그런 태도가 청일전쟁에서 비롯됐다”고 덧붙였다. -일본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조선이 독자적인 근대혁명을 이룰 수 있었을까? “당시 개화파 일부와 관리들 중에서도 동학을 지원한 이들이 있었던 걸로 안다. 그들과 동학이 타협하면서 나름의 길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변수는 중국일 텐데, 어쨌든 결과적으로 동학은 실패했으나 개혁 요구와 지향하던 바는 매우 중요한 유산으로 계승되고 있다고 본다. 예컨대 인내천, 한울님 모시기 등의 평등의식이 그렇다.” -일본의 동학 연구 동향은? “패전 전엔 없었고, 1960~70년대엔 강재언 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이뤄졌다. 이후 공백기를 거쳐 최근엔 역시 재일조선인 역사가 조경달 지바대 교수 등이 탁월한 연구성과들을 내놓고 있다. 일본 학자들이 동학 연구를 외면하는 것은 지식인들까지도 청일전쟁기에 일본이 자행한 왜곡과 은폐로 조성된 이미지, 즉 동학농민혁명을 미개집단의 반란 정도로 보는 시각에 사로잡혀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일본 교과서에선 동학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 조선 정부로부터 농민반란을 진압해 달라는 출병 요청을 받아 그렇게 했다는 식이다. 일본군의 조선 왕궁 점령 등의 부당한 개입에 반발해서 일어난 대규모 2차 봉기에 대해서는 특히 거의 언급이 없다. 2차 봉기가 항일이었으니까, 그걸 제대로 서술하면 일본군 출병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이를 은폐하기 위해 정확한 사실을 묵살하는 것이다. 이에나가 사부로 도쿄교육대학 교수의 교과서 재판이 상징적이다. 이에나가 교수가 자신의 역사교과서 검정 신청을 할 때 본문도 아니고 주에 동학이 조직적인 반일 저항이었다는 보충설명을 했는데, 문부성에서 그것을 삭제하라고 하자 소송을 냈다. 결국 패소했다.”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성과들에도 동학에 대한 일본의 기존 인식과 주장이 유지될 수 있을까? “일본의 주장은 세계에 통하지 않는다. 위안부, 동학 학살에 관한 객관적 자료들이 새로 많이 발굴되고 연구성과들도 출간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역사교과서 지키기 모임 등 일본 내 민중운동의 압력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 대중이 들고일어나 단숨에 과거사 인식을 바꾸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메이지 이래의 은폐와 날조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게다가 기존 인식이 흔들리면서 아베 등 우익의 위기감도 커져서, 이를 되돌리기 위한 그들의 노력도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일본 근대의 침략 역사에 대해 알고 있기는 한가? 아니면 사실 자체를 아예 몰라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인가? “흥미로운 얘기다. 제대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전후세대로,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인, 역대 최장수 총리 역임자 사토 에이사쿠는 메이지유신 100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했는데, 그 세대는 일본이 패전 전에 한 짓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알고도 모르는 척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베와 같은 세대의 지금 일본 리더들은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유신회의 하시모토 도루는 확실히 모르는 것 같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니까.” -그런 역사관은 앞으로 일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까? 예컨대 힘이 세진 중국이 용인할까? “단정할 순 없지만, 객관적 사정들로 보면 그런 충돌이 일어나면 일본은 자멸할 수밖에 없다. 아베 등의 발언은 거기까지 가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득을 얻기 위해 활용하는 국내정치용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결국 문제 해결은 일본 민중의 힘밖에 없다. 아베와 정권 주변의 강경 발언은 점점 더 중국에 유리하게, 일본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요즘 전쟁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그는 말했다. “중요한 건 전쟁으로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엔 전쟁하고 식민지배해서 얻을 게 많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전쟁이 누구에게도 득될 게 없다는 생각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인터뷰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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