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세계에 거대한 악이 똬리를 틀었고 그 때문에 세계가 멸망할 위기이며 그 악을 멸할 능력자가 오직 나밖에 없다면. 소년만화의 물색 없는 주인공들은 정의며 명예며 국가며 의무며 희생이며 온갖 어깨에 힘 줄 수 있는 말들을 장착한 채 기쁘게 모험을 떠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 차례 목숨의 위협을 겪고 (주인공은 안 죽지만) 동료의 죽음에 통곡하고 악의 무리를 척살해 가며 소년은 성장한다. 모험 중에 만난 아름다운 여인과의 로맨스는 최고의 포상. 모험이 끝나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던 소년은 영웅이 되고 기사가 되고 왕도 된다.
하지만 우리, 눈 앞의 돈과 가방과 드레스는 믿지만 명예며 정의며 하는 것들은 한낱 위정자의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소녀들은 밑도 끝도 없이 ‘세계를 구하라’는 명령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아....... 재수없게 됐네. 엄마, 나 완전 잘못 걸렸어.
‘세계를 구하라니 아 재수 없게 완전 잘못 걸렸네’
임주연 작가의 <씨엘>은 ‘알 것 다 아는’ 속물적인 소녀가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 소녀는 겉보기엔 영악한 속물이지만 속은 세계를 구하기는 커녕 본인도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허무주의자다. 그녀가 환장하는 돈이며 드레스는 가슴 속 커다란 구멍을 감추기 위한 위장인 셈이다.
널리고 널린 ‘정의’라는 수사에 취한 사람들 말고 왜 이런 소녀가 세상을 구하는 중책을 맡게 됐을까? 지금은 이런 ‘유감스러운’ 상태지만 판타지의 공식대로 모험을 하다보면 ‘성장’해서 정의감에 불타오르지 않을까? 전혀 아니다. <씨엘>은 오직 이 소녀만이, 영웅으로선 이토록 ‘유감스러운’ 상태로만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씨엘>은 소녀만화에서 드문 본격 판타지물이다. 만화 월간지 <이슈>에서 8년간의 연재를 거쳐 2013년 8월에 23권으로 완결됐다. <씨엘>은 왕과 귀족이 있고 도시가 있으며 기차가 겨우 다닐 정도로만 산업화 된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이비엔은 빼어난 미모로 인해 강제로 시골 귀족의 첩이 되기 직전 탈출해 도시의 마법학교 로우드 입학에 성공한다.
학교에서 강인하며 강직한 라리에트, ‘선량함도 지나치면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제뉴어리, 미래를 예지하는 용 크로히텐을 만나 함께 난데없이 도시에 나타난 마수를 퇴치하며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낸다. 드래곤과 마법, 마수가 주가 되는 전형적 서양식 판타지물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귀엽지만 냉소적인 ‘진짜 소년소녀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여 세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큰 힘을 가지는 건 <데스노트>의 라이토 등 판타지 속 소년들과 히틀러 등 현실 속 일부 어른들의 로망이지만 다분히 현실적인 <씨엘>의 소년 소녀들에게 어느 날 자신에게 부여된 ‘사람을 죽이는 힘’은 처치 곤란일 뿐이다. 더구나 이 곳은 신분 사회. 국왕을 비롯해 높으신 분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지위를 위협하는 마법사와 마녀를 통제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누구든, 그 무엇이든(행성까지도) 죽일 수 있는 제뉴어리나 살생에 있어선 신에 비견될 힘을 지닌 이비엔은 위정자들로선 곁에 두고 수족으로 부리거나 아니면 죽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하고픈 자들이다. 평범하게 취직하고 가정을 꾸리며 늙어가기는 글렀다.
‘누구 하나 희생돼서 구하는 세계가 의미가 있나?’
이쯤되면 판타지의 주인공들은 운명적으로 ‘거대 악’을 퇴치하기 위해 나서거나 정의를 위해 범죄의 위협에 처한 옆사람부터 돕거나, ‘사회파’ 주인공이라면 부조리한 국왕의 통치에 대한 권력 투쟁에 나서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힘이 있다고 해서 갑자기 정의의 사자가 되지 않는다. 둘은, 내면의 평범함과 고뇌를 그대로 간직한 채 “네 힘은, 쓰기에 따라선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라는 식의 ‘정의’에의 권유도 권력자의 감언이설로 가볍게 넘긴 뒤 각각 잠적해서 외롭고 가난한 생활을 한다.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명령에도 “그런데 세계는 왜 구해야 하지?”, “누구 하나가 희생돼서 구하는 세계가 의미가 있어? 희생된 사람에겐 똑같은데”라며 사고를 시작하는 것이 세상 다 허무한 주인공 이비엔이다. 있는 힘을 안 쓰려 안간힘에 심지어 ‘정의롭지도 않은’ 두 사람이 어떻게 세계를 구하나? 판타지에서야 풀 수 없는 의문이지만 현실 사회를 생각하면 사실 답은 간단하다.
자신들의 힘, ‘사람을 죽이는 능력’을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이다. 힘이 없었던 때와 똑같이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려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 23권이나 되는 대작이니 세계를 구하는 과정은 수많은 복선과 다분히 극적인 전개를 통하지만 핵심은 이것이다. 세계를 구해야 할 이유를 몰라서 그랬든 그럴 이유가 없어서 그랬든, (설사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더라도) 어떤 명분으로든 힘을 사용해 사람을 선별해 죽이지 않는, 비인간적이어서 되레 ‘신적인’ 공정함이 결국 세계를 구할 단초가 된다.
마법과 용과 소년소녀, 판타지의 모든 요소를 갖췄지만 현대사회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속물적인 주인공 탓에 기존 판타지와는 다른 세계를 구성하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판타지와 순정만화의 ‘로망’이나 ‘유치함’을 버리지는 않아서 더 좋은 이 작품은, 발군의 흡인력 또한 지녔다. 10대 시절 도저히 책장 넘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만화의 ‘그 재미’와 살짝 어른이 된 지금의 ‘냉소’며 ‘나른함’을 둘 다 가지고 있는 책.
김효진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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