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레이디
[만화가게 아가씨] <1> 윤지운의 <안티 레이디>
직장은 ‘진상의 제국’, 연인도 선배도 친구도 ‘찌질’
청춘의 감각을 망각해야 살 수 있는 무감각의 수렁
직장은 ‘진상의 제국’, 연인도 선배도 친구도 ‘찌질’
청춘의 감각을 망각해야 살 수 있는 무감각의 수렁
스물일곱 이후, 사는 게 왜 이렇게 팍팍한가 싶을 때는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친구가 언젠가 내게 해 준 말을 떠올린다. “‘이말삼초’는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잘한 거야.” 이말삼초는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후반을 지칭하는 말. 9회말 투아웃은 들어봤어도 이말삼초란 말은 그때 처음 들었다. 나보다 5년 먼저 그 시기를 보낸 그가 당시의 나와 마찬가지로 ‘인생 이제 2회 말인데 어째 벌써 9회말 투아웃 같다’고 느끼며 만들어낸 말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도, 친구의 친구도,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다…
아닌 게 아니라 이말삼초의 허리를 지나고 있는 지금 친구들의 얼굴은 모두 죽을상이다. 대학생 때 본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은 마흔 넘어서도 낮이고 밤이고 남자 만나고 친구 만나며 그리 신나게 놀더니만, 회사일에 지친 우리는 모처럼 만나도 아홉 시만 되면 꾸벅꾸벅 존다. 누구 하나 지금 하는 일에 확신도 없다. 만나기만 하면 이직 얘기에, 더러는 회사를 그만두고, 누군가는 정규직 전환 여부에 한숨을 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전히 고시 공부 중이다.
이른바 ‘결혼적령기’. 연애도 잘 안 풀린다. 불타는 사랑을 하고 싶으면서도 조건에 요리조리 눈이 간다. 게다가 이십대 초반에 했던 ‘삽질’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마음은 급한데 행동력은 돌다리를 두드리다 부술 정도로 굼뜨다. 연애를 잘하던 커플도 ‘결혼’이라는 즉물적인 목표 앞에서 돈 때문이건, 직업 때문이건, 종교 때문이건 우수수 갈라서기도 한다. 일과 사랑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말은 옛말, 이젠 일도 사랑도 나를 안 택해준다. 내 주변인들만 그런 게 아니라 들어보면 친구의 친구도,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다 그렇다.
윤지운 작가의 <안티 레이디>는 ‘일이고 사랑이고 세상 전부가 내게 안티를 날리고 있는 것 같은 ’이말삼초를 실감나게 그린 만화다. 주인공 정이원은 직장생활 3년 남짓한 이십대 여성. 오너를 포함해 직원이 달랑 다섯 명인 세무사 사무실에서 세무사를 보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유망한 자격증도 없고 십대 중반의 소년만화 주인공이었다면 갖추고 있었을 ‘숨겨진 재능’도 없다.
하다못해 대기업 사원이면 부장이고 이사고 해보겠다는 출세욕이라도 불태울지 모르지만, 그녀는 딱히 올라갈 데도 없는 소규모 개인 사무실 직원일 뿐이다. 본인이 자격증을 따 세무사 사무실을 차리겠다는 야심 내지 계획조차 없다. 그녀는 그저 평균적인 업무 능력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리고 세상도 그녀에게 평균적인 직장 내 인간관계, 적정 수준의 월급, 서로 사랑하는 보통의 연인 등 평범하고 소박한 보답 정도는 해주길 바랄 뿐이다.
삶의 구원은 로또뿐…운명적 로맨스도 잊은 지 오래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의 삶을 둘러싼 것은 상식이나 예의, 배려에 체면까지 버린 ‘진상’들이다. 숙취 해소 음료를 물처럼 마시며 업무 시간에 잠이나 자대고 불륜 상대의 꽃배달까지 직원에게 시키는 오너, ‘아가씨들은 편해서 좋겠어’라며 일이란 일은 죄다 이원에게 떠넘기는 ‘아줌마’ 과장, 일에 전혀 의욕이 없고 뒤에선 이원을 욕하는 데 여념이 없는 무능한 후배 등 직장에서 마주치는 인간 군상들은 진상이라 이름 붙이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들은 날마다 진상 게이지 최고 레벨을 갱신하며 이원의 일에 대한, 직장에 대한, 나아가 삶에 대한 의욕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이들에게 하루하루 시달리는 동안 어릴 적엔 미래에 대한 포부를 의미했던 ‘꿈’이라는 단어는 오너에 싫은 소리 하고 회사 때려치우는 것 정도로 초라해진다. 이원은 “내 삶을 구원해 줄 것은 인간 따위가 아니라 ‘로또’뿐”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지쳐가다가 마침내 이직에 성공한다. 진상 천지인 사무실을 뒤로 한 이원의 소망은 소박한 만큼 절실하다. (다음 직장에선) “적어도 사람으로서 실망하진 않았으면. 난 그거면 돼, 지금은.”
이원을 비롯해 <안티 레이디>의 주인공들은 소위 결혼 적령기지만 작품 속에 ‘운명적 로맨스’ 따위는 없다. 순정을 바쳤던 대학 선배는 다시 만난 이원을 편리한 지갑 정도로 여기고 이원을 좋아하는 직장 상사는 근 일년 간 이원이 어떤 사람인지 ‘돌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오래 검증하며 바라보고만 있다. 이원의 친구이며 교사인 미연은 대학 때부터 만난 고시 준비 중인 남자친구와 헤어질 듯 헤어지지 못하고 상대방 결정만 기다리며 질질 끌고, 또 다른 친구 지유는 한밤 중에 결혼 앞둔 ‘진상’ 남자 동창에게 ‘이 결혼 네가 반대하면 안 한다’는 기가 찬 전화를 받기도 한다.
정말 슬픈 자는 아픈 사람일까 아픔을 잃은 사람일까
이원을 보며 회사에 십 년 이십 년 다닌 이들은 ‘겨우 그 정도 진상 갖고 뭘 그래, 난 그보다 더한 진상 100명은 더 알아’ 하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가슴 속엔 손때 묻은 사표와 함께 로또 한 장쯤은 품고 있는 것 아니냐며. 직장 생활이란 게 그런 거라고. 남의 돈 먹기가 쉬운 줄 아냐고. 다 맞는 얘기다. 이원은 어쩌다 좋은 사람 만나서 이직이라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직장에서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도록 버티고 버틴다. 그리고 이내 무덤덤해지고 무감각해진다. 그런 생활을 ‘정상’이라고 받아들여버리는 것이다.
이말삼초, 사회 초년생 혹은 이제 막 ‘돈의 무서움’을 깨닫는 이들이 유독 힘든 이유는 이들에게 아직 괴로운 것을 괴롭다고 느낄 통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을 비정상이라고 인지하고 부당함을 부당함으로 인지하는 능력, 아직 생계에 쫓기기 전에는 우리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던 감각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살기 위해선 그 감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깊은 좌절과 슬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말 슬픈 존재는 아파하는 이들일까, 아니면 아프다는 감각조차 잃은 이들일까.
김효진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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