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분노조차 오래 가지 않는다. 늦은 저녁 식사를 하려 막 숟가락을 들 무렵 회사에서 급한 지시가 떨어졌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20통이나 걸었지만 받지 않았고 심지어 중간중간 통화 중이라는 신호에 혹 내 전화만 안 받는 게 아닌가 의구심까지 들었다. 통화가 된 다른 담당자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무성의에, 이유없는 고자세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췄고, 또 다른 담당자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단 몇 글자에 불과한 사실을 알아내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다 식어버린 밥을 씹으며 내일 꼭 저 담당자들을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지으리라 하며 이를 박박 갈았다.
3일 동안의 치열함, 이젠 밑바닥은커녕…
다음 날은 또 아침부터 뛰어 다니다 오후엔 저녁 회의 준비에 몰두했다. 결국 담당자들을 찾아가진 않았다. 분노를 까맣게 잊은 것은 아니었다. 화가 풀린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귀찮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장 하나가 담담히 떠올랐다. 이제는 분노조차 오래 가지 않는구나.
예전에는 분노든 슬픔이든 몸과 마음을 떠나는 데 3일쯤 걸렸다. 그에 반해 기쁨과 행복은 찰나에 사라져서 어딘가 불공평하고 느꼈다. 분노나 슬픔이 머무는 3일 동안 나는 그 감정을 내내 들여다 보며 원인을 찾고 분석하려 애썼다. 옳고 그름도 가려보고 그 슬픔이 사회며 문화의 어디에 닿아 있는 것인지도 찾아내려 했다. 슬픔의 바닥까지 잠수해서 샅샅이 훑었다. 그것이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길이라 믿었다. 다 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일견 다정한 듯 하지만 결국 효율성에 기반한 말들을 경멸했다.
지금은 찰나다. 금방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슬픔의 밑바닥은 커녕 표면에서 물장구를 쳐서 빠져나온다. 삶은 점점 슴슴하게 흘러간다. 박완서 선생의 글처럼 산전수전 다 겪고 담담하게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은 아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그 이유조차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질 않았으니까. 다만 시대의 흐름 탓도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나뿐만 아니라 순정만화도 슴슴하게 변했으니까.
그 많던 지독한 독기는 다 어디로…
예전의 순정만화는 감정선이 참으로 격했다. 놀라거나 비탄에 빠졌을 때 ‘눈알이 없어지는’ 표현으로 지금도 수없이 패러디되고 있는 <베르사유의 장미>나 <캔디캔디>, <유리가면> 등의 1970년대 일본 순정만화를 물론이고 90년대의 세기말 분위기를 한껏 담은 클램프의 <성전>이나
는 지금으로 치면 ‘중2병’ 같은 면이 없지 않았으나 판타지를 끌어들여 격렬한 비극을 연출했으며 <파라다이스 키스>나 로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한 야자와 아이의 작품들 속 주인공들은 지독한 성장통을 겪었다.
한국에서 드라마화 되기도 한 <꽃보다 남자> 등 학원물도 여주인공에 대한 ‘이지메’며 학생들끼리의 다툼이며 하는 것들이 상당히 집요하게 연출됐다. 만화를 읽으며 독자들의 감정은 요동을 쳤다. 그랬던 것들이 일본이든 한국이든 만화마저 ‘힐링’이 대세였는지,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자 아주 순하고 맑아졌다.
2005년 일본에서 첫 연재를 시작해 지금까지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큰 인기를 얻은 순정 학원물 <너에게 닿기를>에는 ‘악역’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어두워 보이는 외모 탓에 다소 위축돼 있던 주인공 소녀가 주변의 따뜻하고 평범한 친구들과 교류하며 마음을 열어가는 이 이야기는 어디 하나 꼬인 구석이 없다. 주변인들과의 오해도 바로바로 풀리고 주인공이 던지는 말은 언제나 ‘직구’다.
한국에 2008년 번역된 <반짝반짝 은하마을 상점가>도 상점가에서 어릴 적부터 붙어 지낸 여섯 명의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사랑이며 우정이며 진로며 고민하지만 기본적으로 활기차고 사이좋게 지내는 정말이지 건강한 이야기다. 그밖에도 무수히 많은 만화들이 ‘독기’를 걷어치웠다.
약간의 문제적 인물이 동성애자 그마저도…
이번에 소개할 <아메나시 면사무소 산업과 겸 관광담당>도 소박하고 건강한 이야기다. ‘아무리 직업만화가 발달한 일본이지만 이렇게 좁은 분야까지 파고들었단 말인가?’하는 경악에 책을 집어 들었으나 직업 만화는 아니었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주변은 온통 논밭이고 젊은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인 일본의 시골마을 아메나시면에서 나고 자란 긴이치로가 도쿄에서 대학을 마치고 고향 면사무소 직원으로 취직해 마을 사람들과 합심해 ‘벚꽃축제’를 여는 이야기로,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을 떠올려도 좋을 정도로 슴슴하다.
등장인물은 누구 하나 나쁜 사람도 없고 돈이든 명예든 사랑이든 강한 욕망도 없고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도, 풀어야 할 인생의 과제도 없다. 이런 인물들 사이에 큰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거나, 축제 때 지역 특산물로 값비싼 참마를 길러 팔고 싶은데 멧돼지가 참마를 노리는 통에 결국 값싼 곤약을 내놓게 됐다거나, 여름축제며 호리병에 그림 그리기 대회며 마을에서 하는 일을 돕긴커녕 매일 하는 일 없이 모여 술만 퍼마시는 동네 아저씨들에게 융화되어 가는 자신을 깨닫고 놀라거나 하는, 밖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소소한 일들이지만 그 자신에게는 매일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여러가지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돈이건 사랑이건 목표건 선명하고 뚜렷하고 강렬한 그 무엇도 없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울고 웃고 지지고 볶는 대부분의 인생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메나시>를 읽을 때 독자들은 ‘막장 드라마’를 볼 때처럼 극단적 상황에서 오는 분노와 슬픔에 몸을 맡길 필요가 없다. 관광지도 뭣도 아닌 ‘아무 것도 없는 시골마을’에서 별 것도 아닌 경치를 홀로 바라보며 느끼는 편안함과 어떤 애잔함이 이 책의 주된 정서다.
<아메나시>에서 애잔함을 넘어 약간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존재는 남성이면서 같은 남성인 긴이치로를 좋아하는 타케루다. 타케루는 꽃미남이지만 별 재주도 꿈도 없는 청년으로 고등학교 졸업 뒤 부모와 함께 살며 마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낸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시일이 꽤 지났는데도 아직 제품 발주도 제대로 못해 편의점엔 다른 제품 없이 음료수만 꽉 차 있다.
그는 긴이치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꼭꼭 숨기며 지내다 결국 마을을 떠나 도쿄에 정착한다. 아메나시는 동네 주민들 모두가 서로를 가족 같이 여기는 좋은 마을이지만, 오히려 그런 마을이기에 같은 남성을 좋아하는 타케루의 존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같은 또래 여성인 메구미도 “나 같은 애는 어서 시집이나 가면 그만”이라며 적어도 마을 안에서는 자신에게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농업을 주로 하는 아메나시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곳이지만, 그 안정성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마음이 어지럽혀진 독자들이기에…
면사무소 직원인 긴이치로는 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외줄을 타며 젊은이들과 마을 중년들을 잇는다. 또래인 타케루, 메구미와 함께 봤던 왕벚꽃나무의 추억을 벚꽃축제로 기획해 내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좋을 게 뭐 있냐’는 보수적인 어른들과 하는 일 없이 술만 마시던 어른들을 설득해 새로운 일거리를 부여하고 “시집이나 가야지”했던 메구미의 음식 솜씨를 살려 ‘메구미떡’을 브랜드화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마을을 떠난 타케루도 ‘홍보 대사’로 마을에 들르며 마을과의 연을 이어 간다.
마을은 동성애자 타케루의 존재를 명시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지만, 배척할 수도 없다. 그것을 알기에 타케루는 “긴이치로형, 나중에 아저씨들만큼 나이를 먹으면 메구미 누나랑 셋이 다시 마을에서 아저씨들처럼 창고에서 술이나 마시며 함께 지내자”고 웃으며 떠난다. 변화 앞에서 증폭될 수도 있는 갈등은 묻히고 희석되며 마을은 그 나름의 새로운 안정성을 획득한다.
악독한 인물의 등장으로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는 비단 만화 뿐만 아니라 고대부터 이어진 ‘비극’에서 흔한 구도다. 비극은 독자와 관객의 감정을 격한 분노로 이끌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비극은 분노의 끝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이 질문은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식의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비극을 접한 독자는 마음에 일어난 파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원인을 분석하고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일정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슴슴한 이야기들은 다르다. 이 이야기들은 소위 말하는 ‘힐링’과 맞닿아 있다. 이 이야기들을 즐겨 찾는 독자들은 이미 현실에서 마음이 어지럽혀진 이들이다. 슴슴한 이야기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진정시키고 편안한 잠으로 이끈다. 독자들은 이미 비극이 던지는 무거운 질문 앞에 설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비극이 사라지는 것은, 현실이 비극이 됐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김효진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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