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게 아가씨] <2> 나카무라 히카루 <세인트 영멘>
철부지 도련님과 잔소리 대왕의 기적과 자비는 민폐
단칸방 동거하며 ‘죽은 신의 사회’ 좌충우돌 웃음폭탄
철부지 도련님과 잔소리 대왕의 기적과 자비는 민폐
단칸방 동거하며 ‘죽은 신의 사회’ 좌충우돌 웃음폭탄
기절하게 웃긴데, 한국엔 절대 번역출간되지 않을 것 같은 개그 만화가 있었다. 한낱 개그 만화 주제에 주인공은 예수님과 부처님. 게다가 이 두 분이 몸소 독자를 웃겨주신다. 아니, 웃겨주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두 분, ‘예수’와 ‘붓다’, 진짜 웃긴다. 불교계야 ‘자비’로 어떻게 넘긴다고 하더라도 좋게 표현하자면 관용보단 자기주장이 강한 일부 한국 기독교계에서 신성모독도 이런 모독이 없는 이 만화를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기독교도가 2009년 기준으로 200만명에 불과해(토속종교 신토 신자는 1억) 그야말로 소수종교고 이 작품에 따르면 토속신앙에선 800만의 신이 존재한다던데, 그런 환경이라야 이런 만화가 출간 가능하겠구나, 하고 한국 정식발매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 이 분들은 소외된 곳에 거하시는 건지 아니면 쇠락의 징후가 농후한 출판만화 시장엔 이미 그 누구의 감시도 없는 건지 작년 초 불쑥, 이 만화의 번역본 1권이 자주 가는 만화 총판 진열대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뒤 후속권이 쑥쑥 나와 2013년 6월엔 8권까지 출간됐다. 그것이 바로 <세인트 영멘>이다. (일본 원작명은 무려 ‘세인트 오니상’, 즉 성스러운 형님/오빠들)
종합저세상연합의 이웃이자 친구…늘 과소비 지름신에 시달려
<세인트 영멘>은 기원후부터(붓다는 기원전부터) 무려 2000년 이상 쉬지 않고 일해 온 예수와 붓다의 ‘하계 휴가’를 소재로 한다. ‘종합저세상연합’에 속해있는 두 성인은 천계에 존재하는 여러 구역 중 하나님의 나라 ‘천국’과 부처님의 나라 ‘천부’에 속하는 이웃이자 친구 사이다. 휴가지는 일본. 두 신은 ‘엔고’의 여파로 둘이 합쳐 달랑 월 26만엔으로 목욕탕도 없는 단칸방 월세 생활을 하게 된다. 지구 상의 수많은 나라 중 휴가지가 일본으로 정해진 것은 ‘예수님의 뜻’이다. 예수와 대천사들이 천계에서부터 함께 하고 있는 ‘데몬헌터’라는 온라인 게임에서 친절한 일본 유저들을 여럿 만났기 때문에 일본이라면 안심하고 휴가를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예수 캐릭터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 속 예수와 붓다, 그리고 주변의 신과 악마들은 현대 일본 사회에 맞춰 적당히 세속화 돼 있다. (신화에서 ‘사실’을 따지는 것도 좀 그렇지만) 사실무근, 신성모독의 캐릭터지만 신화를 근거로 둔 해석이기에 제법 그럴싸한 면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태생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기에 기본적으로 철없는 도련님이다. 온라인 게임과 블로그를 즐기는 천진한 성격에 늘 충동구매 욕구에 시달린다. 참으려 하면 그만 이마의 ‘성흔’이 벌어져 피가 철철 난다.
혹독한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반대로 금욕적이고 절약이 몸에 뱄다. 한마디로 말하면 잔소리가 많은 ‘일본 아줌마’ 같다고나 할까. 평소 예수의 과소비를 막으려 ‘예수여-’로 시작되는 설교를 하느라 바쁘지만 정작 자신도 ‘돌솥스팀오븐’이나 ‘만화용품’ 앞에선 마음 속의 ‘마라’(부처를 유혹하는 악마)를 쫓느라 무진 애를 쓴다.
하나님과 성모 마리아, 늦둥이 사고뭉치 예수 뒷막음 과보호
여기에 더해 하나님은 늘그막(?)에 얻은 아들 예수를 과보호해서 종종 비둘기로 현신해 ‘수박 깨기’ 놀이조차 간섭하는 극성 아버지고 성모 마리아는 아이 낳고 결혼도 했지만 연애경험 면에선 ‘모태솔로’라는 게 컴플렉스다. 대천사들은 혹시 예수가 박해받을까봐 늘 쓰고 있는 가시관에 GPS를 부착할 정도다. 반대로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과 범천은 붓다를 수완 좋게 압박하는 영업사원 같은 이들로 그려진다. 예수가 과보호에 시달리는 반면 붓다는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그 동네(?) 문화 탓에 시련이 닥치면 닥칠수록 천부 식구들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영한다. 예수와 붓다를 유혹하는 악마조차 두 성인에게 거의 ‘관심병’ 환자 취급당하며 매우 인간적으로 그려진다.
웃음의 포인트는 신화를 엉뚱하게 세속화하고 현대화(?)한 지점이다. 성경이나 불교 신화를 꿰고 있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만 ‘모세가 바다를 가른 기적’이나 ‘예수가 돌을 빵으로 바꾼 기적’ 정도만 알고 있어도 신나게 웃을 수 있다. 홍해를 가른 모세가 그 뒤 ‘십계’라는 이름의 ‘복근을 가르는’ 운동기구를 출시하고 ‘가릅니다’를 트위터 유행어로 만든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구세주와 붓다, 인류를 구원했을 뿐 아니라 기적을 일으키는 권능까지 가지고 있는 이들이니 하계 생활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 2000년전 많은 이들을 구원했던 이 기적의 순간들은, 현대사회에선 예측 불가능한 민폐에 가깝다. 인간을 넘어 동물들의 존경까지 받는 붓다의 권능은 현대사회에선 ‘집주인의 핍박’에 직면하기 일쑤다. 붓다를 따르는 고양이들이며 새들이 월세방 앞에 모여들면 ‘혹시 먹이를 주는 것 아니냐, 이웃에게 피해를 준다’며 집주인이 호통을 치는 식이다.
홈파티로 층간 소음 일으키거나 길냥이 먹이 주다가 꾸지람
또 예수의 생일에 대천사들이 몰려와 신성한 빛을 발하자 집주인은 ‘입주때 홈파티 금지랬지’라고 화를 내며 천사들을 모조리 쫓아버린다. 여기에 ‘크리스마스엔 칠면조와 로스트 비프를 먹는 게 관습 아니냐’고 예수가 중얼거리자 칠면조와 소들이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자진해서 ‘성냥’을 들고 제 한 몸 공양하러 몰려오는데 이는 다닥다닥 붙은 연립주택에 ‘층간 소음’을 유발한다. 목욕탕에선 무심결에 물을 포도주로 바꿔 혼란을 일으키고 천사들의 수호를 받는 예수의 권능은 문고리에서 정전기가 좀 올랐다고 천사들이 출동해 문고리를 잘라버리는, 집주인에 대한 ‘민폐’로 끝이 난다. 참고로 예수가 접시를 자꾸 빵으로 바꿔버리는 통에 집에는 늘 식기가 모자란다. 기적이 민폐가 되는 이러한 순간들이 이 만화의 ‘반전 개그’ 포인트다.
기적이 곧 개그가 되는 안타깝고도 기적적인 구조에 대한 생각을 거듭하다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아, 이래서 이 두 분이 휴가를 오실 수 있었구나. ‘기적 개그’가 웃긴 까닭은 아마도 현대사회가 더 이상 기적을 믿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계급이니 엘리트니 하는 것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대사회는 기본적으로는 갑남을녀, 보통 사람들이 인간의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 돼 있다. (돈 잘 버는 능력도 실은 초능력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지만 그 기적은 ‘로또 맞는 기적’이지 ‘돌을 빵으로 바꾸는 기적’은 아니다. 여전히 ‘낮은 곳’에는 기적이 필요하지만 그 곳에 거하는 이들은 기적을 믿기엔 너무 지쳐있는지도 모른다. 기적을 믿지 않는 사회이기에 두 신은 편히 하계 휴가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라고, 혼자 추측해 본다.
김효진기자 july@hani.co.kr
▶김효진의 만화가게 아가씨: http://plug.hani.co.kr/toon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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