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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서정가제 안하면 작은 출판사 죽고 책 다양성 사라져”

등록 2012-07-15 20:08

사계절출판사를 탄탄한 중견 출판사로 키워낸 강맑실 대표. “출판인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현장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게으르다. 나부터 반성한다.”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사계절출판사를 탄탄한 중견 출판사로 키워낸 강맑실 대표. “출판인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현장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게으르다. 나부터 반성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창업30돌’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창업30돌’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책이라는 그릇에 시대정신을 담는다.”

30년 전, 그렇게 다짐하며 허구한 날 경찰에 쫓기던 한 청년(김영종)이 친구와 둘이서 서울역 근처 대우빌딩 뒷골목 건물 2층의 허름한 7평 골방에 출판사를 차렸다. 이름하여 사계절. 그 출판사는 이제 연간 매출액 100억원이 넘는 탄탄한 중견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로 자리잡았다. 수배중이던 그 청년을 대학에서 만나 6년여 연애 끝에 결혼한 여학생이 지금 17년째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는 사계절은 출판의 정도를 걸어온 모범적인 출판사라는 평도 얻고 있다.

연간 매출 100억원이 넘는 출판사는 많지 않다. 게다가 책 반품률도 아주 낮은 알짜 매출이다. 강맑실 대표는 “지난해 처음 100억원을 넘겼을 뿐”이라며, 그것도 <마당을 나온 암탉> 영화화에 따른 반짝 특수 덕으로 돌렸다. 하지만 사계절의 성장사는 관심을 끌 만하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좋은 책으로 규칙 지키면서 승부하겠다는 사계절의 창업정신과 그 정신을 지키려 애써온 역사다. 출판업계 풍토는 여전히 어지럽고, 도서정가제 하나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는 정부의 책과 출판에 대한 몰이해와 무능도 여전하다. 강 대표를 만나 두루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 한승동 기자

-창업 30년에 대한 소회부터 들어보자.

“좋은 책 내고 유통질서 원칙도 지켜 가겠다며 안간힘을 써왔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구나, 잘도 버텨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려웠던 시절 함께해온 직원들 얼굴이 떠올라 먹먹해진다. 사계절을 믿고 밀어준 수많은 독자분들께도 감사드린다. 그분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책이라는 그릇에 시대정신을 담는다”는 글귀가 독자 사은품에도 새겨져 있던데.

할인제 계속 땐 대형사만 살아남아
의미있는 책 출간할 곳 사라지게 돼
오프라인 서점 살리려면 정가제를

“창업 때가 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였다. 진보적 사회이념을 책에 담아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자는 취지였다. 그 덕에 김영종 전 대표는 당시 걸핏하면 경찰 조사를 받았고 감옥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 책을 만드는 목적은 독자들이 그걸 읽고, 각자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자신들의 생각, 나아가 행동까지 바꾸게 하는 것이 아니겠나. 그러자면 책을 만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제대로 된 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직원들에게도 늘 얘기한다. 그 정신을 지금 제대로 이어가고 있는지 자꾸 자문하게 된다.”

한신대 75학번 여학생 강맑실이 창업자 김영종을 만난 건 1970년대 중반. 지명수배 중이던 전남대 73학번 김영종이 한신대로 편입하면서 맺어진 인연이었다. 두 사람 모두 광주에서 나고 자랐으나 그때 처음 만났다. 1982년 결혼했고 바로 그해 6월1일 사계절이 태어났다. 하지만 강맑실은 사계절에 바로 합류하진 않았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칼뱅을 공부한 뒤 안병무 신학연구소에서 6년쯤 번역과 편집일을 했다. 1987년 사계절에 합류할 땐 그는 편집자로서 나름대로 준비가 돼 있었던 셈이다.

-그 창업정신에 비춰 볼 때, 지금 사계절에 몇 점을 줄 수 있겠나?

“80점쯤 주고 싶다.”

-어려운 출판 풍토 속에서도 무리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정도를 걷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출판사를 하겠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판사를 할 이유가 없다. 책이 특별한 문화상품인 만큼 더욱 철저히 유통질서를 지켜야 한다. 물론 우리 출판계 풍토에서 힘들다는 걸 잘 안다. 당연한 일 한 게 평판거리가 된다는 건 그만큼 현실이 어지럽다는 얘기다. 불행한 일이고 가슴 아픈 일이다.”

-지난 6월 사원들과 함께 제주도 한라산을 다녀온 것으로 안다.

“매년 창립일인 6월1일에 맞춰 엠티(MT) 행사 같은 걸 한다. 1박2일 일정이다. 주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현장들을 찾아가는데, 예컨대 제주도에선 네 팀으로 나눠, 각기 현기영의 소설 속 배경인 ‘순이 삼촌 기념관’ ‘너븐숭이 4·3기념관’ 등이 있는 북촌 너븐숭이 4·3 유적지를 찾거나 한라산 등반, 올레길 걷기 등을 했다. 재작년 남도 답사에선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지역들을 찾아갔다. 요즘 지역마다 그런 역사적 사건들을 관광자원화하고 있는데, 대중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사계절엔 노동조합이 있다. 노조가 결성된 출판사가 흔치는 않을 텐데?

“많지 않다. 사계절 노조는 올해 3월 정식 출범했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노사협의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회사에는 노조가 불편한 존재 아닌가?

“나는 노조 유무보다는 노사간 소통 시스템과 소통의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노조가 설립되면 노조원과 비노조원 차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기존 노사협의회를 강화하자는 게 애초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법적 보장이 확실해지고 타사 노조들과 연대하기에도 좋은 노조 설립을 원했다. 나도 결국 그 길이 맞다고 생각하고, 이왕 설립할 거면 다른 노조들과도 연대하자고 얘기했다. 노조는 지금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 회사로서도 긴장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내 가족, 내 직장에만 신경쓰기 마련이다. 아픈 곳을 의식적으로 살피지 않으면 생각은 퇴화한다. 그러나 노조가 형식화할 땐 문제가 될 수 있다. 준비 없는 노조는 오히려 화근이 된다.”

책은 한 나라의 문화기반인 상품
신자유주의 시장 내몰아선 안돼
정부가 개입하는 프랑스는 책판매↑

-사계절은 어린이·청소년 분야를 개척하고 키웠다는 평가도 받는다.

“1990년대 초에 출판 분야 다변화를 시도하면서 어린이·청소년과 인문 분야에 뛰어들었다. 1992년에, 지금도 많이 읽히는 영유아용 독일 창작동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냈는데, 그 책 편집자가 바로 나다. <교실 밖 국사여행> 등 10종이 넘는 ‘교실 밖 시리즈’ 중 상당수도 지금까지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전래동화’ 시리즈도 꾸준히 나가고 있다.”

-국내 작가를 발굴해 우리 창작동화의 저변을 넓혔다는데.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처음엔 외국책 번역물을 낼 수밖에 없었으나, 독자들 수준이 대단했다. 많은 독자들이 전화로 왜 번역물부터 내느냐고 지적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우리 것, 우리 시각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어릴 때부터 서구의 작품을 보고 자라면 머릿속에 서구적 가치를 선으로 여기고 우리를 포함한 다른 세계의 가치를 악으로 보는 선악 개념, 서구 기준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여기는 미추 개념이 자리잡게 된다. 무서운 일이다. 어릴 때 어떤 책을 보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 광고물에 서양인들이 대거 모델로 등장하고, 아나운서나 기상예보 담당자들도 다분히 서구의 미적 가치를 기준 삼아 뽑은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그런 서구화된 선악·미추 개념을 조장하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 의식이 서구적 가치에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국내 창작동화 출판은 번역물에 비해 제작기간도 길고 다른 난점도 많다. 그래도 해야 한다. 외국 번역물도 문제작 중심으로 꾸준히 내고 있다.”

올해가 ‘국민 독서의 해’인데
예산은 1인 10원꼴인 5억원뿐
수험서 위주 공립도서관에 한숨

-매출 중에서 어린이·청소년 책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60%가 넘는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사계절이 냈다. 분단 이후 남북 사이에 이뤄진 첫 저작권 계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었는데.

“1985년에 9권짜리 <임꺽정> 1판을 냈다. 나오자마자 판금당하기도 했다. 1991년부터 10권짜리 2판을 냈고, 2005년에 평양에 가서 벽초의 손자 홍석중 선생을 만나 20년간의 출판권 사용료를 지불했다. 홍 선생은 사계절을 믿는다며 두말하지 않고 우리 제의를 수락했다. 그래서 2006년 6월5일 분단 이후 최초로 북쪽 저작권자인 홍 선생과 남쪽 출판권자인 사계절이 ‘출판권 설정 계약’이라는 사상 첫 남북간 저작권 계약을 정식 체결했다.”

-그런 사업들이 계승·발전돼 왔다면 남북관계도 달라졌을 텐데.

“아쉽게도 이명박 정권 이후 그런 사업은 거의 전면 중단됐다. 북한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들이 많다. 그들을 우리 창작동화 삽화가로 활용할 계획까지 세웠는데,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대표이사를 맡았을 무렵 회사가 큰 어려움에 처했다고 들었다.

“1995년 5월에 대표직을 맡았는데, 그때 책 반품 처리로 나가야 할 돈이 8000만원이었고 수금해야 할 돈은 6000만원이었다. 심각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이 반품 정리였다. 한달 반 동안 그 일에만 매달렸다. 반품을 없애려면 출판 기획 단계부터 조심해야 한다. ‘잘 나갈 거야, 이건 분명 베스트셀러감이야’ 하는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책을 냈다간 낭패 본다. 사계절은 지금 반품률이 5%도 안 된다. 20년 가까이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다. 출판계 평균 반품률은 25% 정도고 유력 출판사들 중에도 반품률이 35~40%에 이르는 데가 있다. 흔히 총매출 규모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건 빈껍데기일 수 있다. 순매출을 봐야 한다. 그렇다고 마케팅에만 매달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무엇보다 제품 자체의 품질이 좋아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책을 내는 의미를 살리는 게 우선이다. 항상 돈 되는 책만 낼 수도 없잖은가.”

-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 통해 상당기간 일본·중국·대만·홍콩의 출판인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2005년에 출범한 동아시아출판인회의의 사무국을 한국이 맡게 됐을 때부터 사무총장 일을 해왔다. 일종의 간사인데, 7월부터는 다른 사람이 맡는다. 그 전엔 동아시아 출판인들 사이에 제대로 된 네트워크가 없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 네트워크 구축 뒤 그걸 통해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 많아졌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얘기다. 1년에 두번씩 돌아가며 모임을 열고 서로 빈번하게 오가면서 저작권 문제나 제작일로 서로 협조하고 개별사끼리 공동사업도 벌인다. 동아시아 나라들 간에 이런 수준의 상설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는 것은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유일하지 않을까. 이를 통해 상호 이해의 폭이 굉장히 커졌다. 각국이 추천한 고전들을 토대로 삼아 ‘동아시아 100권의 책’ 출간 사업, 동아시아 문화지도 그리기, 공동의 문화 아카이브 구축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을 보면, 출판으로 번 돈 대부분을 다시 출판사업에 투자한다. 헤이본(평범)사의 동양문고나 이와나미서점의 헤르메스 인문예술잡지 같은 건 그 나라 출판의 국내외 위상을 크게 높였다. 우리 출판계는 돈 벌어 기껏 외국 작품 수입권 선점을 위한 인세경쟁이나 벌여 값만 높여 놓거나, 돈 불리기에나 신경쓰기 일쑤다. 일본 출판계는 마케터들도 높은 인문적 소양을 갖고 있다. 출판인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현장을 찾는다. 우리는 너무 게으른 것 같다. 나부터 반성한다.”

-우리 출판계의 핵심 과제인 도서정가제에 대한 생각은?

“완전 도서정가제 실시는 절체절명의 원칙이다. 출판계 전체가 사느냐 죽느냐가 거기에 달렸다. 책은 한 나라의 문화기반이 되는 문화상품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재처럼 자유경쟁에 내맡겨선 안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주장을 출판사들 간의 담합으로 보고 마치 자기네들이 소비자인 독자의 입장에서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이건 완전히 거꾸로다. 확언컨대 완전한 도서정가제만이 독자들을 위하는 길이다. 책에 할인제도가 적용되면 높은 할인율을 견뎌낼 수 있는 대형 출판사나 대형 서점, 온라인 서점에 유리하다. 의미있는 책들을 출간하는 소규모 출판사나 동네 서점 등은 문을 닫게 되고 출판의 다양성은 사라진다. 이미 그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오프라인 서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오프라인 서점은 출판사와의 통신을 상설화하고 서점이 소재한 지역이나 동네의 문화복합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도 찾아온다. 이 작업은 서점 힘만으론 어렵다. 출판사가 동참하고 지원해야 한다. 오프라인 서점은 지역 문화의 실핏줄과 같은 것이다. 도서정가제는 오프라인 서점을 살리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서구편향 안되게 국내 창작동화 출판
홍명희 ‘임꺽정’ 남북저작 계약 물꼬
MB정부 들어 합작출판 중단 아쉬워

-왜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다고 보나?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온-오프라인이 서로 많이 접근하고 있다. 무조건 대폭 할인하는 경쟁 단계는 지나간 것 같다. 공정거래위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게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국자들은 책도 자유시장 원칙에 따라 거래돼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정부가 오히려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당국자들의 생각 밑바닥에는 출판을 ‘책 장사’ 정도로 우습게 보는 사고가 깔려 있다. 한 국가의 문화 수준을 잴 수 있는 척도가 책이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정부 개입과 지원 아래 도서정가제를 제대로 실시하는 프랑스와 너무 대비된다. 프랑스에선 오프라인 서점 책 판매량뿐 아니라 책 전체 판매량이 완만하지만 해마다 늘고 있다.”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긴데.

“올해가 ‘국민 독서의 해’인데 알고 있나? 그 예산이 5억원이다. 국민 1인당 10원꼴이다. 그 예산으로는 전시 행정적 행사 몇 번 하면 끝이다. 현재 독서진흥기금은 다 합쳐봐야 1년에 200억원 안팎이다. 300조원에 달하는 전체 예산의 0.07%에 불과하다. 얼마 전 케이팝 공연장 건립 등 한류 열풍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올해 관련 예산을 2배로 늘려 5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기가 막히는 대비다. 문화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오는 25일 출범한다고 한다. 원장은 반드시 출판계의 문제를 잘 알고 혁신 의지가 강한 출판계 쪽 사람이 돼야 한다.”

-도서관이 잘못 가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공립도서관, 초·중·고교 도서관들에선 입시 위주 교육 영향으로, 단순 교과용이나 시험 관련 도서가 아니면 외면받는 상황이다. 그것도 책을 보관하고 단순히 빌려보는 공간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 전문 사서도 너무 부족하다. 도서관은 창의적이면서 인성을 중시하는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하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자면 교육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출판사들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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